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옥화주막에서 역마살 인생 되다!
(피아골 ~ 화개장터)
섬진강으로 나서는 이른 아침에 빗방울이 차창을 때린다.
피아골 입구 외곡검문소에 도달하여 강을 바라보니
섬진강에는 문신처럼 물 띠가 그려져 있고
물총새가 섬진강을 총알처럼 강을 가로질러 강을 갈라놓는다.
강물을 만져 보고 싶어졌다.
피아골 단풍이 빗물에 녹아져 흘러내려 왔으리라는 은근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이슬 같은 가랑비에도 강물은 뚜렷이 그의 흔적을 새겨주었다.
섬진강에 비가내리면 그리움이 새겨지고
섬진강에 단풍이 내리면 가을이 새겨지며
섬진강에 내 마음이 내리면 나는 섬진강이 된다.
누구 때문인지는 모르나 섬진강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질러
두 지역을 나누는 분단의 선처럼 사람들의 생각 속에 각인되어 오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단언하건데 섬진강은 그 누구도 가로막거나 단절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섬진강은 동아 밧줄처럼 지역과 사람들을 묶어 주었다.
나와 같이 스스로를 섬진강사람으로 자부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는가?
이제 섬진강은 마치 삼팔선을 지키는 검문소인양
늘 싸늘하고 경직되어 보이는 외곡 검문소를 통과하여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를 넘는다.
지금까지 섬진강은 열 달 동안 전라도 땅을 달려왔었다.
이제 두어 발만 더 떼면 경상도 땅이다.
국도변에 대문짝만하게 새겨져 있는 간판이 이곳이 경상도임을 알린다.
이 간판만 아니었다면 굳이 경상도와 전라도로 나누어지지 않았을 것 같다.
조금 더 눈을 들어 강 한가운데를 바라보니 청실과 홍실을 엮어 놓은 듯
무지개 빛 다리가 섬진강을 가로질러 서 있다.
남도대교다. 나는 유독 이 다리에 유감이 많다.
차갑고 육중하게 생긴 이 다리는 한 여름에도 싸늘한 기운이 감돈다.
굳이 차가운 쇳덩어리로 다리를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섬진강을 압도 하고도 남을 그 무게와 크기, 그 차가움....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돌을 다듬어 쌓아 만들었다면
얼마나 사랑받았겠으며 섬진강과 조화로울 수 있었을까?
이 다리가 섬진강을 가로질러 서 있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쯤이다.
아직도 나는 그 때 일들을 잊지 못한다.
새로 생겨난 남도대교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영호남 화합행사가 열렸었다.
전라도와 경상도가 철천지원수였기 때문일까?
다리 한가운데서 양쪽인사가 서로 만나 얼싸안고 악수하고....
마치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것과 같은 이벤트들이 열렸었다.
어떻게 보면 정말 아름다운 장면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섬진강가에 살아온 나로서는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화해할 일도, 이처럼 거창한 화합행사를 해야할만한 원수지간도 아닌 것이
분명 했기 때문이었다.
자고나면 만나야 할 사람들이 행사장으로 끌려나오다 시피 하여
다리 한가운데서 철저히 준비된 이벤트의 엑스트라가 되어야 했었다.
다리와 연하여 있는 화개장터는 영호남 화합의 상징적인 장소가 되어버렸다.
정치인들에게는 더 없이 고마운 장소가 되었을 것이다.
화합을 위한 출정식에는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했던 곳도 화개장터였다.
화개장터는 오랜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팔도 물산의 집합지였다.
위로는 전주, 남원, 구례 그리고 벽소령 고개 넘어 함양과 산청의 임산물과
남해바다에서 생산된 수산물이 섬진강 나룻배를 타고 올라와
이곳 화개장터에서 서로 물물교환 되었던 곳이었다.
느릿느릿한 전라도 사투리와 억센 갯내음 풍기는 사투리가 만나
서로 얽히고 섥히는 곳이었다.
강 건너 전라도 광양 다압과 구례 간전면의 사람들은
장날이 되면 줄 배 하나에 의지한 채 화개장터로 건너왔었다.
불과 십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줄 배는 성황을 이루었으나
원수와도 같은 육중하고 싸늘한 남도대교가 밥줄을 끊어 놓고 말았다.
화개장터는 인정이 끌어 넘쳤던 용광로였다.
콩나물국밥 한 그릇에 온종일 가슴이 뜨거웠었다.
경상도와 전라도가 하나 되고 용해되었던 용광로였다.
아니 이곳은 아예 전라도니 경상도니 하는 말 자체가 없었다.
이곳은 정보의 광케이블 보다 더 빠르고 원활한 소통의 통로였었다.
화개장터가 모르는 것은 세상 그 누구도 알지 못하였다.
오늘날 문명의 극치와도 같은 스마트폰도 이곳만큼 되지 못하였음이 틀림없다.
그 어떤 명 재판관도 갖지 못한 지혜와 판단력을 가졌었다.
이곳에서는 대화로 풀지 못할 것이 없었다.
막걸리 한 사발에 세상 모든 것들은 한 순간에 풀어헤쳐져 버렸었다.
화개장터는 이런 뜨거운 심장을 가진 곳이었다.
화개장터는 성기와 계연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장소였다.
만남과 가슴 찢어질 듯한 이별이 있었던 곳이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나룻배를 타고 하동포구를 떠내려 갔을 성기의 모습이
섬진강에 아른 거리는 듯하다.
화개장터는 역마살 인생의 안식처였다.
옥화가 그랬었고 체장수 영감과 성기도 그랬었다.
섬진강 또한 역마살 인생이 아닐까?
산토끼 한 마리가 겨우 세수할 수 있는 작은 웅덩이에서
오백리를 쉬지 않고 달려왔으니 그 인생인들 그러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렇다. 역마살 인생이 아닌 인생은 인생이 아니다.
역마살 인생들은 모두 화개장터로 오라!
인정 많고 웃음헤푼 옥화주막에서 진한 동동주 한잔 들이키라!
그 어떤 사람도 차별하지 않는 곳,
전라도 사람도 경상도 사람도,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화개장터 옥화주막으로 오라!
화개장터에 가을비가 굵어지니 섬진강은 옥화주막을 떠날 채비다.
역마살 인생의 섬진강이 화개장터를 떠날 시간이다.
젖은 손의 옥화가 문 밖으로 나와 손을 흔들어 줄 것만 같다.
"몸성히 잘 댕기 오이소!"
섬진강은 옥화의 배웅을 받으며 빗속의 평사리로 향한다.
<하동에서 조문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