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기념물 제11호
면 적 158,677㎡. 최대 수심 13.5m
지 정 일 1976.12.21
소 재 지 충북 제천시 모산동 241
가족나들이 커플여행지 시민휴식처로 각광을 받고 있는 이 호수는 오래된 저수지..
의림지는 원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저수지로 본래의 이름은 임지였다.
충청도를 호수의 서쪽이라 하여 호서지방이라고도 부르는데,여기서 말하는 호수는 바로 의림지를 가리킨다. 호남지방이 이 호수의 남쪽이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그만큼 의림지는 오래되고 유명한 저수지였다.
이 저수지의 조성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신라 진흥왕 때 악성(樂聖) 우륵(于勒)이 개울물을 막아 둑을 쌓은 것이라고도 하고, 그로부터 700년 뒤 이 곳에 온 박의림(朴義林)이라는 현감이 보다 견고하게 새로 쌓은 것이라고도 한다.
오래된 저수지이므로 개보수(改補修)가 불가피하던 중 조선 세조 때 정인지(鄭麟趾)가 체찰사(體察使)가 되어 이 곳에 왔다가 3도의 병력 1,500명을 동원하여 대대적으로 공사를 시행했다는 기록 등이 있다. 그 후에도 1910년, 48년, 73년에 손질을 거듭하며 오늘에 이르렀는데 농업용수가 넉넉지 못한 이 고장에서의 의림지의 역할은 매우 커서 방죽 아래쪽 청정들[靑田洞]의 농사는 전적으로 이 못물에 의존하는 형편이다.
의림지 주변은 수백 년 묵은 노송과 수양버들이 둘러싸고 있고 영호정(暎湖亭) ·경호루(鏡湖樓) 등의 정자도 있어 제천 시민의 휴식처로서 큰 몫을 차지한다. 또한 해빙기에 산란(産卵)을 하러 이 곳에 모이는 빙어(氷魚)도 유명하다.
고려 성종 11년(992)에 군현의 명칭을 바꿀 때 제천을 의원현 또는 의천이라 불렀는데, 그 이유로 저수지의 이름에 ‘의’자를 붙여 ‘의림지’라 부르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신라 진흥왕 때의 음악가인 우륵이 만들었다고 하나 확인할 수 없으며, 또 다른 이야기로는 현감인 박의림이 만들었다고도 한다.
문헌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조선 세종(재위 1418∼1450) 때에 충청도관찰사인 정인지가 고쳐짓고, 다시 세조 3년(1457) 체찰사가 된 정인지가 크게 보수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뒤 1910년부터 5년간에 걸쳐 3만여명이 참가하여 보수하였고, 1972년 대홍수로 서쪽 둑이 무너져 이듬해에 보수하였다.
저수지의 둘레는 약 1.8㎞, 면적은 158,677㎡, 저수량 6,611,891㎡, 수심은 8∼13m이며, 주위에는 순조 7년(1807)에 세워진 영호정과 1948년에 세워진 경호루가 있다.
현재는 제천 지방의 경승지로, 호수 주변에는 순조 7년(1807년)에 세워진 영호정과 1948년에 건립된 경호루, 그리고 수백년을 자란 소나무와 수양버들, 30m의 자연폭포 등이 어우러져 풍 치를 더하고 있다. 특히 특산물로서, 산란하는 해빙기에만 볼 수 있는 공어(일명 빙어)가 있 는데, 회어로서 진미를 맛볼 수 있어 관광객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으며,주위에 솥밭공원, 국 궁장, 파크랜드등이 조성되어있어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다.
제천의 의림지는 김제의 벽골제, 밀양의 수산제와 함께 원삼국시대의 수리시설로서, 당시의 농업기술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