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용주사는 신라 문성왕 16년(845년)에 창건된 갈양사로서 청정하고 이름 높은 도량이었으나, 병자호란 때 소실된 후 폐사되었다가 조선시대 제22대 임금인 정조(正祖)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으로 옮기면서 절을 다시 일으켜 원찰이 되었다.
28세의 젊은 나이에 부왕에 의해 뒤주에 갇힌 채 8일만에 숨을 거둔 사도세자의 영혼이 구천을 맴도는 것 같아 괴로워하던 정조는 보경스님으로부터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설법을 듣게 되고 이에 크게 감동, 부친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절을 세울 것을 결심하였다. 경기도 양주 배봉산에 있든 부친의 묘를 천하제일의 길지(吉地)라 하는 이곳 화산으로 옮겨와 현릉원(뒤에 융릉으로 승격)이라 하고, 이곳에 절을 지어 비명에 숨진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수호하고 그의 명복을 빌게 하였다.
불교를 정치적 사회적을 억압하고 있던 조선시대 당시에 국가적 관심을 기울여 세웠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낙성식 날 저녁에 정조가 꿈을 꾸었는데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했다 하여 절 이름을 용주사라 불렀고 그리하여 용주사는 효심의 불찰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