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축제에서 공연되었던 거리예술들을 사진과 함께 소개한 책
<거리예술의 초대 과천축제 2003-2014>가 출간되었다.
이렇게 축제의 역사를 정리하며 과천축제와의 인연을 마무리하는 임수택 감독을 만났다.
6월22일(월) 7시 문래동의 작은 예술인 공간 꼴까페에서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많은 예술인들과 축제기획자 그리고 축제애호가들이 모여들었다. 많은 이들이 축제화보집 <거리예술의 초대 과천축제 2003-2014>의 출간을 축하했지만 우리는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 거리예술축제의 한 획을 그은 과천축제는 임수택이라는 거장의 기획이 없었다면 오늘날에 이르지 못했다고 축제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과천이라는 서울의 한 위성도시를 세계적인 예술도시로 등극시켜오던 터라 그의 사임이 미치는 부정적 파장이 적지는 않을 것이라는 중론이다.
그가 남긴 말을 그대로 옮겨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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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거리예술인 여러분,
지난 3월31일 (재)과천축제 이사회는 정관에서 “거리예술“을 삭제하고, 말(馬) 중심의 2015년 과천축제 기본계획서를 승인하였습니다. 조직에서도 사무처장직을 신설하여 맨 위에 두고, 예술감독을 그 밑에 비상근 자문역 정도로 하락시켰습니다. 이에 따라 저는 과천축제를 떠나려고 합니다.
기본계획서에 따르면 올해 과천축제는 말 관련 공연과 마장마술, 승마체험, 말 관련 영화상영과 시민참여 퍼레이드 등을 통해 문화관광형축제로 치른다고 합니다. ‘거리예술’ 등 야외공연예술제로 치러지던 과천축제의 18년 전통이 파괴된 것입니다. 이것은 고대 이라크 유적을 파괴하는 이슬람국가(IS)의 반문화적 폭력과 다를 바 없습니다.
저는 이에 저항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으나 우리 사회에서 예술은 아주 소수자에 불과하였습니다. 우리 사회의 비문화적인 풍토는 너무도 절망적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세계화시대 이후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보편적인 현상일지 모릅니다. 예술이 노예처럼 핍박받고, 돈이 하나님처럼 숭배되는 현상 말입니다. 미래에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도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페터 투리니의 희곡 “마법같은 오후”(Magic afternoon)에서 주인공은 좁은 방안에서만 지내다가 마지막 장면에 장롱 속으로 들어갑니다. 우리도 이처럼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까요? 이틀 간 술을 퍼마시고 세상에 갖은 욕을 퍼부었습니다. 잠도 못 잤지요.
오늘 아침에야 정신을 차리고 소식을 전합니다. 우리가 이대로 쓰러져야 할까요? 세상에 그러니 예술을 포기해야 할까요? 그러다 적어도 난 예술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예술이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저 자신을 위해, 제가 숨을 쉬고 살기 위해 꼭 필요했습니다.
저는 이 절망을 기회로 삼고자 합니다. 실제로 많은 예술이 핍박 속에서 화려하게 피어났습니다. 핍박이 없었더라면 그처럼 힘있는 예술이 생겨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과천축제에서 거리예술이 사라진 것에 대해 많이 아쉬워하실 것입니다. 작품을 만들겠다는 의욕도 떨어졌을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희망마저 포기하진 맙시다. 우리에게는 서울과, 안산, 고양 등에서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기회는 남에게서 주어지기도 하겠지만 우리 스스로 만들어야 하고 또 만들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를 기다리던 수많은 관객의 호기심어린 눈동자를 잊지 맙시다!
그동안 제가 축제감독직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분 덕분이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거리예술과 여러분을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 다른 역할로라도 우린 다시 만날 것입니다.
임수택 (sutaeksi@hanmail.net)
문학박사 (한국외대)
연극연출가
소극장 알과핵 극장장 (1999-2004)
한국거리예술센터 대표 (2009-2015)
과천축제 예술감독 (2003-2014)
서울문화의밤 총감독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