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백세각
(星州 百世閣)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63호)
경북 성주군 초전면 고산리 542
백세각(百世閣)은 3 .1 운동 당시 성주 장날이 서는 날에 배포할 태극기가 만들어지고 보관되던 곳이다.
성주의 유학자들은 유림단 사건 등 항일 운동에 적극 가담하였고, 공산(恭山) 송준필(宋浚弼)과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이 주도하였다.
송준필은 "나라가
회복되면 죽더라도 사는 것이요, 나라가 회복되지 않으면 살더라도 죽은 것이다"라며, 밤새껏 목이 터져라 독립만세운동을 펼쳤다.
백세각은 <파리장서>가 태동된 곳이며, 파리장서는 장석영과 곽종석이 長書를 집필하여 김창숙이 상해를
거쳐 파리의 만국평화회의에 보내게 된다.
이 가옥은 조선전기 문신이었던 야계(倻溪) 송희규(宋希奎, 1494~1558)가 지은 것으로 명종 6년(1551)에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 완공한 건물이다. 송희규가 사헌부(司憲府) 집의(執義)로 있을 당시 세도가였던 윤원형(尹元衡)과 영의정 이기(李芑)의 행패를 탄핵하다가 오히려 역적으로 몰려 전라도 고산(高山, 현재의 완주)에서 5년간 귀양살이를 하고 고향에 돌아와 백세각을 지었다. 이 곳의 마을 이름이 원래는 고산(孤山)이었는데 귀양살이를 한 곳의 지명을 따라 고산(高山)으로 고쳐 불렀다 한다.
규모는 정면 7칸·측면 7칸이고 평면은 "口"자형이며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쇠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구멍을 뚫어 싸리로 엮은 점과 대패를 쓰지 않고 손도끼(자귀)로만 다듬어 만든 건축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비가 오는 날 자정에는 말발굽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오기 때문에 종손이 아니면 무서워서 잠을 못잔다”는 전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