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키크롬로프
Cesky Krumlov
13세기 보헤미아의 무역이 활발하던 곳으로 블타바 강변을 중심으로 성이 지어지고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보헤미아 지역의 귀족인 로젠부르크 가문이 소유하게 된다. 1602년에 신성로마제국의 루돌프2세가 이 성의 주인이되고, 에겐부르크 가문에 양도되었다가 1719년에는 오스트리아의 슈바르첸베르크 집안이 소유했던 곳이다.
제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토가 된다. 공산국가로 오래 있으면서 슬픈 역사는 계속되어 온 땅이다.
피지배 영토에 이렇게 아름다운 지배층의 유산을 간직하고 있다는 게 우리가 또 배울 점이다.
우리나라는 1994년 중앙청 청사를 일제의 잔재라며 때려 부순 적이 있다. 그 당시 세계인은 의아해 했지만 우리 국민은 당연한 듯이 받아들였다.
역사의 아픔도 간직한 이 곳 체코의 도시들, 특히 작은 프라하라고 불리우는 이 곳 체스키크롬로프는오랜 피지배 역사를 간직하여 아름다운 동화마을이 되었다.
체코의 년 평균 유입 관광객 수가 1억명을 넘는다고 하니, 어찌 여기 세계 굴지의 관광공화국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단체사진 사진 찍는 곳엔 항상 관광객들이 북적인다. 망토다리를 건너 성 안으로 들어가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사진을 찍는다. 사실 여기까지 올라오면 사진 찍을 곳이 천지삐까린데 그걸 못 참고 버릴 사진을 많이 찍으며 올라오기 일쑤다.
망토다리(Cloak Bridge)는
버스에 내려 구시가지로 내려갈 때 통과하는 거대한 공중의 성을 연결하는 육교라 할 수 있다. 웅장한
석조기둥이 삼층으로 된 복도형 다리를 지탱하고 있다.
망토다리에서 내려다보는 마을 풍경은 우와~ 소리가 절로 나게 만든다.
온통 빨간색 지붕의 아름다운 마을이다. 아무렇게나 셔터를 눌러대도
그림엽서가 되고 캘린더 그림이 된다.
이발사의 다리 (Lazebnicky Most)
체스키크롬로프 城과 구시가지를 잇는 라체브니키 다리, 언뜻 볼품 없는 나무판자때기 바닥의 다리이지만
슬픈 이야기가 얽혀 있어서 발길을 멈추게 한다.
체코말로 라체브니키(Lazebnicky)는 이발사(barber)라는 뜻.
16세기말 오스트리아 신성로마제국의 합스부르크 왕가가 다스리던 곳, 독일 오스트리아 포함하여 보헤미아(체코), 헝가리, 크로아티아 등이었는데 루돌프2세 황제가 다스리던 때였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아무 집안 하고 결혼을
할 수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주로 근친결혼을 했다. 근친상간의 결과로 여러가지 정신질환이나 기형아 출산확률이 높다는
것은 유전학상 증명이 되었지만 "합스부르그 턱"이라고 하는 주걱턱이 만연한 것도 바로 근친혼인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루돌프2세의 아들이 심한 정신질환을 앓자 이곳 체스키크롬로프로 요양을
보냈다. 그런데 이 아들이 이발사의 딸에게 반하여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결혼까지 하게 되는데 어느날 정신병이 도져 아내를 살해하게 된다. 그런데
그 사실을 망각한 채 살인자를 찾겠다고 난리법석을 떨게 된다. 그는 마을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살인자
누명을 씌워 죽에게 되는데 이를 보다 못해 이발사, 즉 그의 장인이 ‘내가
딸을 죽였소’라며 거짓 자백을 하게 되고 그는 처형을 당한다. 마을
사람들이 더 이상 죽어가는 것을 볼 수 없어 거짓 자백을 한 그의 희생을 기리며 마을사람들이 다리를 만들어 세운다. 그 다리 이름을 ‘이발사의 다리’라고
하여 지금까지 불려지고 있다고 한다. 그 스토리를 듣고 나니 다리 밑에 흐르는 물결이 핏물처럼 보이고
슬픈 생각에 한참동안 다리 위에서 머물게 했다.
성(聖) 얀 네포무츠키 신부가 반겨준다. SAN CTO. IANNI NEPOMVC ENO
보헤미아 왕 바츨라프4세가 어느 날 왕비의 외도를 의심하여 얀 네포무츠키 신부에게
고해성사 내용의 공개를 요구한다. 얀 신부는 하느님과의 약속이라 밝힐 수 없다고 거부하자 심한 고문을
당하기 시작한다. 결국 얀 신부는 혀가 잘리고 발목에 돌을 매달아 불타바江에 던져진다. 그 후 별 다섯개가 강위로 떠올랐고 훗날
보헤미아의 카톨릭 성인으로 추대된다. 그의 상(像)은 프라하의 카를교(橋)에도 있고 프라하의 성에도 있다.
로젠부르크(ROSENBURG 장미의성)
온통 장미문양이 대문에 새겨져 있다.
보헤미아 왕국보다 한참 이전인 로젠부르크 가문이 통치하던 시절, 영주가 살던 궁전, 예배당, 극장, 그리고
넓은 정원들이 즐비하다.
온갖 건축양식을 자랑한다. 고딕
바로크식 로코코식 르네상스식 ..
이 곳은 관광지로서 경제활동을 못하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장려하는가 보다.
상업적으로
발달하여 수많은 가게, 카페, 레스토랑, 갤러리, 샵 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싸고 좋다고 사는 기념품들이 대부분 중국산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 많지 않다.
에곤쉴레(Egon Schiele, 1890-1918)는 유명한 오스트리아
출신 누드 화가다.
그의 아버지는 오스트리아 작은 기차역의 역장이었고 어머니가 이 곳 체코의 남부 보헤미아의
작은도시 체스키 크롬로프 태생이다.
그는 열여섯살에 비엔나의 미술학교에 입학했고 3년만에 학교를 때려치고 키스(KISS)라는 대작을 그린 구스타프
클림트를 만나 예술적 교류를 한다. 그리고 성(性)에 심취하여 누드화를 그리게 되고, 어머니의 고향인 이 곳 체스키크롬로프에 가서 작품활동을 활발히 하게된다. 그러다가 불행하게도 마을의 여성 모델을 억지로 고용하며 문제를 일으키며 쫓겨나게 된다.
에곤쉴레는 여기서 쫓겨났지만 그의 명성은 알아준다. 지금도 쉴레 기념 박물관이 이 곳에 있다.
여기는 그의 외갓집 마을이기에..
체스키크롬로프 (Cesky Krumlov)
체코의 남단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
프라하에서, 짤스부르그에서, 그리고 빈(비엔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지만 대중교통은 그리 발달하지 않아서 접근성이 좋지만은 않다.
체스키크롬로프에서 프라하(Prague) 200Km 2.5시간
프라하보다 오스트리아 국경이 더 가깝다. 린츠까지 1.5시간, 할슈타트까지는 3시간.
작은 프라하 체스키 크롬로프, 빼 놓을 수 없는 관광지..
마을 전체가 문화재요 박물관이면서..
이야기가 있기에..
다시 가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