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에 축조되었다가 조선 태종 9년에 다시 지어진 산성이다. 이후 왜군의 전라도 진격작전 당시 파괴되었다가 1620년에 다시금 짓고 1653년에 견고한 병영기지로 다시금 재탄생하게 된다. 지금의 산성은 1994년 성곽복원사업을 통해 복구된 것이며, 남문을 통해 들어가 동문, 북문, 서문으로 한 바퀴 도는 등산로가 연결되어 있다.
성안에는 곡식 1만 6천 섬이 들어갈 수 있는 군량미 창고가 있었다. 또한 객사, 보국사 등 10여 동의 관아와 군사 시설이 있었으나 동학농민운동 때 불타 없어졌다.
동서남북문의 터가 있는데 이 4개소의 통로 외에는 절벽 등으로 통행이 불가능하여, 요새로는 더할 데 없이 좋은 지리적 특성을 갖고 있다. 이 같은 지리적인 특성으로 임진왜란 때는 남원성과 함께 의병의 거점이 되었고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는 치열한 싸움터가 되어 성안의 모든 시설이 불에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