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아래 고즈넉히 자리잡은 영주시 순흥면 사무소..
순흥(順興)이라는 땅 이름은 조선조에는 순흥도호부라는 큰 행정구역의 본산이었다. 지금의 영주시, 풍기읍, 봉화군을 합친 엄청 넓은 땅이었다. 현재 순흥면으로 전락했지만, 면사무소가 조선의 순흥도호부의 관아터라는 게 자랑스럽지 아니한가?
그리고 순흥을 알기 위해 조선의 역사 일부를 되돌아 본다.
1453년 계유정란을 우리는 잘 안다. 단종애사의 시작이다.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을 폐위시킨 뒤 영월 청령포로 유배를 보내고, 단종 복위사건의 한 사람인 금성대군을 내쫓은 곳이 바로 순흥도호부다. 금성대군은 세종대왕의 여섯째 아들이라서 수양대군의 친동생이다. 금성대군은 순흥부사 이보흠과 영합하여 단종 복위의 큰 일을 꾀하게 된다. 그러나 어느 관노가 밀고함에 따라 모의가 수포로 돌아 간다. 금성대군, 이보흠을 포함하여 700여명의 민간 군사들이 죽게 되는 곳이 이 곳 순흥이다. 그 때의 핏물이 내성천 물길을 따라 피끝마을 동촌리까지 떠내려 갔으니, 순흥도호부는 결국 벌을 받아 없어지게 된다.
성리학의 대부 안향선생과 죽계별곡으로 유명한 안축 선생을 아는가? 모두 순흥 안씨를 만들어 낸 인물이다. 이 곳 순흥은 순흥 안씨의 세거지로도 유명해졌다.
흥선대원군의 척화비를 본다. 양이침법비전즉 화주화매국 (洋夷侵犯非戰則 和主和賣國)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곧 화친하는 것이니, 화친을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일이다"
이성지합, 일심동체의 상징인 연리지송(連理枝松)을 보며 소통과 애정을 배워보자.
아니, 요즘 정치인들이 제발 좀 배웠으면 좋겠다.
순흥도호부 관아 있던 자리이다. 출토된 석물들이 그대로 보여지니 이 곳은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