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함께 산다, 외로움아 저리 물럿거라!
"촌아 울지마!"
몇 년 전 농촌 어린이 일기장에 썼던 글이라고 합니다.
힘을 잃고 점점 어려워져 가는 농촌의 현실을 어린이 눈으로 본 것이지만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농촌의 문제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소득, 경제, 복지, 교육과 같은 드러난 것들이라기 보다는
고령화에 따른 독거노인의 증가, 즉 고독과 외로움이라 봅니다.
우리 하동의 경우, 노인복지 부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탄탄하다고 자평합니다.
노인대학, 노인대학원, 빨랫방, 노래교실, 독거노인 전기.가스 안전점검....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노인들의 숨기고 싶은 적(敵)은 고독이 아닐까합니다.
명절에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스스로 숨을 끊는 노인들에 관한 뉴스가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으니 이를 반증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를 해소하기 위하여 노인과 말벗 되어주기 시책도 추진되고 있지만,
자주 해 봐야 1주에 한 번 꼴,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노인고독 문제, 이 문제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좋은 의견 있으신 분은 좀 알려주세요.
우선 하동의 해소 방법을 들어보시겠습니까?
흡족할만한 수준은 아직 아닙니다. 그러나 희망을 걸어봅니다.
바로 노인공동주거제입니다.
홀로 사는 노인들이 모여서 공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낮에는 개인적인 일을 하고 자기 집을 돌보기도 하다가
저녁시간이나 일이 없을 때에는 모여 같이 지내는 것입니다.
우선 3개를 오픈했습니다.
지난 수요일,
"가족사랑의 날"을 맞아 평소보다 좀 일찍 퇴근을 해서
시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진교면 고외마을 경로당을 찾았습니다.
이 마을은 경로당을 공동주거시설로 만들어
현재 여섯 분의 할머니들이 같이 살고 있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이 시책에 관심을 가진지라
할머니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계시는지 참 궁금했습니다.
"어떻게 왔어!"
"할머니들 잘 사시는지 보고 싶어서 구경 왔어요"
"잘 왔어 어영 들어와"
어두운 방에 불을 밝혀주시면서 대 환영을 해 주셨습니다.
방에는 각종 운동기구, 노래방 장비, 주방, 샤워실이 잘 갖춰져 있었고
방은 할머니들이 쓸고 닦아 윤이 반질반질하게 날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모여 사시니까 뭐가 가장 좋으세요?"
"칭구지 칭구, 심심하지 않아!"
"밥은 누가하고 청소는 누가해요?
"정해 놓지 않았어. 되는 대로 해"
"그럼 가장 젊은 할머니가 많이 하시겠네요?
"그렇지도 않아. 오히려 나~ 많은 이가 더 많이 해"
"밥 먹었어?"
"아직요, 집에 가서 먹어도 되요"
"라면 끓여 줄까?"
"그러실래요? 끓여주세요"
두 번째 고참할머니가 라면을 끓여주셨습니다.
눈 깜짝할 새 먹어 치워버리고 나니
‘커피 한잔 타 줄까?’
‘커피도 있어요?’
‘없는 게 없어’
‘그럼 타 주세요’
일명 경로당 커피가 아니겠습니까?
"심심할 땐 뭐하세요?"
"저기 있잖아, 저거! 한판 할겨?"
"예 한판 해요 할머니, 이것은 그냥하면 안되고 돈 따먹기 해야하는데"
"여기는 돈 따먹기 하는 사람 한 사람도 없어‘
‘신고 할려고 하는거 아니재?"
"신고는요 할머니‘
‘10원짜리라도 돈 따먹기를 해야 눈이 벌개서 재밋게 할 수 있어요"
"여기 사는 할매들은 절대로 돈 따 먹기는 안 해"
‘요 할망구, 이 패가 뭐시고? 좀 잘 안주고’
패를 받아 든 고참 할머니의 애교섞인 투정입니다.
할머니들과 대여섯 판의 화투가 돌았습니다.
일명 민홧투, 사실 돈 따먹기를 안하니 재미는 덜하더군요.
"한판 더해요 할머니"
"우리야 더 놀아주면 고맙지"
"할머니 노래한곡 해 보세요"
"노래 할줄 몰라. 부녀회장이 와서 켜 줘야 돼"
"제가 켜 드릴게요"
한참 만에 전원을 찾아 겨 놓으니 할머니들이 부끄러워서 그런지
제 앞에서는 결코 노래를 하지 않을려고 하더군요.
저는 할머니들의 환송을 받으며 또 뵙기를 기약하고 돌아왔습니다.
올해 안으로 10개를 더 오픈할 예정입니다.
서로에게 말할 수 없는 고독을
노인들 스스로가 풀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노인공동주거제,
지금까지 발명된 최고의 고독해독제가 아니겠습니까?
저에게는 1974년도에 발간된 ‘고독의 반추’라는 낡은 수필집이 있습니다.
수필가 윤오영선생의 글인데
오래전에 읽은 글인데도 너무 기억이 생생하여 이참에 다시 찾아 인용해 봅니다.
나는 원래 고독을 사랑했다 ....... (중략)
그래서 나는 신선이 부러웠다.
그것을 구할 수 없는 일인 것을 아는 까닭에
단 하루만이라도 사람 없는 깊은 산 속이 그리웠다.
이것이 나로 하여금 어느 날 정처 없이 깊은 산 속으로 헤매게 했던 것이다.
다행히 나무꾼의 발자취 하나 없는 곳을 찾았다.
아마 천기가 생긴 후 이곳만은 한 번도 인간의 발자취가 와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세상이 이런 곳이 있으리라고는 일찍이 생각해 보지 못했었다.
높은 바위가 있었다.
가진 애를 쓰며 그 바위 위에 올라가 우거진 나무 사이로 하늘이 끝없이 푸를 뿐,
인간 세계와는 격리된 먼 뫼 뿌리에 떠가는 구름이 솜 같이 피어날 뿐,
그 외엔 아무 것도 없었다. ..... (중략)
바위 주변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와락 반가웠다.
손이 먼저 집었다.
그것은 누가 피다 떨군 담배꽁초 하나.
왜 집어 들었는지 왜 반가웠는지 모른다.
아! 나와 같이 고독이 그리워 이 자리를 찾아 와 앉았다 간 사람이 또 하나 있었구나!
그 사람이 누구일까?
불현듯 만나보고 싶다, 눈에 눈물이 도는 것을 느꼈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사람을 그리워하고 고독에 몸부림치고 있었다는 것을.
내가 사람을 그토록 싫어한 것은 진실로 사람이 그리웠던 탓 이었구나!... (후략)
때로는 고독을 즐긴다고들 말하지만
진정 제대로 된 고독을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봅니다.
농촌 노인들의 석양에 진 고독
언젠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느껴야 할 고독이 아닐런지요?
새로운 한 주, 고독을 넘어 행복한 나날 되세요.
<하동에서 조문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