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날아가는데
기차는 자꾸 기어가고 ..
시골역에 예쁜 싯귀가 반기고 있다.
충청북도 영동역과 추풍령 사이의 황간역이다. SINCE 1905
무궁화호 열차를 내리자마자 넝쿨이 우거진 웰컴 아치가 반긴다.
역사로 들어가면서 힐링의 세계로, 문학의 세계로, 미술의 세계로, 그리고 음악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든다.
역에 내리면 어디로 갈까 하고 스마트폰을 꺼내며 급하게 행낭을 꾸리고 떠나려다가 발길을 멈추게 된다.
역전 광장에 시인 정완영, 정지용, 안도현.. 아름다운 詩가 하얀 글씨로 적혀있는 항아리가, 한 백개쯤 되는 게, 군데군데 세워져 있다. 아니 디자인되어 있다. 세상에..
원두막도 있고 허수아비도 있다. 빈 마차 위에 항아리가 있고 자전거 주차장이 있는데 자전거도 빌려 탈 수 있다. 그런데 기차타고 온 사람만 탈 수 있단다. 역이니까.. 차 가지고 온 사람 버스타고 온 사람은 역장이 반기지 않는다.
시골역을 마음이 따뜻해지는 관광지로 둔갑시킨 장본인은 바로 강병규 역장이다.
이 모든 서비스가 그의 아이디어요 그의 작품이다.
황간역
- 김학주
황간역에 내리면
고향이 먼저 와서 기다린다
마차 태워 배웅하던 아버지와
정화수 떠놓고 기도하던 어머니,
술래잡기하던 친구들과
항아리 뒤에 숨어있던 형제들도
저 멀리서 기적소리가 울리면
호미, 쟁기 내려놓고 역에 나와 기다린다
기다리던 詩가 내릴 때마다
철로에는 기쁨이 잡초처럼 피어나고
그리운 詩가 오지 않았더라도
다음 기차를 기약하는 마음의 고향역
황간역에 도착하면
詩가 내리고
사람과 음악과 그림도 내리는데
마중 나온 역장이
반가운 표정들을 항아리에 담는다
강병규 황간역장은 만나보지 못했지만 내가 대통령이나 장관이라면 문화관광 표창장을 주고 싶다.
강병규 역장을 이 곳 주민들 중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이렇게 센스있게 고향역 으로 변신시키다니..
역사의 옥상에 왠 여러가지 색깔의 깃발이 펄럭인다. 올라가 보니 모든 깃발의 천에 시(詩)가 적혀 있다.
그리고 이층에 황간마실카페가 있어 편안하게 여행자의 오후 시간 한 짬을 달콤하게 장식해 준다.
강병규 황간역장은 예술가로 나서도 성공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바리스타 역할을 자처하며, 숙직실을 카페로 개조하고, 황간마실카페를 열어, 관광객을 커피와 함께 편하게 맞이한다.
카페에서 차한잔하며 기차를 기다리는 기쁨이 어떨까?
기차에 내려서 인근 관광지, 백화산(白華山, 해발933m)이나 고개넘어 경북 상주 쪽으로 본격 여행 직전에 잠시 쉬어가는 곳이다.
역장의 집무실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놓기도 했다. 철도원 모자, 역장의 모자를 쓰고 앉아서 집무를 해 보며 포토존으로 이용해 본다.
아기자기 오밀조밀 잘 꾸며 놓았다.
진한 커피 한 잔 사서 마시고 시간 맞으면 옥상의 무대에서 공연 한편 때리고 내려 가는 기쁨, 어디다 비하랴~
갤러리 같은 분위기에서 예쁜 작품을 감상하며 커피를 마신다.
카푸치노 위의 하얀 구름을 보다가
창밖을 보니 백화산(白華山)쪽에 흰구름이 넘실넘실 기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