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나더러 천천히 가라하네!
난들 천천히 가고 싶지 않겠는가?
몸과 마음은 엉금엉금 거북이지만,
세월은 토끼마냥 다리매끼치는 것을.....
독뫼골을 다녀오다 만난 할머니입니다.
배낭에 짊어진 짐이 무거워보였습니다.
저 배낭엔 무엇이 들어있을까요?
(평사리공원 넘어 전라도 광양시 다압면의 산자락입니다. 밤꽃이 대낮을 더 밝게 합니다)
밤 꽃 향기에 취하다............
넝쿨장미가 한동안 온 세상을 유혹하더니
이제는 밤꽃이 세상을 진동하게 합니다.
장미가 그 현란한 칼라를 통해 유혹 한다면
밤꽃은 형용하지 못할 독특한 향기로 취하게 합니다.
밤꽃은 꽃이라고 일컫기가 민망할 정도로 수수합니다.
해질녘 어스름한 어둠이 내릴 때 동네 뒷산의 밤꽃은
마치 눈이 내린 듯 소소합니다.
낮에는 유월의 태양을 몸으로 받아
밤에는 그 열기를 향기로 뿜어내는 꽃
낮 보다는 밤이 더 매력적이어서 폐부로 스며듭니다.
온 몸으로 빛을 만들고 향기를 뿜어내
마침내 시커멓게 퇴색되어 힘없이 떨어지나니
아! 최후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는 꽃이여라!
나는 밤꽃향기 취하였다....
서거정도 밤꽃을 노래하였더군요.
율화여설 향부부, 첩첩결자 여번성
栗花如雪 香浮浮, 疊疊結子 如繁星
밤나무 꽃은 눈처럼 피어 향기가 진동하고, 밤송이는 송이송이 달려 하늘의 별들이 내려앉는 것 같구나
하동은 전국에서 두 번째로 밤나무 재배면적이 많은 곳입니다.
섬진강변은 물론 어디를 가더라도 밤꽃을 볼 수 있습니다.
밤골, 율동, 율곡 ....
이런 마을이름을 가진 동네가 여러 곳 있습니다.
이제는 고목이 되어 그 수명이 다 되어 가지만
한 때는 밤나무는 자식 공부시키는 일등 재산이었습니다.
이제 밤꽃은 그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고
흉측한 모습으로 떨어져 내릴 것입니다.
피어난 지 불과 며칠 만에 떨어져
흩날리는 것 까지 아름다운 벚꽃이나 매화처럼
사람들에게 환호받지 못하는 꽃이지만
생명이 다 할 때까지 혼신의 힘을 다 쏟아 붇는 ...
마치 선구자와도 같습니다.
초여름 밤, 향기에 취해 보시려거든
지금 속히 하동으로 오시이소!
(섬진강 상저구포구, 강폭이 가장 넓은 곳이며 섬진강 재첩의 주산지입니다)
재첩이 다 어디로 갔나?
‘채첩국사이소 재첩국사이소!’
초등학교 5학년 때 부산에 수학여행갔을 때 이른 아침
용두산공원 밑 여인숙 골목에서 아침을 깨우던 소리였습니다.
‘갱조개국 사소, 갱조개국 사소!’
보리타작을 마칠 무렵,
시원한 마루바닥에서 한나절 나른한 오전을 보낼 때
양동이에 펄펄끓는 재첩을 이고
반 잠에 취한 나를 깨우던 소립니다.
그 아주머니는
성장해서 생각해 보니 바로 읍내를 조금 벗어나
섬진강가에 있는 상저구, 하저구에서 재첩국을 팔러 온 분이었습니다.
머리에는 끓는 국물,
한 쪽 옆구리에는 재첩과 바꾼 쌀자루가 있었던 기억입니다.
그 어떤 문명의 이기에도 의지 하지 않고
오로지 몸으로 때운 고행의 시간이었습니다.
요새는 그렇게 재첩을 팔러 다니는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가공을 한 후 택배로 전국 어디든 당일 배송이 가능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읍내 곳곳에 재첩전문식당이 있으니 언제든 먹을 수 있습니다.
이번 주 지역신문에 참 마음을 무겁게 하는 기사가 실렸더군요.
“섬진강 명물재첩 멸종위기”
“작년 대비 90% 생산량 감소, 어민들 아우성”
원인은 작년 여름 폭우로 재첩이 다 떠내려갔기 때문이고
강바닥에 뻘층이 형성되어 재첩서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동재첩의 최대원산지 상저구엘 나가봤습니다.
해질 녘,
평소 같으면 재첩반, 사람반으로 가득차 있을 시기인데
띄엄띄엄 한가할 뿐이었습니다.
강가에는 재첩을 잡는 어촌계 어르신들이
한가하게 재첩잡는 모습을 관망하고 있었습니다.
재첩이 진짜 없어요?
없어요 없어....
얼마나 잡혀요?
작년에는 하루 나오면 다섯말 잡았는디,
요새는 한말 잡기도 힘들어...
왜 그렇지요?
작년 폭우 땜시 그런거지 뭐
아, 올해는 재첩국 먹기 힘들어지나 봅니다.
하루속히 집떠난 재첩이 돌아오기를 빌어봅니다.
<하동에서 조문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