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은 둘이 함께 쓸 때 더 행복하다.
(순창군 적성면 무수리, 오교리)
오원천, 적성강, 순자강, 이는 섬진강의 또 다른 이름이다.
임실군 강진면과 덕치면 일대를 흐르는 강을 오원천이라 하고,
순창군 적성면 구간을 흐르는 강을 적성강이라 하며
곡성 일대를 흐르는 섬진강의 옛 이름은 순자강(鶉子江)으로서
옥과천과 남원에서 흘러드는 요천의 합류점인 매도 일대까지를 이르는 구간이다.
섬진강의 이름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모래가람, 다사강(多沙江), 사천(沙川), 두치강 등으로 불렸었다.
이는 강의 고운모래로 인하여 붙여진 이름이리라!
이처럼 섬진강은 그 이름만으로도 할 얘기들이 무궁무진하다.
섬진강(蟾津江)이름 또한 그 숨은 뜻을 모르는 이 없을 것이다.
14세기 말엽, 왜구가 섬진강을 물밀 듯이 밀려오자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가 소리를 질러 왜구를 격퇴시켰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그래서인지 모르나 내가 어릴적 비 오는 날에는 두꺼비가 엉금엉금 기어 나와
폭우 속에서도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세상을 관조했었다.
오늘도 섬진강을 나서는 길에서부터 비가 내린다.
산 중턱까지 조용히 내려앉은 구름,
거기에다 강에서 피어난 물안개와 산허리 즈음에서 조우하여
섬진강에 가까와 질수록 몽환적분위기를 연출하고
나는 마치 무릉도원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
오늘은 적성교에서 출발한다.
적성교는 신교(新橋)와 구교(舊橋)가 있다.
새로 만들어 진 다리는 넓고 반듯하여 그 길로 다니는 차도 많다.
그러나 그 한 쪽에 비켜 선 오래된 다리는
다리교각과 난간에 세월의 자국이 묻어났지만 지나는 사람은 찾아 볼 수 없고
오로지 세우(細雨)에 낚싯대 드리운 강태공만 물끄러미 강물을 바라볼 뿐이다.
구교에서 바라본 섬진강,
때마침 상승기류를 만났는지 구름이 하늘로 용솟음친다.
수십 개의 날개가 바람을 일으키고 날개 아래 여러 개의 발이 공기를 박차자
일순간에 승천하듯이 하늘을 뚫고 올라간다.
하늘이 어떠하든 섬진강은 흐름을 멈추지 않고 그의 갈 길만 재촉할 따름이다.
이 광경은 섬진강을 탐하는 자에게만 볼 수 있는 일종의 특권이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고 있으려니,
뚫어지게 강물을 관조하고 있는 또 다른 복 받은 인생이
강 한가운데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왜가리다.
이 녀석은 강을 가로지르는 보의 난간 위를 절묘하게 차지하고 서서
보에서 떨어지는 급류만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한참을 바라봐도 미동도 없다.
냉정한 그에게서 열정이 느껴졌다.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용광로와도 같은 열정이 뿜어져 나왔다.
살아가야 한다는 것과 섬진강을 지켜내야 한다는 것,
이 땅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
내게 주어진 일들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
내 갈 길에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경주를 해야 한다는 것,
그 누구도 미워하지 말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
이런 것 때문이 아닐까?
그의 섬진강 관조는 내가 섬진강을 탐하는 것과 흡사하다.
그의 차가운 응시는 냉정 속에 끓어오르는 섬진강을 향한 열정으로 보인다.
내 속의 차가운 냉정은 내 속에 끓어오르는 열정이 있어야 하고
진정한 냉정은 풀무와도 같은 열정이 있은 다음에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를 바라보는 나, 내 속에 차가운 냉정은 나를 열정으로 몰아넣고
나를 알기 위한 차가운 열정, 나는 그것을 위해 섬진강을 선택했었다.
순간, 섬진강 속에 차가운 열정이 흐르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냉정을 지켜내기 위한 열정,
열정을 지속시키기 위한 냉정이 그 속에 흐른다.
왜가리에서 이런 생각이 문뜩 든다.
너와 나,
이심전심,
강가에서 온 몸으로 비 맞고,
섬진강과 하나 되어
네가 섬진강 되고 나도 섬진강 되어
냉정하고 고독하게 섬진강을 응시한다.
그 차가운 고독 속에 피어나는 뜨거운 열정의 꽃을 위해....
적성들을 지나 지북사거리에서 장마로 물이 불어 잠수교를 삼키기 일보직전
잠수교위에는 시간을 잊은 강태공이 세월을 낚고,
그 위를 두 대의 자전거가 바람처럼 강을 건넌다.
잠수교를 건너 화탄마을로 들어서니
마을은 안개에 사로잡혀 빗소리조차 멈춰 섰고,
동네 어귀에 작은 우산 하나에 의지한 채 좁은 골목길로 향하는 두 사람....
같은 우산아래 있으라!
비도 나눠맞고, 바람도 함께 나누라!
그래야 우리의 짐 더 가볍고
세상 살아가는 길 더 아름다우리!
시계풀꽃 꽃반지는 둘이 함께 만들 때 더 아름답고
꽃은 비를 함께 맞을 때 더 즐거우며
우산은 둘이 함께 쓸 때 더 행복하다.
하늘과 강,
구름과 바람,
하늘을 큰 우산 삼고 너와 나 그 우산 아래 있어
토닥토닥 빗방울 소리와 함께
행복한 비 오는 날의 섬진강 길을 둘이서 걷는다!
<하동에서 조문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