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달마을의 백일홍 개선문)
삶이 건너간 자리 호곡나루
(고달교~호곡나루)
섬진강의 여름은 백일홍과 함께 피어나서 백일홍과 함께 저물어 간다.
립스틱 색 꽃잎이 강물에 녹아지고 고추장처럼 노을이 붉게 물들 때
고달마을에서는 수제비 끓이는 냄새가 나는 듯하다.
고달마을은 섬진강과 함께 잠자고 섬진강과 함께 깨어난다.
백일홍이 마을 앞길에 도열해 섰고,
수 백 년 묵은 정자나무가 마을의 수호신처럼 떡 버티고 서 있다.
고달마을에서는 확실히 사람냄새가 났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냄새다.
천금을 주고 산 최고급 향수인들 사람냄새만 하랴!
마을을 가로질러 흐르는 개천위로 작고 낮은 다리가 걸쳐있고,
그 아래 작은 빨래터에서는 아주머니 한분이 빨래를 하신다.
이를 보니 마치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를 본 듯 행복감이 물밀듯 밀려온다.
빨래터 위로 낡고 작은 유모차를 밀고 가시는 할머니,
아직도 통통거리면서 돌아갈 듯 정감 있는 정미소,
때 묻은 비석이 세월을 보내고 있다.
고달마을 어귀 섬진강가에서 마을을 바라보니 왠지 짠한 마음이 든다.
고달마을을 또 볼 수 있을까?
(행복의 모나리자)
고달마을에서 오늘 내가 목적지로 잡은 호곡나루까지는 한 시간 가량 거리다.
또 다시 섬진강과 나란히 걷는 시간이다.
배롱나무길을 지나 강아지풀 길을 건너니 해바라기 오솔길이다.
해바라기는 오랜만에 얼굴을 드러낸 태양을 향해 도열해 섰다.
비포장 소나무 숲길, 바위에 앉아 땀을 식히고 한참동안 섬진강을 응시한다.
섬진강을 바라봄은 오래된 시집을 가슴에 얹고
뚝뚝 떨어질 것 만 같은 파란 하늘과 마주하여 누운 것과 같다.
한편의 시를 읽음은 가뭄에 굳어진 땅과 같은 나의 혼을 쟁기로 뒤엎는 것이요,
잃어버린 내 감성을 되찾는 것이며,
갈한 내 영혼에 한줄기 소나기를 퍼 붓는 것이다.
강을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호곡나루는 나의 중간기착지로 늘 인식되어 있었다.
오래전 방송으로 잠시 보았던 그곳,
그 시간 이후 나는 호곡나루 사람이 되어버렸다.
언젠가 그곳에서 꼭 나룻배를 홀로 타 보리라!
호곡나루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따스한 사람냄새를 맡아 보리라!
그 일 이후 10여년 드디어 나의 작지만 큰 소망이 달성되는 날이다.
나룻배는 어떤 모습일까?
호곡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그 때 잠시 봤던 그 아름다운 모습들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을까?
나루터로 가까이 가면 갈수록 나의 궁금증은 증폭되었다.
(그 눈에는 눈물 한 바가지가....)
나룻배는 보이지 않았다.
오솔길 옆에 오래된 참나무에 밧줄이 묶여 있었다.
밧줄의 끄나풀을 따라 언덕으로 내려가니 줄배가 홀로 매여 있었다.
줄배는 마치 엄마 잃은 새끼소와 같았다.
내 어릴적에 어미소는 시장으로 팔려나갔었고
엄마 잃은 서러움에 송아지는 온종일 엄마를 찾아 울어댔었다.
호곡나루 줄배도 밤새도록 엄마를 불러 목이 쉰 송아지처럼
그 눈에는 눈물이 한바가지 고여 있었다.
줄배의 주인은 호곡마을 사람들이다.
나루터에서 호곡마을까지는 산길로 五里다.
말이 오리지 심리적 거리는 오십리를 넘는 듯하다.
개짓는 소리만 들렸다.
멀리서 보니 동네 할머니 한 분이 움직이는 모습 뿐 정적이 감돌았다.
붉게 익은 보리수가 돌담에 축 늘어진 채 총총히 뿌려져 있고,
그 아래 그늘진 개울물에는 김치통이 담겨져 있다. 천연냉장고다.
호곡마을은 다 해봐야 열 세대 정도, 마을식구는 스물 명 정도다.
오래 살라고 길엽(할머니 발음은 질엽)이라고 불려졌던 김복희 할머니는
성후남 할머니 댁에 마실을 나온 터였다.
두 할머니는 서로 옆집에 살고 있지만 아침 눈만 뜨면 늘 같이 지내신다.
길엽이 할머니는 신랑이 누군지도 모르고 시집을 왔었다.
첫날밤에 만나보니 남편이었다.
전쟁이 나자 군대로 남편을 떠나 보내버리고, 홀로 집을 지켰다.
전쟁 후 남편은 돌아와 남의 집 살이를 떠나버렸고,
살만해지니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육남매는 모두 객지로 떠나고
근 스물 해가 넘게 할머니는 홀로 덩그러니 집을 지키고 계신다.
(호곡나루는 내가 지킬겨....)
내가 시집올 때 가마타고 저 나루를 건넜지
줄배가 없으면 우리는 살지못혀....우리들 발이나 다름이 없지
저 배로 아이들 핵교도 다니고 시집장가 다 보냈어
딸아이들 공장 따라 돈 벌로 간 곳도 저 줄배를 타고 갔을겨
시장이라도 갈라치면 우리들 노인들은 저 줄배 없으면 꼼짝도 못혀
마을의 보물이나 다름없지
아파 병원 갈 때도 저놈의 줄배를 타야만 혀
요즘처럼 비가 내려 강물이 불을 때에는 배를 떼어서 나무에 묶어야해
한해에 두 집 씩 유사를 정해서 배를 풀었다 묶어다 하고 관리를 맽기는겨
이제는 모두 늙어 배를 관리할 엄두도 못내지
자칫 잘못하다가는 크게 다칠 우려도 있으니 ...
군에서 다리라도 하나 맹길어 주었으면 쓰겠는디...
어디 이런 곳에 다리를 맹길어 줄 생각이나 허겄써?
강 이쪽에서 저쪽까지 백보도 채 될까 말까하는 거리가
이곳 호곡사람들에게는 백리도 넘게 보일 것 같다.
생명과도 같았던 호곡나루 그리고 그 위에 운명처럼 붙어살았던 줄배,
그러나 세월이 흘러 줄배와 나루는 동네사람들에게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원수덩어리가 되어버린 듯하다.
그토록 찾아보고 싶었던 호곡나루를 본 것이 차마 마음이 짠하다.
차라리 보지 않았으면 더 마음이 편했을 것을...
엄마 잃은 송아지처럼 매여 있는 줄배,
호곡나루의 늙은 유사들,
이들이 떠나면 또 누가 이 나루와 줄배를 지켜줄 것인가?
강 건너 침곡마을에 느리디 느린 증기기관차가
하얀 수증기를 내뿜으며 옛 기적을 울린다.
<하동에서 조문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