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바꾼 300번의 러브레터
오늘로서 저의 《하동편지》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자 합니다.
지금부터 꼭 6년 전, 2011년 1월,
백년만의 한파와 구제역이 전국을 강타했을 때,
이로 인해 동료직원 2명이 순직을 하고 농촌에 아무 희망이 없어 보였을 때,
말이 공직자이지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어떻게 할 방도가 보이지 않았을 때,
농촌의 어려운 현실을 도시사람들에게 좀 알려보고자 무작정 시작했던 편지가
어언 300회, 6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첫 번째 편지는 이랬었습니다.
“아~야, 이번 설에는 오지마라!!!”
구제역으로 고향에 자식들을 오지 말라는 부모님들의 가슴쓰린 하소연이었습니다.
만6년이 지난 오늘, 아이러니하게도 AI로 인해 수천 만 마리의 닭들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하동편지》가 저의 인생을 바꾸어 놓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었습니다.
첫 1년 간의 편지는 홍사종교수님과 김병종교수님 등 지인들의 권유로 <시골공무원 조문환의 하동편지>라는 제목으로 책이 되었습니다.
인생을 바꾸게 해 주신 분들입니다.
정말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연이어 섬진강 발원지에서부터 바다에 이르기까지의 답사기행문인 <네 모습 속에서 나를 본다>,
평사리로 이사 온 후 2년간의 사진과 글을 모아 <평사리 일기>라는 책으로 출간되게 이르렀습니다.
이것은 저를 시인이라는 호칭을 달아주기도 했었습니다.
지난 해 말 <바람의 지문>이라는 시집까지 발간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2013년부터는 매주 아시아경제에 <조문환의 평사리 일기>가 만 4년을 넘어
5년째를 달리고 있습니다.
글을 쓸 줄도 모르는 저를 에세이시스트, 시인, 여행작가, 사진작가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매주 토요일 새벽이면 카메라를 둘러메고 하동 땅을 헤집고 다녔고,
섬진강과 지리산을 무던히도 헤매고 다녔습니다.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물을 보이는 관점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오래보고 깊이 본 결과일 수 있습니다.
일요일 저녁9시가 되면 습관처럼 컴퓨터에 앉아 약 2천여 분들에게 메일을 발송했었습니다.
“지속적으로 하자”는 저 스스로 다짐이기도 했었습니다.
와중에 몇 번은 계속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6년의 세월을 지켜온 것은 무엇보다 많은 분들의 피드백과 응원이었습니다.
식상한 시골얘기들을 귀담아 들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저의 글을 처음부터 홈페이지에 실어주신
<더 페스티벌>의 서정선 대표님,
<페스티버스>의 정신 축제경영연구소장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아직가지도 지면을 허락해 주시고 계시는
아시아경제의 빈섬 이상국 국장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저의 글쓰기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입니다.
비록 《하동편지》라는 이름으로 발송은 하지 않겠지만
저 개인 블로그 (//blog.naver.com/runnercho) 에는 지속적으로 연재를 하게 될 것입니다.
허락한다면 기고를 하고 있는 신문에도 계속 하고 싶습니다.
이제 보다 자유를 누리고 싶습니다.
인생의 중반기를 살짝 넘긴 지금, 다시 오지 않을 인생을 더 귀하게,
더 가치 있게 보내고 싶습니다.
기회가 되면 그런 얘기들을 모아 세상에 내 놓고 싶습니다.
6년의 세월,
관점을 바꾸어 놓았고, 인생을 바꾸어 놓았고,
미래를 바꾸어 놓은 하나의 작은 사건으로 저에게는 기록될 것입니다.
비록 《하동편지》는 300회로 여기서 펜을 놓게 되지만
저의 사유와 글쓰기는 앞으로도 계속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동안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새해 하늘의 복이 임하시길 빕니다.
하동에서 조문환드림
뻥
석수와 둘이서 차 올린 공이
탱자나무 울타리를 넘어
포플러 가로수를 지나
우주 밖으로 날아갔다
내 고무신이 뒤를 날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