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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태민안과 풍농풍어를 기원하며 전통문화의 전승 및 향토의 역사성과 전통성 계승 발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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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독립운동정신의 계승과 양양인의 높은 기상과 애국 애향심 진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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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화합과 향토애를 고취시키는 군민축제의 장으로 승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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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 불교 · 호국문화가 함께하는 향토의 문화적 독창성 부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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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문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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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장에는 선사문화의 시대별 유적이 넓게 분포되어 하나의 큰 선사문화권을 이루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신석기인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제일 먼저 취락을 이루고 살았던 오산리 신석기 유적지의 주거지 그리고 청동기, 철기 시대의 집자리와 무덤이 많이 산재해 있고 철기시대 무덤주위에 신라시대 무덤도 있었습니다. 이는 선사인들의 삶과 죽음의 증거로서 당시 생활상을 엿볼수 있으며 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사람이 살았다는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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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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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장에는 신라통일 직후부터 북상하기 시작한 불교문화가 당시 한 고을로서는 가장 크게 번창하였고, 그 사찰(낙산사, 영혈사, 오색선사, 선림원, 진전사등)의 창건이 거의 우리나라의 고승대덕을 지칭하는 큰 스님들에 의해 창건되었습니다. 특히 낙산사는 세계 8대 관음성지의 한 곳으로 고려를 거쳐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궁중불교의 도량으로 각광을 받았으며, 한국불교의 주체인 오늘의 조계종을 신라로 연결시켰을 때 그것은 바로 진전사로 직결되는 것입니다. 이곳의 불교문화야말로 오늘의 정통을 찾을 수 있는 원류가 되는 것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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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문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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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군은 우리나라 중동부 변방에 위치하여 서쪽으로는 험준한 태백산맥이 가로놓여 있고, 동쪽으로는 외침에 취약한 긴 해안에 연접하여 영동에서 영서로 넘어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어 지정학적으로 숱한 외침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고려초에는 양주성을 축성하여 향토수호의 기지로 삼았고, 고려중엽에는 거란병의 침입을 대파하여 양주방어사를 설치하였습니다. 그후 조선 성종때에는 조산에 대포수군만호영을 설치, 영동지방의 해상방어까지 맡은 군사 요충지가 되었습니다. 구한말에는 의병항쟁을 비롯하여 특히 기미독립만세 운동은 지방으로서는 가장 맹력한 구국항쟁이었으며, 신간회조직, 농민조합운동 등이 계속되었고, 8.15해방 이후에는 반공운동의 진원지가 되었습니다. 6.25동란 때에는 국군 6개 사단이 창설되었고, 근년에는 사단, 군단이 창설되어 명실공이 국군의 제2요람이 되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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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산문화제 요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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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축제는 역사성과 전통성을 계승하고 위와같은 향토문화의 특성을 살린 고유한 독창성을 부각 시키기 위하여 장군성황제를 비롯하여 신석기인 가장행렬, 불교제등행렬, 양주방어사 행차, 대포수군만호행차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제전 및 영신행렬을 구성하였습니다.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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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정보 최종수정일: 2009-08-1013:17:11 TheFestiva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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