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지정 유형문화재 43호
추사 김정희 [1786(정조 10) ~ 1856(철종 7)] 생가
조선후기의 학자·서화가·금석학자로 이름을 날린 이가 추사 김정희다. 추사의 본관은 경주(慶州)고, 충청남도 예산에서 출생했으며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박제가의 문하생으로 학문의 기초를 닦았다.
신례원에서 당진으로 가는 길가인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추사고택이 자리
잡고 있다.
추사 김정희가 이곳에 살기 시작한 것은 그의 할아버지 때부터다.
당시만 해도 충청도 53현에서 한 칸씩 지은 53칸 집이었으나 행랑채 19칸이 손실되어 현재 34칸만 남아있다. 추사고택은 앞으로는 예당평야가
펼쳐지고 뒤로는 얕은 동산이 있는 명당 터에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사랑채가 있고, 안채와 안채 뒤쪽에 사당이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 안채, 사당으로 조화롭게 건물이 구성되어있다
사랑채 댓돌 앞에 세워진 이 돌기둥은 해시계 받침 용도로 쓰였으며
석년(石年)이라는 글씨는 추사선생의 아들인 상우(商佑)가 추사체로 쓴것을 각자한것이다.
대문을 들어서면서 사랑채에 김정희의 대표적인 작품인 세한도(국보 제180호)
복사본이 걸려있다. "날이 차가워진 다음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는 논어의 한 구절을 뜻하는 세한도는 59세 때인 1844년
제주도 유배 당시 지위와 권력을 잃어버린 스승을 찾아온 역관 이상적의 인품을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하여 그려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