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에 분주원(分廚院)이라 개칭
분원리 일대는 1752∼1884년 왕실에서 사용하던 도자기를 굽던 조선시대 마지막 관요가 있던 곳으로 당시 280여개의 가마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선 초기의 분청자요지(粉靑瓷窯址)들과, 조선 초기로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의 관영사기제조장(官營沙器製造場)인 분원(分院)의 설치, 이동에 따른 백자요지군(白瓷窯址群) 그리고 약간의 질그릇가마터와 근현대(近現代)의 백자(白瓷)가마터들로 핵심(核心)은 경안천(慶安川)의 지천인 번천(樊川), 우산천(牛山川), 곤지암천(昆池岩川)의 좌우 구릉일대에 널려있다.
분청자(粉靑瓷)의 가마터로는 번천리(樊川里), 도마리(道馬里), 도수리(陶水里), 관음리(觀音里), 쌍동리(雙東里), 학동리(鶴東里) 등에 남아있으며, 15세기(世紀)의 상감(象嵌), 인화분청자(印花粉靑瓷)들로 백자(白瓷)가 발달되기 전의 가마터들로 주목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