낙동강은 압록강 두만강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긴 강임니다. 이 강을 따라 수변 자전거도로가 착착 진행되는 4대강 사업에 국민들은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태백산 황지에서 발원한 낙동강은 그 지류인 금호강, 황강, 남강, 밀양강 등과 합류하여 부산의 다대포에 이르게 됩니다. 삼각주인 을숙도를 감싸고 돌아 다대포에서는 남해바다와 합쳐집니다. 태백에서 을숙도의 자전거도로까지 1300리 자전거길을 "낙동강문화대축제"에서 이달 말에 훓는다하니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습니다.
지류 남강의 끝자락에 함안천과 합수되는 곳에 악양루라는 정자가 발길을 멈추게 합니다. 함안군 대산면 서촌리이며 그 옆의 처녀뱃사공노래비가 가슴을 촉촉하게 해 줍니다.
<처녀 뱃사공>
윤부길 작사 / 한복남 작곡 / 황정자 노래
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을 스치면
군인 간 오라버니 소식이 오네
큰애기 사공이면 누가 뭐라나
늙으신 부모님을 내가 모시고
에헤야 데헤야 노를 저어라 삿대를 저어라
낙동강 강바람에 앞가슴을 헤치면
고요한 처녀 가슴 물결이 이네
오라비 제대하면 시집 보내마
어머님 그말씀이 수줍어질 때
에헤야 데헤야 노를 저어라 삿대를 저어라
노래비 뒷면에 적혀 있는 처녀뱃사공의 유래가 눈시울을 적십니다.
6.25전쟁 직후인 1953년 9월 함안에서 공연을 마친 유랑극단 윤부길(윤항기 윤복희 부친) 단장이 가야장에서 공연을 마치고 대산장으로 가려고 악양나루를 건널 때 두 처녀가 교대로 노를 젓고 있었다고 합니다. 사연을 물어 보니, 입대 후에 소식이 끊긴 오빠(박기준, 후에 전사자로 판명)를 대신해 노를 저어 길손을 건네주며 오빠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언니(박말순)는 23세요, 동생(박정숙)은 18세였다고 합니다.
이 애절한 사연을 듣고 가슴이 찡해진 윤부길 단장은 즉석에서 노랫말을 썼고, 후에 한복남 작곡 황정자 노래로 1959년 <처녀뱃사공>이 세상에 나와 국민애창곡이 됩니다. <금과은>의 처녀뱃사공 힛트곡은 1970년대 일이지요.
이제는 다리가 놓여져 악양나루터는 사라졌고 두 처녀는 부산으로 시집가서 잘 살았다고 합니다.
(아!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는군요. 우리 마음엔 영원히 처녀로 남아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