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신사의 황홀한 외출..... 포즈를 취해 달라는 요청에 기꺼이 응해주신 노신사님께, 땡큐!!!)
아직 가을이라고 하기에는 이른 시기이지만
계절은 급행열차를 탄 듯 합니다.
이른 아침, 이슬을 잔뜩 머금은 벼 이삭이 점점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일조량이 부족한 것에 비하면 감탄할 정도로 탐스럽습니다.
이번 주에는 악양의 트라이앵글 지점에 놓인 세 곳의 명품 소나무 이야기와
초등학교 총동창회 주관기로서 동창회를 개최했던 얘기를 준비했습니다.
이 가을에 평안하시길 빕니다.
(지난 해 가을 날 아침, 부부송의 자태입니다. 자욱한 안개에 신비로움이 더했습니다)
사랑, 배려 그리고 희생.... 소나무가 주는 교훈
"솔깽이 치러온다!"
난방은 물론 음식조리 등 모든 것을 산에서 채취한 땔감으로 의존했던 시대가
그리 오래지 않았던 기억입니다.
저의 아버지는 겨울이면 매일 이웃한 산에 가셔서 나무를 해 오셔야만
그 날의 밥을 해 먹을 수 있었고
식구들이 따뜻한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침을 드시고 나면 매일 산으로 가시는 것이 대부분의 일과였습니다.
다행히 마른 나뭇가지나 낙엽이 많은 곳에 가셨을 때에는
바싹 마른 땔감을 산 처럼 높이로 지고 오셨지만
그렇지 못했던 때에는 솔깽이 (소나무 가지)를 섞은 나뭇짐을 지고 오셨습니다.
대부분의 산이 민둥산인 시기라
관에서 마르지 않은 소나무 가지가 있는지를 집집마다 수색하기도 했는데,
동네에 그 소문이 퍼지는 날이면 "솔깽이 치러온다"하면서
부엌에 있던 푸른 솔깽이들을 어디론가 피난시켜야만 했습니다.
아직 어렸었지만 우리들도 겨울방학이나 학교를 파한 후에는
자주 뒷산 자락에 갈비를 하러갔었습니다.
갈비가 뭐냐고요? 설마 소갈비, 돼지갈비를 생각하지는 않겠지요?
소나무 잎이 말라 낙엽이 되어 떨어지면 그것이 최고의 땔감이 되는데
그것을 갈비라고 했습니다.
겨울에 갈비가 마당 한 가운데 산처럼 쌓이는 즈음이면
이미 몸과 마음은 따뜻해 있었습니다.
어른들의 얘기를 듣고 송쿠 먹기 체험도 했었습니다.
막 물이 오르기 시작한 소나무의 껍질을 살푼 벗겨내면
그 안에 새하얀 소나무의 속살이 흠뻑 물을 머금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한자 가량 길이로 잘라 하모니카 불듯이 왕복운동을 하면
입에 달콤한 물과 살결이 가득.....
캬..... 솜사탕은 저리가라!!!!!!!!
(부부송, 동정호 그리고 섬진강)
하동의 아이콘 부부송에서 사랑을 배우다!
평사리들판에는 서로 의지하면서 백년해로를 하고 있는 부부송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그 자리에,
그만큼의 크기로,
그렇게 운치 있게 자리하고 있을 수 있는지....
천상배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랑스러운 한 쌍의 소나무 부부입니다.
이 부부송이 없었던들 과연 평사리가 오늘의 평사리로 될 수 있었을는지...
이 부부송은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계절이 바뀔 때 마다 늘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청보리 밭 멀미하는 5월엔, 애정 가득담긴 신혼부부로,
태양이 작열하는 8월에는,
무릎베개 하고 누운 자식에게 부채 부쳐 주시던 애정 넉넉한 중년의 부모님으로,
10월, 온 들판이 황금물결 칠 때에는
고향 찾아 온 자식에게 더 못줘서 안달하시는 우리네 부모님으로,
해가 바뀐 1월,
깡마른 몸둥아리를 동토에 뿌리 내리고 자식손자 잘 되기를 염원하시는
황혼에 선 할매, 할아시로...
(배려와 상생 그리고 조화의 표본 십일천송입니다)
열한 나무가 하나인 듯이, 서로를 배려하는 십일천송!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시대,
"일등만 알아주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전파를 타는 시대지만,
자기 본연의 모습은 감추고 열한명이 하나이듯 서로를 배려하면서 살아가는 소나무가 있습니다.
섬진강이 굽이쳐 흐르는 그 자태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형제봉 바로 아래,
노전마을 어귀에 자리잡은 십일천송은 멀리서 떨어져 보면 영락없는 한 나무 이지만
가까이에 가서 보면 분명 열한나무가 공존하는 현장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배려하면서 공존하고 있는지....
오늘 날 상생이다, 공생이다 하여 공허한 말 뿐인 세대를 향하여
무엇이 배려이며 무엇이 상생인지를 삶으로 가르쳐 주는 스승이기도 합니다.
수령이 150년 정도 되었다는 십일천송은 이런 배려의 자양분을 통해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청춘입니다.
가느다랗게 뻗은 가지들이 하늘을 한 치의 빈 공간도 없이 서로 나누고 배려하는 모습에
만물의 영장인 인간도 소나무 앞에 엎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문암송, 바위를 뚫고 태어났다!
형제봉과 마주보면서 구재봉을 머리에 이고 있는 문암송은
그 수령이 못해도 6백년은 넘었다고 합니다.
작은 씨앗에서부터 좁은 바위틈에서 자란 이 나무는
점점 자라면서까지 바위의 틈 사이에서 갖은 고초를 겪었습니다.
그렇다고 바위와 생존경쟁을 한 것이 아니라
바위가 상하지 않도록 6백년 동안 매우 느리게, 매우 조심스럽게
그 성장속도를 낮췄습니다.
자칫 바위가 갈라져 터지지 않도록 본인의 뿌리로 다시 바위를 칭칭감아 돌아
서로를 의지하고 살아가는 지혜의 나무입니다.
네가 살아야 내가 살고 내가 살아야 니가 산다....
문암송이 자리하고 있는 대축마을에는 매년 백중이 되면 제례가 봉행됩니다.
이는 지금부터 90여년 전, 1920년 마을 뒷산에 큰 산사태가 났으나
문암송 때문에 무너지던 토사가 방향이 틀어져
마을은 무사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에 기인합니다.
마을을 살려낸 살신성인의 소나무인 것입니다.
민족의 나무인 소나무에서 오늘날 결핍되어가는
사랑과 배려 그리고 희생을 배웁니다.
(지금은 모두 중년이 된 친구들, 그들의 얼굴 속에서 세월을 읽습니다)
너의 얼굴 속에 30년의 세월이 통째로 새겨져 있다!
재가 누구지?
야! 니 맞재? 이름이 뭐더라....그래 맞다...
이리 바뀌었나? 다른데서 보면 통 몰라보겠다...
야, 정말 오랜만이다. 우찌 살았노?
30년여 년 만에, 초등학교 동창회가 열렸습니다.
열네 살에 생이별을 하고, 서울이다 부산이다 떠나버렸던 친구들,
160명 동기생들 중에 40명이 참석했습니다.
어렸을 때는 서로 부끄러워 말도 붙이지 못했던 친구들도
스스럼없이 말을 건네고 포옹하는 모습 속에서 세월을 읽었습니다.
4학년 때 전학을 와서 저와 짝지가 되었던 미연이는 오지 않았습니다.
얼굴이 이뻤었고, 무엇보다 손과 팔이 너무 희어서
한번 씩 소매 자락 걷어 올릴 땐 힐끔힐끔 훔쳐봤었는데.....ㅋㅋㅋ
학교 운동장 가장자리에서 늘 그늘이 되어주었고
비올 땐 비를 피할 수 있었던 교목인 신나무는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인데,
그 아래 있던 그네는 왜 그리 작아졌는지, 꼭 장난감 같이 보였습니다.
무서워서 한 번도 넘어보지 못했던 철봉은 가장 높은 것도 허리 높이에 불과하고
하늘처럼 높았던 농구골대는 손을 다 뻗지 않아도 닿는 곳에 있었습니다.
존경을 넘어 경외의 대상이었던 세종대왕과 이순신장군은
광화문에서 뵈었던 우람하고 살찌신 분들이 아니라
꼭 우리와 같이 살았던 동네 할아버지처럼 30년이 넘은 세월 속에도
변함없이 학교를 지키시고 계셨습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반공웅변대회에 약방감초와 같았던 이승복 어린이의 동상은
세월에 상관없이 여전히 산골소년이었고,
자주 개최되었던 반공 웅변대회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교실 앞 화단에 학교지붕 높이로 자랐던 파초,
급식빵차가 오는 날에는 아예 창가에 붙어서 빵 차 오는 것만 기다렸던 초롱초롱한 눈빛들,
신발 잃어버릴 것이 걱정이 되어 가을 운동회 날에는
아예 맨발로 차디찬 길을 걸어 학교 갔던 일,
곤봉체조 매스게임, 코스모스, 횟가루, 기마전, 선생님과 함께 달리기, 청군과 백군....
그날의 함성이 귓전을 스쳐 지나가는 듯 했습니다.
30년 세월동안, 친구들은 참 많이도 변했더군요.
그 얼굴들 속에 그동안의 삶이 주르르 녹아진 듯 해 보였습니다.
이제 곧 50줄에 앉게 되겠지만
아직도 30대 초반의 싱싱한? 얼굴을 하고 있는가 하면 60을 넘긴 듯 한 친구,
가지각색의 얼굴모양과 생김생김 속에는 친구들의 30년 세월이 줄줄이 엮여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지요? 우리는 친구인걸요.
한바탕 노래자랑이 벌어지고, 정년퇴임 하신 담임선생님은 노년신사가 되셨습니다.
제가 오늘 이곳에 추수하러 왔습니다. 30년이 넘었지만요....
정말 제가 오늘 추수 많이 했습니다.
아주 풍성한 추수를 했습니다. 너무너무 기쁩니다.
걸죽한 노래 한곡을 뽑으셨는데 참 진한 세월의 감흥을 느꼈습니다.
살아온 날 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길어 보이지 않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이 친구들을 또 얼마나 볼 수 있을지,
혹여 더 이상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들 행복한 인생을, 그래서 우리 후배들에게,
우리의 자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길 소망해 봅니다.
적량초등학교 41회 친구들아, 우리 우정 변치 안을끼다....!
사랑한다!
(하동에서 조문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