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쉼표가 필요했던 "바람난 가족"이 황당한 에피소드를 곳곳에 뿌리며 한달간 유럽 구석구석을 여행한 좌충우돌 유럽견문록
체코_ 프라하성, 크기에 놀라고 섬세함에 반하다
‘드디어 왔구나’ 15시간을 날아서 프라하 공항에 도착하자 가슴이 벅차올랐다. 시설은 다소 낡았지만 아담한 프라하공항에서 입국수속을 마쳤다. “숙소까지 어떻게 가야되지?” 막상 도착은 했지만 막막했다. 본격적인 유럽여행 분투기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우선 정신을 추스른 뒤 공항 내에 있는 ATM 기기를 찾아 체코 돈 코르나부터 찾았다. 다른 여행자들의 동선을 눈치껏 살피며 매점에서 버스표부터 샀다. 낑낑거리며 여행 가방 세개를 부여잡고 만원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약도에 나와 있는 한인민박집으로 향했다. 이방인들에게 무관심한 체코인들, 서양인 특유의 외모, 생경한 언어, 풍광이 모두 낯설기만 했다.
민박집 주인장은 친절하게 우리 가족을 맞아주었다. 여행전 각종 가이드북과 여행 다큐를 보며 사전 리허설을 했건만 막상 현지에 도착하니 ‘멘붕’상태가 되었다. 우리의 불안감을 눈치 챈 주인장은 프라하 지도를 펼쳐 보이며 관광 동선, 교통권 판매 매점 위치까지 세심하게 짚어주었다.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들>을 통해 강렬하게 각인된 프라하. 빨간 뾰족 지붕의 실루엣, 희로애락의 역사를 간직한 첨탑과 고성, 곳곳에 자리 잡은 프라하 구시가지는 아담하면서도 아기자기했다. 도심을 도도히 흐르는 블타바강의 카를교를 사이에 두고 구시가 광장과 다리 건너편 프라하성이 대표적인 명소로 늘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프라하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프라하성을 꼽고 싶다. 11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이곳은 성비트 성당, 구왕궁, 왕실정원, 황금소로 등이 쪼르륵 연결되어 있고 현재는 체코 대통령
관저로 사용된다.
가족 단위 여행객에게 안성맞춤인 패밀리티켓 B를 끊어 제일 먼저 성비트 성당을 찾았다. 100m 높이의 거대한 첨탑, 섬세하고 정교하게 조각된 성당 외관을 보니 숨이 탁 막혔다. 10세기경 처음 지어진 성당은 1344년 ‘체코의 세종대왕’격인 카를4세의 지시로 성당 건립을 위한 공사를 시작한 뒤 900년에 걸친 대공사 끝에 1929년 완성되었다. 처음에는 로마네스크양식으로 지어지다 중간에 고딕양식을 바뀌는 바람에 두 가지 양식이 섞여있는 독특한 매력을 풍기는 건축물이 탄생했다.
성당 내부에 들어서자 창마다 정교하게 장식된 거대한 스테인글라스가 시선을 잡아끈다. 체코의 ‘국민 화가’ 칭송을 받는 알폰스 무하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 특히 관광객의 플래쉬 세례를 많이 받는다. 금으로 장식된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 대리석 조각상들이 멋스럽다. 특히 엄청난 은을 녹여 화려하게 만든 성 얀 네포무츠키의 은장식 무덤이 인상적이었다.
체코 최대의 성당인 만큼 각지에서 몰려드는 국내외 관광객들로 늘 붐빈다. 수학여행을 온듯한 한무리의 남학생들은 난생 처음 보는 동양인이 신기한 듯 우리 식구를 신기하게 쳐다보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고 함께 사진찍자고 다가오기도 했다. 그런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성당 지하에는 왕의 지하밀실이 있고 여기에 카를4세를 비롯해 왕들의 석관묘가 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관람객들에게 공개하지는 않았다.
프라하성을 방문한 사람들의 집결지인 흐라드차리광장. 매시 정각마다 푸른색 제복을 입은 수십명의 근위병들이 광장을 행진하는 근위병 교대식이 열리기 때문에 시간에 맞춰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영국 버킹검 궁전 근위병교대식에서 느꼈던 것처럼 다소 어설프고 작위적이었고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사실 근위병들의 군기도 그리 세보이지 않았고 절도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도 정문 입구를 무표정하게 지키고 있는 근위병 옆에서 살짝 기념사진을 찍었다.
체코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외세의 침략을 받아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나라다. 오스트리아 합스브르가 지배를 받아 고통받고 있는 체코인들의 모습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정문 조각상이 당시의 역사적 아픔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광장 한켠에 4명의 무명 음악가들이 첼로, 바이올린을 정열적으로 연주하는 거리공연은 색다른 볼거리였고 연주 솜씨도 꽤 훌륭했다.
프라하성 안에는 아담한 집 십여채가 일렬로 늘어서있는 좁다란 골목길이 있다. 있다. 1597년부터 형성된 이 거리에는 성에서 일하는 집시, 시종이 모여 살았지만 차츰 금박장인들이 모여들면서 ‘황금소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집들은 나중에 프라하성을 방어하는 포병들의 처소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황금소로 2층에는 갑옷, 무기류 등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석궁 체험장의 주인장 할아버지는 말도 잘 안 통하는 우리를 친절하게 맞이하며 활쏘는 법을 차근차근 일러주었다. 설명 대로 활 시위를 당기는 순간 10여m 떨어진 과녁에 뾰족한 화살이 쏜살같이 내리꽂는 찰나의 순간이 무척 짜릿했고 프라하에서의 즐거운 추억이 하나 더 쌓였다. 이곳을 방문하는 누군가에게 약간의 체험비를 내더라도 꼭 한번 활 시위를 당겨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황금소로의 작음 집들은 현재 11채가 복원되어 기념품점으로 바뀌었다. 다닥다닥 붙어있어 우리나라의 옛날 ‘판자집’을 연상시키는데 이렇게 작은 집에서 사람들이 먹고 자며 장사까지했던 고단한 프라하 민초들의 삶을 연상해 보니 기분이 묘했다. 현재는 집집마다 재봉사, 공예품 등 특색 있게 꾸며놓고 한켠에는 유리공예품, 체코를 대표하는 인형인 마리오네트, 액세서리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많아 관광객들로 늘 북적거린다.
이 거리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작가 카프카의 집이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나니 거대한 벌레로 변해버린 한 남자와 그의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 <변신>을 쓴 프란츠 카프카. 그가 실제 살며 여러 작품을 집필했던 집이다. 폐결핵으로 41세로 짧은 생을 마친 카프카는 살아생전 작가로서 주목받지도 못했고 체코를 떠나 본 적도 없이 단조로운 직장생활과 글쓰기를 병행하며 쓸쓸하게 살았다고 한다. 오늘날 체코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가 오랫동안 살았던 파란색의 집은 아주 작았다. 책과 기념품 엽서를 판매하는 그의 집은 벽에 명패만 박혀있을 뿐 평범한 기념품숍으로 전락해 그의 채취를 느끼지 못해 잔뜩 기대를 하고 찾아간 나를 실망시켰다.
계속 골목길을 따라 걸으며 성 지하로 내려가니 중세 고문실의 잔인한 형벌장과 감옥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프라하성은 높은 절벽 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건축 박물관’으로 불리는 프라하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특히 절벽 위에 지어진 성 틈새 공간을 단아하게 가꾼 누벽정원은 고즈넉하게 풍경을 감상하며 아픈 다리를 쉬었다 갈 수 있는 보석같은 공간이다. 이곳에서 성비트 성당에서 받은 감동, 500년 전 일반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황금소로의 여운을 음미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