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회 강진청자축제
청자는 중국에서 5~6세기경부터 생산했으며, 우리나라는 8~9세기경 생산이 시작되었는데 바로 이런 시기에 강진에서는 20km 떨어진 청해진에서 중국과 무역을 활발히 전개한 장보고대사의 활동의 영향을 받아 강진군 대구면 용운리에서 생산을 시작하여 14C 쇠퇴기까지 고려 500년 동안 대구면 정수사에서 미산까지 6km의 산하에서 집단적으로 청자를 생산하였다.
우리나라 국보, 보물급 청자 중 80%가 강진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세계 여러 곳에 귀중품으로 보존되어 있는 명품들 대부분이 강진의 작품들이다. 전국적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400여기의 옛 가마터 중 200여기의 가마터가 강진에 현존하고 있는 만큼 청자의 집산지로, 강진이 청자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던 점은 해상교통의 발달과 다른 지방에 비하여 태토, 연료. 수질. 기후 등 여건이 접합하였기 때문이다.
천년의 신비를 찾아서 떠나는 “남도답사 1번지 강진”
강진군에서는 청자의 발상에서 쇠퇴기까지 약 500여년간 청자문화를 꽃피운 문화군민의 자긍심을 대내외에 널리 알리고 우리지역의 문화관광자원과 연계한 독창적이고 주체성 있는 축제개최로 관광객을 유치하여 지역경제 활성화 및 지역발전의 기틀을 마련코자 1973년부터 개최해 온 "금릉문화제"를 개칭하고 새로 시작하는 의미로 1996.9.15~9.17(3일간) 제 1회 청자문화제를 개최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