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을 어느 강기슭
물살을 거스르며
바람에 길을 내어주는
갈대의 군무
초록의 빛을 잃은 누런 몸통은
가득 찼던 알맹이를 다 내어주고
텅 빈 허리 그 한 마디
한숨의 바람조차 버거웁구나
꺾이어 동강난 빈 대 사이로
무심코 지나는 한줄기 바람...
낯설은 감촉에 나를 맡기며
온몸을 휘어 감는 뜨거운 전율
그리고 울림...
들리는가!
저무는 강가
흐느끼는 외줄기 피리 소리가
피리는 자신의 몸을 비워 바람의 길이 되어줍니다.
바람이 지나는 순간 피리는 그 거룩한 에너지의 놀라움과 경이에 몸을 떨고 울음을 터뜨립니다.
피리의 소리는 피리 자신보다 더 큰 대기의 기운을 받아들여 자신의 몸을 지나 다시 세상으로 돌려보낼 때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피리는 자신의 몸을 깨끗이 비우고 웁니다.
비어있는 자신의 속으로 다른 것이 들어와서 속상해서 우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내 자신을 비우고 내가 아닌 모든 위대한 에너지들이 내안을 휘몰고 지나갈 때 내가 경험해 본 적 없고 예측할 수 도 없었던 나보다 더 큰 나를 만나면서 흘리는 감동의 울음입니다.
이렇듯 단 한 토막의 피리처럼 모든 악기는 자신보다 더 큰 에너지에 자신을 내어주면서 자신을 울립니다. 배우라는 악기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다루기 힘든 악기입니다. 연주자와 악기가 한몸이라서 더욱 다루기 힘든 악기입니다. 소리, 움직임, 정신과 영혼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오랜기간 동안 수련을 해왔지만 명확한 답을 모릅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이라는 가장 큰 수수께끼를 향한 끊임없는 질문과 도전은 큰 의미를 갖습니다.
이전과 지금의 차이가 있다면... 이전의 피리는 속이 가득 차있었습니다. 멋있어야 했고 자신감 가득해야 했고 내 소리가 어떻게 들릴지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에 급급했습니다. 과거의 속이 가득 찬 피리는 외부의 기운을 받아 들이기를 거부한채 자신의 몸을 쥐어짜서 소리를 내려고만 했습니다. 미래의 피리는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세상에 얘기합니다. 자신의 욕심, 시기, 미움, 질투의 모든 이고를 깨끗이 비우고 주변의 모든 흐름을 향해 몸을 열어줍니다. 우주의 모든 기운이 그곳으로 흐르며 이 세상 가장 고귀한 악기는 한 번 더 온몸을 울리며 세상에 포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