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군사박물관
그 시대 군사의 세력 및 영역변화 등 백제의 전쟁역사와 활동을 보다 쉽고 흥미롭게 만나볼 수 있다. 또한 백제의 군사방어시설로 가장 중심적 역할을 하는 풍납토성, 웅진성, 부소산성 등의 백제 주요 성을 모형화하여 전시하였고, 토성의 축조과정과 성의 기능과 방어체계 등을 살펴 볼 수 있다.
그 당시의 의장, 복식 및 무기 등을 알 수 있고, 전쟁 수행에 필요한 백제시대의 무기인 도검류, 궁시, 도끼 등을 살펴 볼 수 있다. 대표적 무기인 환두대도 제작과정 모형을 통해 상세히 만나 볼 수 있다.
백제의 장군 계백과 관련된 영상과 오태학 화백이 그린 기록화 전시를 통해 계백장군의 충절과 호국정신을 기릴 수 있으며, 성돌 무게체험, 양궁 · 국궁 비교체험 등 실내체험학습을 할 수 있다. 또한 백제의 군사방어시설로 가장 중심적 역할을 하는 풍납토성, 웅진성, 부소산성 등의 백제 주요 성을 모형화하여 전시하였고, 토성의 축조과정과 성의 기능과 방어체계 등을 살펴 볼 수 있다.
계백(階伯 ; ?-660)은 백제의 장군이다. 554년 성왕(聖王)이 관산성(管山城)에서 전사한 뒤 백제와 신라의 관계는 매우 악화되었다. 641년 의자왕(義慈王)의 즉위이래 백제는 고구려와 제휴하면서 신라를 자주 공격했다. 그러나 고립된 신라가 당나라와 협력하여 고구려.백제 두 나라를 노리면서 상황은 크게 변했다. 더욱이 의자왕의 실정으로 국내가 혼란해지고, 고구려가 연개소문의 정변 등 국내 문제로 백제와의 동맹에 소극적으로 되자 백제의 위기는 점차 현실화되었다. 결국 660년(의자왕 20) 소정방(蘇定方)과 김유신(金庾信)의 나당연합군이 백제의 요충지인 탄현(炭峴)과 백강(白江)으로 쳐들어왔다. 이에 의자왕은 계백에게 5,000명의 결사대를 주어 이를 막게 했다. 계백은 가족을 죽인 뒤 비장한 각오로 출전하여 황산벌에 먼저 도착하고 3군데에 진영을 설치했다. 신라군은 군사를 3갈래로 나누어 4번을 싸웠으나 이기지 못했고 군사들은 지쳤다. 이때 신라의 장군인 흠순이 아들 반굴(盤屈)을 적진으로 보내 힘껏 싸우다 죽게 했다. 그러자 장군 품일 역시 아들 관창(官昌)을 내보내 단신으로 적진에 뛰어들게 하여 결국 죽게 했다. 반굴.관창의 용감한 모습에 감격한 신라군은 죽음을 각오하고 진격하여 크게 승리했다. 백제군은 중과부적으로 대패하여 계백이 전사했고 좌평(佐平) 충상(忠常).상영(常永) 등 20여 명이 사로잡혔다. 이 황산벌 전투로 백제는 비운의 종말을 맞이했으나 우리 역사상에는 충과 호국의 표상으로 기억되고 있다.
관람 및 매표시간
관람 및 매표시간 안내표
관람시간 |
매표시간 |
휴관일 |
AM 09:00 ~ PM 6:00 |
AM 09:00 ~ 관람시간 종료 30분까지 |
1/1, 구정 및 추석 당일 , 월요일 |
관람료
관람료 안내표
구분 |
개인 |
단체 |
논산시민(신분증 제시) |
무료 |
무료 |
일반(19세 이상 64세 이하) |
1,000원 |
800원 |
청소년(13세 이상 18세 이하) 군인(하사 이하/ 의무경찰,공익근무요원등 포함) |
700원 |
500원 |
어린이(7세 이상 12세 이하) |
500원 |
3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