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내다리 미내교(渼奈橋) MINAE BRIDGE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1호 미내다리는 길이 30m, 너비 2.8m, 높이 4.5m로 크지도 넓지도 않지만 300년전만 해도 조선시대 충청도와 전라도를 잇는 삼남에서 가장 큰 다리로, 3개의 아치가 있는 무지개다리(홍예)는 빼어난 건축미를 자랑한다. (금강 하구의 미내다리는 경상·전라·충청도를 통틀어 삼남 최고의 석교였으며, 전라도와 충청도를 잇는 역할을 했다)
논산 사람이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묻기를..
1) 관촉사 은진미륵과 2) 개태사 철확(무쇠솥) 그리고 3)강경 미내다리를 보았느냐
고 물어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논산의 명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강경천의 물길을 돌려 미내다리 밑에 물이 흐르지 않는다.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서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 야화리 사포 방면으로 1㎞가량 올라가다 보면 제방 밑에 세 개의 아치형 돌다리가 있는데, 이 다리에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옛날에는 다리가 없어 강을 건너려면 배를 타야만 하였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다리를 놓기로 하였다.
두 청년이 다리 공사를 맡기로 하고 마을 사람들에게서 돈을 거두었다. 두 청년이 다리를 놓고 보니 돈이 남았다. 그들은 남은 돈을 어떻게 할까 의논하였다. 마을 사람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기에는 너무나 적은 액수였다. 그렇다고 공금을 둘이 나누어 갖는다는 것도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두 청년은 고민 끝에 나중에 다리가 부서지면 남은 돈으로 보수를 하기로 결정하고 아무도 모르게 다리 근처에 돈을 묻어 놓았다.
몇 해가 지나도 다리는 부서지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두 청년을 훌륭한 기술자라고 칭찬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다리를 놓았던 두 청년 중 한 명이 갑자기 병을 앓게 되었다. 깊은 병이라 좋다는 약을 써도 낳지 않았다. 친구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청년이 문병을 왔다. 병이 깊은 것을 본 청년은 친구를 살리기 위해 다리 밑에 묻어 둔 돈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돈을 묻어 둔 장소를 파헤쳤다. 하지만 돈은 그곳에 없었다. 청년은 ‘친구가 이미 돈을 꺼내 갔구나. 그 돈을 써서 병이 빨리 나았으면 좋겠구나.’라고 생각하였다. 청년의 짐작대로 그 돈은 이미 병이 든 청년이 몰래 써 버린 뒤였다.
병이 든 청년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더니 어느 날 저녁 큰 구렁이로 변해 버렸다. 돈을 훔친 벌을 받아 구렁이가 된 것이었다. 식구들은 울고불고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구렁이로 변한 청년은 집을 나가 미내다리 밑으로 기어들어 갔다.
그 후로 구렁이는 이따금 다리 근처로 나와서 눈물을 지으며 혀를 날름거렸다. 그렇지만 다리 밑에 묻어 둔 돈을 꺼내 간 것이 알려지면서 누구 하나 구렁이를 동정하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사람들은 “흥, 꼴 좋다. 친구 몰래 돈을 훔쳐? 죽지 않고 구렁이가 된 것만도 다행이지.” 하고 침을 뱉으며 구렁이를 욕하였다. 그리하여 비가 오는 날이면 구렁이는 다리 밑에서 엉엉 울었다고 한다. 또 다른 결말로는 하늘에서 구렁이를 나쁜 용으로 만들어 하늘로 오르게 하였다가 다시 땅에 떨어지게 하여 죽게 하였다고도 한다. - "놀뫼의 전설" , 1981 논산문화원 刊 -
용(龍)을 우리말로 <미르>라고 하는데, 이 이야기 중에 용의 승천과 떨어짐을 볼 때 미내다리의 미내가 미르에서 나왔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미내다리는 처음에 <미르다리>로 불리웠다는 설이 있다. 미내다리의 지명 유래담을 볼 때 공금에 손대는 죄를 지으면 큰 벌을 받는다는 징악담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다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