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두 산아 용두 산아 그리운 용두 산아
세월 따라 변하는 게 사람들의 마음이냐
둘이서 거닐던 일백구십 사 계단에
즐거웠던 그 시절은 그 어디로 가 벼렸나
잘 있거라 나는 간다 꽃 피던
용두산아 용두산 엘레지
최지수 작사 용두산에레지의 2절 가사다.
요즘 인기있던 TV프로 보이스트롯과 미스트롯2에서 자주 애창되던 곡이다.
용두산은 옛부터 소나무가 울창하여 송현산(松峴山)이라 불렀고, 초량소산(草梁小山)이라고도 하였다. 그리고 용이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와 바다를 향해 뻗어 나가는 용의 머리에 해당하여 용두산이라 불렸다.
이 곳 용두산에는 조선 후기 초량왜관(1678~1876)이 있었으나 개항(1876년) 이후 일본인 전관거류지가 조성되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식민지 부산부의 중심지이자 항일독립운동의 거점이 되기도 하였다.
광복후 한국전쟁기에는 국립국악원, 중앙정부기관 일부 그리고 피난민들의 판잣집들이 있었으나 1954년 용두산 화재로 불타 없어졌다. 그 후 이승만 대통령 때 녹화사업이 이루어져 우남공원으로 불리다가, 4.19때 용두산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부산항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용두산 공원..
해발 69m꼭대기에 높이 120m의 부산타워가 우뚝 솟아 있다.
숲이 우거진 산책로가 있고,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다.
시민의 종, 꽃시계, 열린문화공연장, 부산출신시인의 시비, 벽천폭포 등이 있어 관광지가 되었고, 부산의 대표 도시공원이다.
부산의 축제가 이 주변에서 올 겨울 수놓을 거라고 한다.
오늘도 (2021년 11월 14일 Sunday 낮에) 제68회 한얼노인교육축제가 열리고 있다.
왜관은 조선과 일본 양국 문인이나 지식인이 만나 필담을 나누고 양국의 문화교류가 이루어지던 곳이다.
조선후기에는 부산에 절영도왜관, 두오포왜관, 초량왜관 등 세 곳이 있었는데, 이들 가운데 초량왜관은 가장 오래 존속하였다. 약 200년 존속해 오던 초량왜관은 1876년 개항과 함께 일본전관거류지로 바뀌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