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어느 축제를 가도 빠질 수 없는 것이 놀이와 굿, 그리고 전통과 해학이 넘치는 극(劇)요소인데 축제의 본질인 제의와 놀이를 연극의 원형이라고 표현하는 극단이 있다.
극단 <집현>이다.
집현은 한국축제에 대한 공헌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적인 공연기법으로 우리소리와 우리 의상으로 오랫동안 연극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또한 집현은 세계로 나가 우리문화를 소리와 극으로 알리며 민간외교의 몫도 톡톡히 해 낸 예술집단이다.
우리 공연예술의 세계화에 공헌한 집현의 놀이와 제의 중심에는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빼어난 배우들이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진귀한 작품성을 만들어 낸 집현의 보물과 같은 여배우가 있다. 그녀는 연기인생 중에 10년이란 인고의 시간을 극단 집현과 함께 했다. 극단 집현의 최경희 대표와 이상희 연출자가 동시에 보석이라고 꼽는 배우, 바로 이수진이다.
이수진은 <골생원>을 통해 우수연기자상을 받았고, 인천 전국연극제에서는 <장릉의 지문>의 강빈 역할을 통해 최우수여자연기상을 받았다. 최근들어 <햄릿코리아>의 오필리어 역으로 처절한 비련의 여주인공 역을 전통적 가치로 소화해 냈고, <바리 세상 밖으로>에서나 <트라우마 인 인조>에서는 왕비로, 소용 조씨로 슬픈 역할이나 악한 역할은 물론이고 무대의상을 책임지는 스탭의 역할까지 해 냈다. 이수진은 그 외에도 <왕에게>, <배비장전>, <아라리 아라리요> 등 20편의 연극에 출연했다.
그녀는 제90호 주요무형문화재인 황해도평산소놀이굿의 이수자이기도 하다.
“대금을 배우다가 국악기를 좋아하게 되었고 배우가 안되었으면 국악 뮤지션이 되었을 것이예요”라고 말하는 이수진은 대금 태평소 북 장구 등을 섭렵해서 무대에서 악기와 함께 자주 등장한다.
“언제부터인가 전통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전통문화 배우면서 춤과 소리도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요즘은 해금을 배우는 데 푹 빠져있습니다. 공부하는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연기는 기본이고 다양한 음악의 세계 미술의 세계에 접목이 됨으로써 연기의 테크닉에도 도움이 됨을 느꼈다는 이수진은 “특히 호흡을 배울 수 있었다는 게 너무 좋아요. 음악에서 배운 호흡법을 대사에 응용할 수 있거든요”
만능탤런트라기보다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많은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간절하지 않으면 배움의 경지에 쉽게 도달할 수 없더라고 말한다.
“배우는 배우는 게 중요하지요. 하나씩 하나씩 욕심부리지 않고 배워가는 것이 습관화 되었어요.”라고 말한다.
배우는 게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전혀 부담이 없어요. 배우가 기량을 쌓아가기 위해 소리를 배우고 악기를 배우는 것이지 프로페셔널 뮤지션이 되기 위해서 레슨 받는 것이 아니잖아요?”라고 학습의 즐거움을 편안하게 말한다.
글로벌 다문화 시대에 영어로도 곧잘 소통하는 그녀는 해외공연 경험도 많다.
“유럽을 많이 다녔어요. 근데 특히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헝가리, 세르비아 등 문명국가이면서도 전통의 민속문화가 발달한 나라들이 우리 전통을 참 좋아하더라구요.”라며, 우리의 국격을 높이는 데 일조한 것 같은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마음 속의 거문고라는 심금(心琴)을 현(絃)을 켜지 않고 울릴 수 있듯이 몸짓과 악기로 우리 문화의감동을 전했다고 한다.
“가끔은 그들의 반응을 통해 우리의 전통을 내가 발견했음을 깨닫기도 해요.”
전통 소리를 들려 줬을 때 소리의 향연과 감정의 교류를 통해 문화의 가치를 발견했다고 한다. 말을 하지 않고도 배우의 움직임으로 심금을 울릴 수 있었다는 게 자랑스러웠다고 한다.
“해외공연을 통해 우리 것을 알려야겠다는 책임감이 더 일었습니다. 배우는 연기를 통해 관객과 호흡하지만 넌버벌(Non-verbal) 콘서트는 느낌이 달라요. 뮤지션이 하는 콘서트가 아니고 배우가 표현하는 예술이기에 그 스케일이 다르고 무대 스킬도 다른 것이예요.”
축제의 본질인 제의와 놀이를 표현하다 보니 굿도 배우게 되었다는 그녀는, 전통은 굿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 것을 끊임없이 배워가며 표현해 내며 한국 공연예술의 발전에 공을 들이고 싶어 한다.
연극배우가 되고 싶은 희망을 어려서부터 가졌을까 물어 봤다.
“어려서의 꿈은 미스코리아가 되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14살 때 꿈을 접었습니다. 내가 미인선발대회 나갈 만큼 예쁘진 않더라구요.”
“그러다가 3년 뒤에 친구가 배우로 오디션 받으러 간다고 해서 함께 해주러 따라 갔어요. 그런데갑자기 그 자리에서 제가 오디션 응시하고 싶어지더라구요. 오히려 친구는 떨어졌고 미안하게도 내가 역할을 맡게 되면서 배우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계속 탄탄대로 연기만 한 게 아니라 극단에서 청소도 하고 포스터도 붙이고 조명 보조도 했습니다.’ 라며 회상의 세월을 잠시 그려냈다.
얼마 전 미국 연기자협회 자료에 의하면 배우의 평균 시급이 11.6달러라고 한다. 반 이상의 배우가 8.5달러에서 21.5달러 사이이고 브로드웨이 상위 연기자들이 시간당 52달러로 많이 받지만 연기자의 1퍼센트도 안 되는 숫자라고 한다. 그 것도 1년에 평균 3~6개월이 계약기간이라고 하니 연봉은 3만~6만 달러에 그치는 게 고작이라고 한다. 우리보다 상대적으로 예술의 토양이 좋은 미국도 이렇다. 그 들의 연기 학습 원가에 비하면 수입은 턱없이 부족하다.
배우 이수진은 이러한 경제적 현실에 쉽게 굴하지 않으려 한다.
“연극배우도 부유하게 살 수 있습니다. 더 이상 가난하지 않습니다. 희망을 보여주고 싶어요.”
긍정의 최면을 거는 그녀의 말투에는 프로정신이 배어 나왔다.
“제가 연극 입문했을 때 상대역 배우가 술 냄새 풍기며 함께 연습할 때 힘들었습니다. 7-80년대 가난하던 연극인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던 연극배우 고충의 문화는 가고 있습니다. 배우의 집에 술병이 널려 있던 시절은 추억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라며 더 이상 어려운 공연문화계 현실은 존재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며, 어려움 속에서도 학습의욕과 희망을 놓지 않는다.
“내가 잘 해서가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심(마음)이 당당하고 싶습니다.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그녀는 본질과 다른 품위와 희열을 추구하지 않는다. 심지가 곧다. 자신의 목표지향주의도 의심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렇게 동료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똑부러지게 극단의 매니지먼트에도 보탬이 되는 일을 하냐고 묻자,
“제가요, 저를 믿어요. 이런 저를 또 예쁘게 봐주시는 것일 뿐”이라며 겸손해 한다..
“연기에 정답은 없습니다. 진심이 표현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캐릭터를 공부해야 하구요. 연극만 이 아니라 영화나 뮤직비디오도 하고 싶습니다.”
그녀는 요즘 영화출연도 준비 중이다.
뉴질랜드 출신으로 한국에서 오래 살고 있는 Craig McGeady 영화감독(사진)의 눈에 배우 이수진이 발탁되었다. 48시간영화제나 국제단편영화제에 출품하기 위해 작품을 준비중이다. 7분 짜리 영화 “What’s gone (is gone)”(가제목)의 주연 여배우로 남녀관계의 미묘한 심리적 갈등을 묘사해 내고 있다.
영화배우 이수진의 활약이 기대된다.
그러나 연극배우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는 그녀는 연기자를 꿈꾸는 후배들을 위해
“연기자가 되려면 연극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극을 시작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더페스티벌>은 그녀에게 연극인으로서 축제에 대한 생각을 물어 봤다.
“축제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계속됩니다. 우리는 축제의 삶을 즐기기 위해서 존재하며 신에게 감사하며 살아가는 게 인생이니까요. 축제의 삶에는 또 우리 연극인의 역할이 절대적이지요.”
그녀의 예술관이 함축미 있게 우려 나왔다.
“전통문화는 민속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고, 이를 시대의 흐름에 맞게 그 느낌의 감정을 전해줄 수 있는 것이 공연예술이니까요. K-POP 같은 장르가 한류의 파워를 강하게 드라이브하지만 전통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으면 생명력은 오래가지 않을 겁니다. 우리 민족에게 내재된 근본적인 감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