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 많이 들어본 이름이죠? 젊으신 분들은 연예인 신동엽씨를 떠올릴텐데요.
오늘은 연예인 신동엽씨가 아닌 민족 시인 신동엽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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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학창시절 한번즘은 들어보고 읽어봤던 시 "껍데기는 가라"
바로 그 시를 지은 시인 신동엽의 생가와 문학관을 다녀왔습니다.
부여 중심지인 군청사거리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골목길에
푸른색의 기와가 올려진 작은 집을 볼수 가 있는데
바로 이곳이 시인 신동엽이 태어난 생가입니다.
이 생가는 시인이 태어나 청소년기를 보냈고 신혼초기 살았던 집으로
한때는 다른 분의 소유가 된것을 1985년 부인 인병선 시인이 되사서 복원을 했다고 합니다.
이후 유가족분들은 부여군에 생가를 기증하였으며,
2007년 등록문화재 제339호로 지정되어 오늘날까지 관리 받고 있었습니다.
깔끔하게 복원을 하고 기와를 올려 옛스러움은 다소 사라졌지만,
시인이 살았던 당시 생활을 가늠케 하는 소박한 모습들이 곳곳에 보였습니다.
생가 뒷편으로는 시인의 문학작품, 유물 등을 만날 수 있는
문학관이 자리 잡고 있어 일대기를 살펴 볼수 있었는데요.
문학관에 들어가기전 이곳은 백제시대때부터 조선시대까지 집터가 발굴된 곳이기도 하구요.
문학관에 들어서니 북카페가 우선 보이게 되는데요. 이곳은 시인의 작품 등을 읽을수 있고
휴식과 담소를 나눌 수 있게 깔끔하게 구성이 되어 있었습니다.
자~ 그럼 여기까지 왔으니 시인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이상향을 가지고 있었는지 살펴 보아야겠죠?
신동엽(1930~1969)
일제 강점기 때 시인은 이곳 부여에서 태어났고 한국전쟁을 거치고 민주화 운동인 419 혁명을 거치게 되죠.
그야말로 민족의 아픔을 대변하는 파란만장한 근대 역사의 회오리속에서 삶을 살았는데요.
이에 시인은 조국의 아픔, 외세와 분단, 부패한 권력을 이야기 하고자 여러 편의 시와 산문등을 남겼습니다.
직설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 고유의 민족 정서가 담긴 구절로 "영원한 민족시인"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하였습니다.
△ 2003년 추서된 은관문화훈장.
타계하시기 전까지 꾸준한 집필과 교육에 힘썼으며 그의 작품은 이후 민중문학의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민중문학이라는 이유로 70년대에는 출판금지를 당하기도 하였지만
문화발전에 공을 인정받아 2003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에 추서가 되었습니다.
△ 시인의 유품, 작품 등을 관람할 수 있는 전시관 내부.
저도 신동엽 시인의 모든 작품을 읽어 보고 이해한것은 아닙니다만
이곳에서 그분의 뜻을 조금이라도 이해할수 있었는데요.
시인의 몇 작품과 설명문을 읽어보니 과거-현재-미래를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현재가 어둡답고 해서 미래가 어두운 것은 아니요 힘든 시기를
잘 헤쳐나가고 바로 잡는다면 미래가 밝다는 희망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 시인의 생전 모습과 육필 원고.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그것이 수십년이 지난 오늘날 과연 아직까지 현재 진행중인가
아니면 꿈꾸었던 희망찬 미래인지 한번즘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시인이 생전 읽었던 서적(좌)과 연구도서(우)
지금 내리쬐는 한여름의 햇볕보다 더 뜨거운 애국심을 가졌고
한낮의 갈증보다 더욱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을 원하던 시인 신동엽.
또한 민족의 아픔을 이야기하며 나아가야할 길을 알려준 영원한 민족시인 신동엽!
이곳 생가와 문학관에서 시인이 가졌던 이상에 대해 새삼 깨닫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바따였습니다.^^
덧붙이며:
1. 제목은 신동엽 시인의 "산에 언덕에"에서 발췌했습니다.
2. 오는 7월 중순 부여 궁남지에서 연꽃축제가 열릴 예정인데요.
궁남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생가가 위치해 있으니
그때 방문해 보시는 것도 알찬 여행길이 될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