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강에서 놀기)
암강과 숫강, 그 운명적 만남을 위하여!
(금곡교~요천)
글을 쓴다는 것은 내 혼을 꺼 집어내어 뜨거운 태양아래 말리는 것이다.
나를 발가벗기는 것이고
나의 자화상을 하얀 도화지에 총천연색 크레용으로 그리는 것이다.
섬진강을 걷는 것은 굳고 왜곡된 나의 자아를 바라보는 것이고,
나를 그 치유의 강에 던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섬진강을 쓰는 것은
드러날지 모르는 나의 치부까지 꺼 집어내는 것이고
그것을 섬진강에 비춰보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 속에서 내 속 깊은 곳에 드려진 어두운 그림자들,
문신처럼 새겨진 지울 수 없는 내면의 상처들,
나의 미숙한 모습들을 오로지 나만의 화풍으로 섬진강가에서 붓질하는 작업이다.
회복과 치유를 꿈꾸면서.....
금곡교는 세월의 때가 묻어 있었다.
녹슨 난간사이로 강물이 흐르고,
덜거덕거리는 낡은 자전거위에는 촌로혼자 앉았다.
짙게 하늘을 덮은 먹구름 사이로 노을이 비치고,
희미한 자전거 그림자가 금곡교위를 달린다.
요새 내리는 비는 경황도 없고 질서도 없고 예측도 불가능이다.
밭을 가는 암소의 머리에는 태양이 내리 쬐고
그의 잔등에는 잔뜩 먹구름이 끼여 있으며 꼬리에는 소나기가 내린다.
하물며 강 이쪽과 저쪽의 날씨가 완전히 다른 것은 더더욱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오늘은 이쪽강과 저쪽강이 같은 모습이다. 먹구름 하늘.....
합강이 되는 지점에서는 항상 전조가 있다.
작은 섬이 생겨나고 그 섬은 학이나 왜가리, 청동오리들의 천국이 된다.
물은 가끔씩 잔물결을 내며 휘감아 돌아 역류라도 할 채비다.
무엇보다 강폭이 넓어지고 호수인지 강인지 구분이 잘 안 될 정도다.
옥과천과의 만남이 그랬었고, 더 위로는 오수천과의 만남도 그랬었다.
오늘은 섬진강이 외계인과 같은 이방인을 만나는 날이다.
요천에다 수지천까지 합세를 하기 때문이다.
먹구름이 잔뜩끼인 날, 그래서 하늘은 하나의 수채화를 연상하게 한다.
하늘이 구름이면 강도 구름이고 강이 구름이면 나도 구름이다.
강 위에 내려앉은 먹구름은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배운 마아블링 기법처럼
강 위에 일렁거리면서 또 다른 화폭이 되고
그 어느 예술가도 흉내 내지 못할 기이한 형상으로 변한다.
요천은 남원 광한루를 지나 이곳 섬진강으로 흘러 합세한다.
요천과 합류를 이루는 지점에는 보에서 떨어지는 물이
나이아가라 폭포를 연상하게 할 만큼 거세다.
거대한 호수 같은 강에 나 홀로 매료되어 빠져 있을 즈음,
따르릉, 따르릉 자전거 소리가 나고 우렁차고 구수한 전라도사투리가
내 귓전을 흔들어 댄다.
아, 거~서 머하는거여!
사진찍는데요, 섬진강요.
이 시간에 어짤라고 왔당가? 차는 어떡하고? 잠은 어데서 잘겨?
아, 차는 저기 있고요, 어두워지면 집으로 돌아갈려고요.
근데, 강이 참 부드러워 보여요. 평안해 보이고요.
곡성사람들이 이처럼 편안하고 부드러울 것 같아요.
아! 그렇체잉. 우리 곡성사람들은 가슴이 참 넓어부러.
다른 곳 사람들과는 다르제이.
근데 자네는 어디서부터 걸어왔당가?
작년 말부터 섬진강이 시작하는 데미샘에서 출발해서 매주 이렇게 걷고 있어요.
섬진강이 데미샘이라는 곳에서 출발했당가? 난 고것도 몰랐었네.
쩌쪽, 저놈이 먼강인지 아는가?
아, 저 요천말이지요.
우리는 요천이라 안 불러. 숫강이라 부르재이.
예? 숫강요? 왜그렇게 불러요?
나도 모르재이.
그냥 옛날부터 그렇게 불러왔으니께 따라 부르는거지.
아 그래요?
야튼 여름에 비가 억수로 퍼 부을 때는 저놈 숫강이
섬진강 옆구리를 콕콕 찌르며 내려와부러.
섬진강은 억수로 순한디 저놈 요천은 성질이 아주 거시기해.
아 그래서 숫강이군요.
그렇겠재이.
(암강에 내린 평화)
저녁 먹구름 사이로 잠시 노을이 비칠 무렵,
자전거를 타고 강변으로 바람 쏘이러 나오신 한권복선생과의 대화다.
50대 중반을 넘긴 듯 그는 구수한 전라도 억양으로 사람을 끄는 마력도 있었다.
그에게서 섬진강 냄새가 났다.
넓디넓은 곡성사람들의 따뜻한 심성도 풍겨났다.
누가 팍팍 옆구리를 찌르더라도 내색하지 않고 다 받아 줄 것만 같은
옆집 아저씨 같고 형님 같다.
섬진강 옆에 살아도 하나도 손색이 없는 섬진강 중년이다.
그러고 보니 요천의 근원은 지리산이리라.
천왕봉과 성삼재를 거쳐 남원 광한루에서 잠시 쉬었다가 섬진강으로 쏟아져
섬진강의 옆구리를 발로 걷어찼을 것이다.
이곳에서 비로소 섬진강은 지리산 물맛을 느끼게 된다.
그동안 섬진강은 거대한 산에서 발하는 물맛은 보지 못했었다.
수천수만의 크고 작은 봉우리와 골짜기에서 태어나
험준한 바위를 넘어 이곳까지 수 백리를 달려왔으니
그 속에는 지리산의 호쾌하고 호탕한 생리가 담겨져 있으리라.
그러고 보니 지리산 역시 숫산이 아니던가?
아기자기하고 한 아름 가슴에 들어올 것 같은 어여쁜 산도 아니고
이 땅 남쪽을 다 아우를 듯 우람하고 거대한 기풍을 지녔지 않는가?
거기에서 발원하여 뿜어져 나온 물이라면 숫강이 되었음이 마땅하고
그래서 그를 숫강이라 불렀을 것이다.
숫강은 암강을 만나야 하고 암강은 숫강이 있을 때 강다울 수 있다.
이 세상에 제 혼자 강은 없다.
암강은 나와 다르다고 거절하고 나를 닮았다고 포용하는 옹졸함을 지니지 않았다.
어떤 모습이던지 포용하고 보듬는 것이 암강이다.
포용하고 수용하는 암강, 비록 옆구리를 찌르고,
때로는 상처를 입히고 가슴 아프게 하더라도 다 포용하는 넓은 가슴을 지녔다.
아무리 큰 강도 제 혼자 강은 없다.
아무리 작은 강이라도 그를 보듬지 않으면 강이 될 수 없다.
(나는 마실가네!!!!)
숫강인 요천 바로 아래 수지천이 흐른다. 새끼강이다.
요천에 비하면 작은 시냇물정도지만 이 또한 감싸 안고 떠나야한다.
요천과 수지천을 지나면서 강은 급하게 오른쪽으로 감싸돌고,
그 굽은 여백에 홀로 서 있는 동산마을을 초저녁 밤이 삼킨다.
막 불을 밝히기 시작하는 삼십 촉짜리 백열등 가로등아래
할머니 홀로 빈 유모차를 앞세우시고 마실을 나오시는 모습이 정겹다.
암강은 밤새 소리죽여 동산마을을 감싸 안고 돌 것이고,
동산마을은 행복에 겨운 잠에 빠져들 것이다.
또 내일 섬진강과의 만남을 기대하면서...
<하동에서 조문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