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칠백의총에 잠시 들렀다.
올핸 봄이 일찍 찾아와서 그런지 4월 말인데도 늦은 봄이 된 듯한 느낌이다.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 조헌 선생과 승장 영규대사가 이끄는 칠백 의사가 금산을 점거하고 있던 왜적 15,000명과 세 차례의 전투를 벌였다. (1592년 8월 18일)
칠백의총은 이 전투에서 전원이 순절한 시신을 한 무덤에 모시고 있는 성스러운 곳으로 민족의 빛나는 호국(護國)정신의 성역이며 거룩한 제단이다.
팔뚝만한 잉어들이 뛰어노는 입구의 공원은 평온하고 깨끗하다. 아주 아름다운 동식물의 조화로움을 오감으로 느끼며 잉어밥을 한 웅큼 사서 던지니 총천연색 잉어들이 몰려든다. 500원 썼다.
비문에는 전투의 역사가 기록되었다. 중봉 조헌선생이 지휘하는 칠백의사가 청주성을 수복하고 금산싸움에서 순국하기까지의 사적이다. 일제강점기에 금산경찰서장에 의해 폭파되었던 것을 주민들이 일제의 눈을 피하여 땅속에 묻어두었다가 8·15 광복 이후 파내어 보관하여 오던 중 1971년 경역 확장시 그 파손된 비를 붙여서 비각을 세우고 보존하여 왔다고 한다. (문화재청 칠백의총 관리소의 말)
종용사(從容祀)
왜군들과 싸우다가 순절하신 선열들의 영혼을 모신 21위(位)의 위패가 안치 되어 있는데.. 찾는 이가 별로 없어서 안타깝기만 하다.
금산싸움에서 왜군들에게 강한 저항을 한 덕에 호남지방을 지킬 수 있었다고 한다.
종용사는 1647년 당시 호서, 호남지방의 유림에 의하여 건립되었다고 한다. 1940년 일제의 항일 유적 말살정책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1952년 복원되었고, 1971년 재건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약소했던 우리민족의 슬픈 역사를 알고 조상들의 나라지킴 정신을 올바로 계승하기 위해 자녀들을 데리고 이런 데 꼭 방문해야 하지 않을까 싶디.
정문을 나와 마주 보이는 언덕에 계단을 따라 몇 발짝 올라가 보면 탑이 있는데..
13.8m의 탑이다. 탑신 전면에는 『칠백의사순의탑』이라 새겨져 있다. 탑신 하부는 화강암에 용이 새겨져 있고, 탑신 상부에는 동(銅)으로 만든 창과 방패가 장식되어 있다. 경건함을 느끼고 내려왔다.
한 때는 위성통신 본거지이기도 했던 금산이다. 1970년 6월 2일 <금산위성통신지구국>이라는 이름으로 통신위성과 교신하던 이 시설이 지금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추억의 1970, 응답하라 1970.. 세월의 덧없음도 느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