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이곳은 한강변에 자리한 나루터로 버들꽃 나루라는 뜻의 양화진(楊花津)이라 불리었으며, 우뚝 솟은 봉우리는 누에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잠두봉(蠶頭峰)이라고도 불렸습니다.
1866년 조정으로부터 천주교 박해령(병인박해)이 내려지면서 병인박해가 발생하자 국내에 있던 프랑스 선교사 9명을 포함하여 1866년부터 1868년까지 전국적으로 약 8천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처형당하였습니다.
당시 자국 선교사의 처형 소식을 들은 프랑스 함대가 양화진까지 무력으로 진출하여 강화도를 점령하고 통상을 요구하는 병인양요를 일으키자 천주교에 대한 박해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서양인의 침입으로 더럽혀진 영토를 천주교인들의 피로써 씻겠다는 흥선대원군의 지시에 따라 프랑스 함대를 불러들인 혐의가 있는 신자들을 이 곳 양화진에서 처형하였다. 이때부터 이곳을 천주교인들의 머리가 잘려 죽은 곳이라 하여 절두산(切頭山)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절두산의 첫 순교자인 이의송(프란치스코), 김이쁜(마리아), 이붕익(베드로) 일가족을 비롯하여 약 200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병인박해 당시 이곳에서 순교하였습니다.
한국천주교회는 순교 정신을 기리고 치명터를 보존하고자 1956년 이 지역 일대를 매입하여 성지로 조성하였고, 병인순교 100주년이 되던 1967년 10월 21일에 성당과 박물관을 준공하였습니다. 한강 유일의 원형보존지역인 이곳은 1997년 국가 사적 제399호(서울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로 지정되었습니다.
(이상 마포구청 홈페이지 마포관광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