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는 곳에 ‘달빛 향기로운 길’이 있습니다.
제가 붙인 이름이긴 합니다 만,
달과 함께 이 길을 걸으면 저는 그냥 바람이 됩니다.
거의 매일 새벽에 이 길을 걷습니다.
요즘처럼 새벽이 긴 날에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기고
별빛은 머리위로 쏟아집니다.
처음 10분정도는 오르막이 계속되다가
긴 대밭 숲길을 지나면 평사리들판 건너편 대축마을쪽으로
동네 가로등이 성탄트리처럼 빛나 보입니다.
그 밑으로 내리막이 완만하게 진행되는 즈음에
농막처럼 생긴 작은 시골집이 한 채 있는데 굴뚝이 길가에 우두커니 서 있고
그 길가 쪽 작은 창문으로 주황색 불빛이 창호지를 뚫고 나옵니다.
이것을 봉창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매번 걸을 때 마다 봉창 앞에서 머뭇거립니다.
도란도란 얘기가 들려올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 봉창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그냥 바람이 아닙니다.
누군가 바람이 되어 불어오는 바람입니다.
함께 바람이 되어보시지 않겠습니까?
봉창
동지섣달 새벽별이 봉창으로 들어와
새벽 군불 땐 구들막 이불속으로 파고든다
아버지는 새벽담배 한 모금 하시고
소죽솥에 군불을 때셨다
바람이 분다
문풍지가 파르르 떨리고
호랑이 같은 바람이 온 방을 휘감아 놓더니
소죽냄새가 호랑이 등을 타고 들어온다
아버지는 기침 몇 번 하시고
김이 펄펄 날리는 소죽을 퍼 소에게 안기셨다
새벽 닭 울음소리에
대촌마을 위 별빛이 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