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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칼럼] 미션 임파서블, 석전대제를 구하라 - 최정철 (3)
TheFestival 기자    2016-09-22 10:56 죄회수  7341 추천수 1 덧글수 4 English Translation Simplified Chinese Translation Japanese Translation French Translation Russian Translation 인쇄  저장  주소복사

미션 임파서블, 석전대제(釋奠大祭)를 구하라

 <3>

최정철  / 문화기획자 축제연출가 & 現수원화성문화제예술감독



개혁을 거부하는 현 지도체제

하여튼,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문제의 최OO 관장은 끝내 공금 10억 원을 꿀꺽한 죄로 국립호텔 스위트룸에 체크인 했고, 그 직후 지도체제가 바뀌는 과정에서 종로망명파들은 눈물겨운 사투 끝에 성균관 청년유도회 서울특별시본부를 장악한다. 이 조직은 성균관 직할 조직은 아니지만 전국구 조직의 상급기관이기에 성균관으로서는 무시할 수 없는 조직이었다. 사화(士禍) 덕분에 일거에 부활한 이들은 마치 과거 조선왕조 시절, 노론(老論)의 장기 집권에 시름하다가 겨우 정권을 쥐어 잡은 남인(南人)의 심정으로 이제 거침없이 석전대제 개혁의 칼을 다시 뽑아 들었고, 마침내 이팔상정일 의식 거행부터 실현시키면서 직접 집사자가 되어 석전대제에 참여하게 되었으니, 그들의 감격에 겨운 만세 소리가 혜화동과 성북동 일대에 널리 울려 퍼져 듣는 이들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고 또 울렸다....나 어쨌다나.

그러나 그렇게 우아한 시절도 있었건만, 그 이후 새로운 관장이 둘이나 취임하는 과정 중에서 어찌어찌하더니 그만 과거의 훈구파들이 되살아나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한다. 결국 그로써 종로망명파는 다시 뒷전으로 내몰렸고 훈구파들, 즉 환국(換局)으로 되살아난 석전대제보존회가 실권을 잡더니 현재 어OO 관장 체제가 되어서는 이 석전대제의 개혁 구도를 완전히 폐쇄시키고 말았다.

 

, 이제 석전대제 몸통으로 시선을 두어 현 성균관 훈구척신파들이 행하고 있는 어이없는 행각들을 하나하나 맥 짚어보겠다.

 

1. 우선 의례 진행이 너무 지루하다. 불필요하게 시간을 너무도 끈다. 마치 그렇게 해야 의식이 장중해 보인다는 듯이 말이다. 초헌(初獻 첫 번 째 술잔 올림) 마칠 때까지의 듀레이션이 무려 1시간을 넘긴다. 그러니 아헌 종헌 때에는 다들 좀 쑤셔한다. 지켜보는 관람객들이 하품 쏟아낸다. 스마트 폰 들여다보며 시간아 얼른 좀 흘러라~ 한다.

 

2. 헌관들이 의식에 집중하지 않고 해찰 떨어댄다. 엄연히 의식 진행 중인데도 어쩌다 찾아온(미리 다 연락했겠지, 언제 뭐 하니까 꼭 와보라고) 지인들과 악수 나누며 근황 묻고 답하고, 또 이리저리 기념사진 열심히 찍고 또 찍고. 그러다가 움직여야 하는 타이밍을 놓치곤 한다. 그래서 이들 때문에라도 의식 진행이 느려터지는 것이다.

 

3. 다음, 대성전 공간이 무슨 70년대 영화개봉관인양 국민의례를 행한다. 이건 제사일 뿐이다. 명절 때나 기일 때 집에서 제사 지내기 전 애국가 제창하는 집 어디에 있단 말이냐? 

4. 높으신 분(주로 고위 정치인이나 고관대작)으로부터 택배 온 화훼를 보란 듯이 대성전 월대 센터 지점에 전시하는 것으로 제사 받는 성현들보다 더 깍듯이 모신다. 201692(이팔상정일이 준수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추계 석전대제 때는 대통령 화훼가 떡하니 대성전 월대 아래에 모셔져 있었다. 당연 꼴불견이었고.

 

5. 기록 촬영하는 사진사가 의식을 다 흐트러뜨린다. 엄숙한 의식이 진행되고 있는데 요리 끼어들었다 저리 끼어들었다 사진 찍는 것이 더 중요하지 의식 진행은 뒷전이다. 심지어 서 있는 집사더러 비키라고 해서 사진 찍지 않나, 하도 요란을 떨어대니 집사나 헌관들이 아예 사진사를 피해 들어가고 나올 정도다.

 

6. 걸핏하면 마이크가 꺼지거나 공인(연주자들. 주로 登歌臺 ) 악기에 대주는 마이크 운영이 엉망이다. 아예 처음부터 미처 켜놓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의식 음악이 중간에 툭툭 끊긴다


그 외는 치지도외, 이 정도만 놓고 봐도 이게 무슨 칠성노인대학교 학예회인가 싶다. 노인네들 폼만 열심히 잡지 실상은 가관인 즉, 흠향하여 강신하신 성현들께서 이를 보고 땅 치며 돌아서서 어찌 눈물 흘리지 않겠는가? 성균관장 보우하사 석전대제보존회 노인네 분들에 의해 거행되는 작금의 석전대제, 중증환자가 명명백백 분명하고 분명하다.

 

 

맥을 짚었으니 이제 침통 흔들 차례

1. 감독체제를 갖추어라. 시나리오 확실하게 만들어 적용하고, 연습 제대로 운영하고, 혹 좀 배웠다고 현장에서 서로 의식 진행에 대해 이게 맞다 저게 맞다 다투기도 하는 바, 확실한 통제를 위해서는 석전에 정통식견을 지닌 분이 감독을 맡는 것이 좋다. 현재 청년유도회 서울특별시본부회장이 적역이다. 이분은 전직 연극 축제 연출가이면서 석전대제에 대한 연구서까지 집필하신 분이다.

 

2. 전체 진행 듀레이션이 현재 100분 정도 걸리는 것, 60분으로 줄여라. 이를 위한 방법은, 첫째, 전문 무대감독을 투입하는 것이다. 그로 하여금 등퇴장 때 타이밍 놓쳐(찾아온 지인들과 사진 찍느라고) 진행 끊기는 일 없도록 하라. 둘째, 전수자인 70대 노인네 분들 대신 젊은 이수자들로 하여금 집례를 맡기는 방식. 그러면 느려 터져야 엄숙하다고 착각들 하는 노인네 분들의 지루한 움직임을 원천봉쇄할 수 있다. 말이 난 김에 하는 말인데, 석전 집례 기술을 전수해 주었으면 이수한 제자들이 얼마나 의식을 잘 치르는지 지켜봐 주는 것, 가르친 사람으로서의 즐거움 아니겠는가 말이다. 그러니 내가 집례를 해야 석전대제가 폼 날 것이라는 그 볼썽사나운 착각 내지는 노욕(老欲), 좀 버리라는 얘기다.

 

3. 음향 등 각종 시스템 운영에 철저를 기하라. 이는 무대감독이 있으면 확실하게 해결된다.

4. 헌관들은 주로 명망가들로 구성된다. 초헌관은 시의에 맞추어 정관계 고위직을 모시고 있는데, 의미 있게 하자면 관계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딱 맞다. 옛날에는 임금이 초헌을 했으니 그에 맞추어 지금은 대통령이 초헌을 맡아라 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니, 문화체육관광부 수장이 나서는 것이 그림에 맞아 떨어질 것이다. 유교를 종교로 성전환 시키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운 곳이 바로 문화체육관광부이니 만큼, 뭐 나서서 껄끄러울 것 없잖은가? 그 다음으로 아헌관이니 종헌관이니 하는 분들은 성균관장 등 내외부 주요 인사가 참여한다. 다 좋은데, 문제는 이 분들 사전 정신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와서 거들먹거리거나 사진만 열심히 찍을 생각 못하도록 의식의 의의를 그들 머리에 잘 심어준 뒤, 엄숙한 마음 가짐으로 의식에 참여 하도록 하라는 말이다.

 

5. 의식 진행에 노이즈 되는 사진기사, 확실하게 정리 하라. 예전에는 석전이고 나발이고 닥치는 대로 사진 찍어대겠다고 개떼처럼 덤벼드는 개인 사진 동호인들 때문에 의식 자체가 엉망이 되곤 했기에 언제부터인가 지정 사진기사만 대성전 안팎을 드나들며 사진 찍도록 강력하게 통제해왔다. 그런데 이 사람 역시 의식 진행 보다는 사진이 더 우선이라고 생각하기에 어떤 때는 막무가내로 카메라를 들이대곤 한다. 그래서 의식의 그림이 처참하게 무너지는 것이다. 그러니 범접하면 안 되는 포토라인을 바닥 여기저기에 표시해 두는 식으로 사진기사의 횡포를 차단해야 한다. 그래도 말 듣지 않으면 장 100대 내려친 후 낙도 유배 보내라.

 

6. 국민의례 시행, 이것 좀 제발 정비하라. 깔끔하게 없애는 것이 좋다. 그래도 관장 이하 노인네 분들의 꼴통 고집으로 기어이 행하겠다면 방법 있다. 1부 공식행사(내빈 소개, 국민의례, 축사 등 진행), 2부 석전대제 거행(의식 진행)으로 행사를 구분하여 운영하면 될 것이다. 연극 극장이니 영화관이니 프로축구니 프로배구니 등등 웬만한 데에서는 진작부터 국민의례 하지 않는다. 물론 여전히 시행하는 데가 있다. 프로야구와 프로농구. 이거 다 미국에서 그리 한다고 고스란히 따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쪽 협회 관계자들은 그냥 편안하게, 생각 없이 사는 석두라 불러도 전혀 무방할 뿐더러 주변에 널리 권장할 만하다.

 

7. 대성전이 무슨 병원 장례식장이고 석전대제가 무슨 출판기념회더란 말이냐? 엄숙한 의식에 어울리지도 않는 화훼는 제발 받지 마라. 그래도 끝까지 생색 좀 내보겠다는 생각으로 보내오는 화훼들은 대성전 입구 문밖에 진열하고 대성전 월대 쪽에는 얼씬도 못하게 하라.

 

, 이 정도만 개혁되면 대성전에 모신 39위 성현들께서 웃음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잠깐 좋다 말았던 일명 종로망명파, 즉 청년유도회 서울특별시본부 회장 이하 의식 있는 신진사림들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1021() 2회 선비문화제를 개최한다고 하는 바, 이 선비문화제의 취지인 즉 우리 민족만의 숭고한 정신체계인 선비 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가뜩이나 어지럽게 돌아가는 이 나라에 조금이나마 기여 좀 하겠다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행사를 성균관에서는 땡전 한 푼 지원해 주지 않는다. 지원은커녕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 그래서 신진사림들이 자비 부담으로 제작 한다. 축제인들의 힘찬 응원이 있기를 바라고 바란다.

 

선비정신이란?

사전에 이르기를,

(1) 예전에, 학식은 있으나 벼슬하지 않은 사람을 이르던 말

(2) 학문을 닦는 사람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

(3) 학식이 있고 행동과 예절이 바르며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관직과 재물을 탐내지 않는 고결한 인품을 지닌 사람을 이르는 말, 이라는 의미로서 <선비>라는 명칭이 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선비를 두고, 모름지기 글께나 읽는다 하는 사람들의 지향상()으로 여겼다. 우리는 이 선비에 대해 대체적으로 두 가지 정도 잘못 알고 있는 바가 있다.

첫째, 선비라는 명칭은 한자어 명칭으로 알고 있을듯하나 알고 보면 순 우리말이다. 그 어원 <>이 용비어천가에 보이고 이것이 션븨 > 선배 > 선비(20세기) 등으로 음운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선비를 일컬어 유학을 공부하는 자로서 공맹의 교리를 따르던 조선시대의 지식인으로 치부하는데, 물론 조선시대의 선비는 주로 유학을 공부했겠지만, 그 이전 시대, 즉 고려와 삼국시대의 선비는 유학 외에도 도학(道學-禪學), 불학(佛學) 등도 섭렵하였다.

곁들여, 선비와 사대부를 동일 시 하거나 혼동하기도 하는데 중국 땅에서 생겨난 명칭 사대부(士大夫)는 벼슬아치를 일컫는 말이므로 선비와 사대부는 확연히 다른 존재이다. 한반도에는 고려 후반기에 유학을 준수하는 사대부가 등장하였고 이들이 훗날 고려를 멸망시키고는 유학의 나라 조선을 건국하였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주로 유학을 수련해야 하는 시대적 환경 하에 처했던 것이다.

10세기 동아시아 최고 문장가요 학자인 최치원은 일찍이 우리 민족의 중심 사상으로 풍류도(風流道)를 주창했다. 이때의 풍류의 핵심은 ()으로써 대동(大同)하는 것으로 정리된다. 대동은 곧 상생으로서, 같은 민족 구성원 혹은 공동체(국가)가 무탈 행복하게 번영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나, 문제는 이다. 그저 어질다정도로만 해석한다면 상당한 인식의 폭이 그 뒷전에서 서운해 할 것이 분명하다. ‘에 담겨진 여러 의미 중에서 은 무엇이고 어떻게 구사하는 것이냐를 전제하고서 다음과 같은 두어 개 정도 맥락으로 접근해보면 ""이 지니는 풍부한 인식의 폭을 대략 갈음할 수 있을 것이다. ‘은 옳고 그름을 반드시 따져 옳음을 따른다. 그 따름에 자신의 목숨은 초개로 여긴다. ‘은 이타(利他)를 앞세운다. 자신보다는 타인을 배려하고 위한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너와 나가 대동으로 함께 태평을 누리고, 대동으로 함께 사는 공동체(국가)를 유지 발전시키고자 한다. 이 정도만 살펴봐도 이 의 넓고 깊은 의미를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풍류의 핵심 요소인 은 곧 선비 정신이다. 어찌하여 선비 정신인가?

신라의 화랑들은 평소에는 무예를 익히고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유불선 삼교의 진리를 추구하면서 조정을 받들고 백성들을 위해 봉사했다. 나라가 외침 받을 때면 전쟁터로 달려 나가 목숨을 던졌다.

고구려의 선인(先人)들 역시 신라 화랑들과 유사한 단체로서 당태종의 30만군을 맞이하여 나라를 지키기 위해 3만 병력으로 맞섰다.

백제의 5천 싸울아비들은 계백을 따라 황산벌로 나아가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고려 유신들은 이씨 왕가를 부정하고 강원도 두문(杜門)동에 들어가 불출(不出)하였다.

이순신은 백의종군까지 참아내면서 끝내 바다를 지켜 왜군을 몰아냈다.

안중근은 일본제국의 그른 행태를 처벌하고자 자신의 목숨을 던지며 이또히로부미를 저격했다. 조국을 구하고 나아가 동양 평화를 위하고자 하였다.

육철희, 원궁재, 변수환, 김인수, 신현석 등은 백범 김구 선생 암살범 안두희를 납치, 진실이 담긴 진술을 받아내어 세상에 알렸다.

이들 모두는 인의 길을 따른 당대의 지식인, 즉 선비였다. 그러므로 이들의 정신은 곧 선비 정신인 것이다. 장구한 민족 역사의 흐름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 온 지식인들의 선비 정신은, 종교적 사상이 아닌, ‘배우고 깨달은 옳은 사람이 지녀야 할 정신적 모태(母胎)를 이르는 것이었고, 이것이 한국적 정신세계의 응결체였던 것이다.

선비 정신은 일정한 곳에만 한정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시정 여항거리에도 있고 구중궁궐에도 있다. 선비 정신은 일정한 계층에게만 한정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부자에게도 있고 빈자에게도 있다. 선비 정신은 늘 표출되어 있지 않는다. 사람의 일상에 평화로이 내재되어 있다가 문득 상황이 발생하면 발동한다. 동이유출(動而愈出)이다.

 

<완결> 



태그  청년유도회.석전대제보존회,성균관장,선비정신,초헌관 아헌관 종헌관,축제화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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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llow   2016-09-25 22:32 수정삭제답글  신고
이미 유교는 기울었고 유림의 존엄성과 성리학의 학문적가치가 퇴색해가고 있는 이즈음 성균관이 전통의 선비문화를 스스로 무너뜨리면 어떻게 되는지...  쯧쯧
서리태   2016-09-22 19:02 수정삭제답글  신고
선비정신 어디갔나
TheFestival   2016-09-22 11:05 수정삭제답글  신고
참고로 지난 1편은 http://www.thefestival.co.kr/news/serial/2617/
          2편은 http://www.thefestival.co.kr/news/serial/2622/
      위 칼럼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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