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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사적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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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680-61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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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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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빈의묘,소현세자 민회빈의묘,석양 석마 석호,혼유석,강감찬19세손,폐빈 사약,소용 조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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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별 / 지정번호 |
사적 제357 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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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년월일 |
1991년 10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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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노온사 동산 14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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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자 |
국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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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광명시청 | | | 이 묘소는 조선조 제16대 인조의 원자 소현제자빈 강씨(민회빈)가 잠든 농원이다. 세자빈 강씨는 우의정을 지낸 문정공 강석기의 딸로 인조5년(1627년)에 세자빈이 되었고 병자호란때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에 가서 많은 고생을 하고 귀국하였다. 그러나 소현세자가 세상을 떠나자 평소 민회빈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인조의 후궁 조씨(소용)등이 민회빈이 소현세자를 독살 하였고 왕실을 계속 저주한다고 거짓을 꾸며 대는 바람에 인조23년(1645년)에 폐빈되어 그 다음해 사약을 받고 죽임을 당하였다. 그 뒤 숙종 44년(1718년)에 세자빈 강씨의 결백함이 밝혀져 민회빈으로 복위되고 고종7년(1903년)에는 이 묘를 영회원이라 이름 지었다. 이 묘소는 조선조 제16대 인조의 원자인 소현세자의 부인 민회빈 강씨(민회빈)가 잠든 농원이다. 세자빈 강씨는 우의정을 지낸 문정공 강석기의 딸로 인조5년(1627년) 에 세자빈이 되었으나 병자호란의 여파로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갔 다가 귀국하였다. 심양에서의 볼모생활동안 소현세자를 도와 조정을 대표하여 진취 적인 태도로 조선 백성의 구제 및 양국간의 관계 조정에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귀국 후 두달만에 소현세자가 세상을 떠나자 봉림대군이 세자가 되어 귀국하게 되었다. 이 후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인조의 후궁 조씨 등이 민회빈이 왕실을 저주 한다고 무고하여 인조23년(1645년)에 폐빈되고 그 다음해 죽임을 당하였다. 그 뒤 숙종 44년(1718년)에 세자빈 강씨의 결백함이 밝혀져 민회빈으로 복위되고 고종7년(1870년)에는 영회원이라 개칭하였다. 현재 능원의 봉분앞에는 혼유석, 장명등이 있고 봉분의 좌우에는 문인석, 망주석, 석양, 석마, 석호등이 남아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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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정보 최종수정일: 2009-08-0517:25:51 Joy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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