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제26대 고종(高宗, 1864-1907) 황제의 황후로, 개화기에 뛰어난 외교력을 발휘하여 개방과 개혁을 추진하다가 을미사변으로 일인(日人)에 의해 시해당하여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친 명성황후가 출생하여 8세까지 살았던 집이다. 원래 조선 숙종 13년(1687)에 숙종의 장인이며, 인현황후의 아버지인 민유중(閔維重)의 묘막(墓幕)으로 건립 되었는데 당시 건물로서 남아있는 것은 안채뿐이었으나 1975년과 1976년에 한번 중수하였다가, 1996년에는 행랑채와 사랑채, 초당 등을 복원하여 면모를 일신하였다. 넓은 바깥 마당에 면하여 솟을 대문을 가진 ㅡ자형 행랑채가 서고, 그 위에 중문과 사랑이 붙는 ㄱ자형 문간채와 ㄱ자형 안채가 안마당을 둘러싸서 ㅁ자형 배치를 이루고 있으며, 그 옆으로 ㅡ 자형 초당이 있다. 안채는 14칸 규모의 민도리집인데, 8칸 규모의 팔작지붕 본채 한쪽에 6칸 규모의 맞배지붕 날개채가 붙어 ㄱ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본채는 전면에는 퇴칸(退間)이 있는 5량 구조인데 안방(2칸)과 대청(4칸), 건넌방(1칸 반), 부엌(2칸)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고, 날개채는 3량 구조로 안방 앞쪽에서 꺾여 온돌방(1칸 반)과 부엌(3칸), 광(1칸 반)이 위치하고 있다.
이 집은 재목도 그리 크지 않고 간살도 넓지 않으나 부재의 형태와 결구법 등에서 조선중기 살림집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1 안채 2 사랑채 3 별당 4 행랑채
명성황후 기념관
명성황후 생가 맞은편에 위치한 명성황후 기념관은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워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고자 건립된 기념관이다. 520㎡의 전시실에는 명성황후와 고종의 영정등을 비롯한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명성황후를 추모하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감고당(感古堂)
조선시대 제19대 숙종이 인현왕후의 친정을 위하여 지은 집으로 희빈 장씨의 모함을 받아 폐위된 후 5년여 동안 유배되어 있던 곳이고, 명성황후가 8살때 여주에서 한양으로 올라간 후 1866년(고종3) 왕비로 책봉되기 전까지 살았던 곳이다. 원래 종로구 안국동 덕성여고 본관 서쪽에 있다가 1966년 도봉구 쌍문동으로 옮긴후 2004년 쌍문중고교 신축계획에 따라 철거될 위기에 처한 건물을 2006년 해체한 후에 명성황후의 고향으로 원형을 이전 복원하였다.
민가마을
명성황후생가와 상류 주택인 감고당 사이에 조선시대 서민들의 생활공간인 민가마을을 조성하여 조선후기 일반적인 취락의 모습을 재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