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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에서 온 편지 (24)
더페스티벌 기자    2011-07-05 17:41 죄회수  4285 추천수 1 덧글수 4 English Translation Simplified Chinese Translation Japanese Translation French Translation Russian Translation 인쇄  저장  주소복사

 

("꽃순이를 아시나요! 꽃처럼 어여쁜 꽃순이...." 장맛비 속의 꽃순이들입니다. 어여쁘지요?)

죽추(竹秋)를 말씀드렸던가요?


대나무가 죽순을 키우기 위해 자기에게 향하는 영양분을 최소로 하고

대신 그 영양분을 자식인 죽순에게 보내주어

대나무 색깔이 누렇게 변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인데요,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자 죽추의 세월이 끝나고 대나무 본연의 푸르름이

세상녹음을 지배하는 듯 합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가장 빠르게 느낄 수 있는 것은

들판에 심어 놓은 벼가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그 칼라가 짙어지는 것을

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불과 모내기를 한지 달포도 되지 않았는데 무릎에 올라올 정도로

성큼 성장했습니다.


들판의 곡식도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장마철이 되니 들판으로 향하는 농부의 발걸음이 잦아지는 듯 합니다.

물고도 봐야하고, 논두렁 풀도 베야하고


세상의 미물도 이를진대,

사람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끊임없이 속삭이고, 쓰다듬고, 발자국소리를 들려주어야

성장하겠지요!

(하동에서 청학동행 버스, 오늘 시장에서 벌어진 얘기로 버스는 말 그대로 장터를 방불케 했습니다)





태풍을 뚫고 청학동행 완행버스에 몸을 싣다!

이 노래를 아세요?

해 밝은 길을 삐그덕 삐그덕 달구지가 흔들려가네

덜거덕 덜거덕 삐그덕 삐그덕 흔들 흔들 흔들려가네


주름진 얼굴 무슨 생각 뻐끔 뻐끔 뻐끔 담배대 물고

덜거덕 덜거덕 삐그덕 삐그덕 흔들 흔들 흔들려가네

이길을 곧장가면 꾸불꾸불 꾸불 고갯길


1978년도 MBC 10대가수에 선정됐던 정종숙의 노래 ‘달구지’입니다.

송대관의 명동나그네, 윤수일의 사랑만은 않겠어요,

전영의 어디쯤가고 있을까?, 혜은이의 감수광 ....


이런 노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었다는 보도가 있었네요.



비 오는 날이 되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태풍이 올 것이라고 예보가 된 주말,

아내에게 돈 만원을 청탁하여 청학동행 완행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굽이굽이 모퉁이 길,

그 모퉁이 넘어 산 어귀에 자리 잡은 독뫼골,

동네 끄트머리에 홀로 서 있는 70년대 새마을 주택,

그리고 삿갓 밑에 숨겨둔 작은 논배비,


그 어느 것 하나 눈에 그리지 못할 것 없이 휑하니 꿰뚫고 있는 길이지만,

왠지 완행버스를 타면 세상이 다르게 보일 것 같은 기대감에서였습니다.



버스에 오르니 이미 같은 동네 어른들 처럼 느껴지는 분들의 얘기가

한창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가만 들어보니 오늘 시장에서 거래되었던 매실 금(가격) 얘기였습니다.


아 고놈들이 농협 수매를 끝냈담시로 키로에 구백원 배끼(밖에) 안쳐줘,

망할놈들!



헹님은 그나마 내보다 더 받았네요.

내는 오백원 준다카던데... 그래도 우짤깁니꺼! 그냥 주고 왔지요!

그렇다고 다시 싸 짊어지고 갈깁니까? 우짤낍니까?


땁땁한기 낸데요!



이야기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매실 수확철이 되면 농협에서 일괄 수매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매실가격이 농협수매가격으로 통일되지요.


보통 킬로그램 당 2천원, 3천원을 왔다갔다 합니다.


그런데 농협수매가 끝나면 나머지 매실은 읍내 수집상으로 몰려들게 되지요.

그렇게 되면 매실가격은 수집상의 마음에 달려있게 됩니다.


이날 구백원 받았다는 분이 계셨는가 하면

또 다른 분은 오백원 받았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맨 뒷좌석에 앉은 어른께 여쭤보니 구백원이면 그래도 해 볼만 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그 비를 뚫고 오십리 길을 매실자루를 메고 읍내를 왔던 것입니다.


      


이날 주인공은 버스기사였습니다.

청학동길만 8년 경력의 젊지만 베테랑급이었습니다.


눈을 감아도 운전할 수 있어예!

누구집에 숟가락이 몇 개 인지까지 알아요.

아이들은 나를 삼촌으로 부르지요.


첫 운행할 때 꼬맹이였던 아이들이

이제는 고등학교, 대학교를 댕긴다 아입니꺼!

참 세월 빠르지예!


눈이 와서 차가 빠지면 무작정 동네로 갑니다.

가서 밥 내놔라, 재워주라 칸다 아입니꺼!

그냥 식구라예!


이래뵈도 텔레비에도 몇 번 나왔고만요.

자꾸 와서 촬영하자 카이 안할 수도 없고....



내려오는 길에는 묵계초등학교에 다니는 초등학교 5학년짜리 어린이가 탔습니다.

기사는 이미 그 어린이와 친구사이로 보였습니다.


니 내랑 피파 한 판 붙을래?

좋아요! 아저씨 내한테 안될텐데요!

붙어봐야 알지, 안 그렇나?


내일은 읍내에 갈라고요!

왜?

샤프도 다 됐고,

실내화도 다 떨어졌고....


니 일부러 실내화 칼로 짤라삔거 아니재?

설마요? 절대 아닙니더!


엄마한테 안부전해라!

삼촌 차비 얼맨데요!

9백원인데 오늘 고만 5백원만 내라!



기사와 어린이는 마치 삼촌과 조카와의 대화처럼 끝이 없었습니다.


제 기억에 가장 남는 완행버스는 중학교를 졸업하는 해 겨울방학

친구들과 함께 했던 쌍계사행 버스입니다.


하동 터미널에서 출발한 버스는 악양 개치삼거리와

악양장이 있는 정서리와 평사리를 거쳐 화개장터에서 한참을 쉰 다음에

십리벚꽃길이 끝나는 지점인 쌍계사 입구에 도착하는 코스였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날이 악양장날이었나 봅니다.


밀어닥치는 손님으로 우리 일행은 찰떡이라도 되는 듯한

강한 압착을 느꼈습니다.

앉아 있는 저에게 툭 안긴 것은 대나무로 만든 시장바구니,

바구니를 들여다보니 닭이 한 마리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가다가 보니 이놈이 멀미를 했는지

그냥 제 허벅지 위에 실례를 했지 않겠습니까?


화개장터에 도착하니 대부분 손님은 하차를 하고

우리 일행들 뿐 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무작하고 흉측스러운 신작로였습니다.

울퉁불퉁, 버스는 곡예운전을 하고

거의 텅 비다 시피한 버스는 갈비뼈와 갈비뼈가 부딪칠 정도로 심하게 요동을 쳤습니다.


급기야 제일 뒤에 앉아 있던 저는 버스 천정에 머리가 부딪치는

대형사고?를 겪기도 했지요.


부처님 덕분에 톡톡히 고행했슴다....

청학동행 버스는 옛날처럼 덜커덩 거리지도,

심하게 요동치지도,

닭이 무릎위에 실례하지도,

갈비뼈 부딪치는 소리도 없었습니다.


비록 꾸불꾸불하고 심하게 오르막길이기는 하지만

잘 정비된 아스팔트길, 아름다운 가로수,

주변에는 신이 빗어 낸 환상적인 계곡,

대한민국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가 펼쳐졌습니다.


비 오는 날에는 추억의 청학동행 완행버스를 타 보세요.

잊혀진 세월을 돌려드릴 것입니다.

(장마가 잠시 한 숨을 돌리는 사이 남해대교는 짙은 구름에 쌓였습니다. 이 배를 저어 먼 바다를 나갈 수 있을까요?)


남해군수님 전상서!


태풍 ‘메아리’가 목소리를 낮춘 채 신의주 앞바다로 달아나 버렸습니다.

오늘은 거무스럼한 구름이 하늘을 꽉 채운 채

가끔씩 태양이 머리를 내밀고 내려와 공기를 정화시키고 올라갑니다.

 

남해와 하동, 어쩌면 숙명처럼 대한민국 남해안의 중심에서

하나는 태평양을 향하고, 하나는 지리산과 백두산을 향하여

든든히 이 땅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남해와 하동은 지리적 상관관계 못지않게 정치적 인연 또한 얄궂은 면이 있습니다.


수 십 년을 같은 국회의원 지역구아래

같은 국회의원의 정치적 이념을 먹고 살아왔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단지 그분의 인격이 고매하다고,

학벌이 출중하다고,


인물과 생김생김이 반듯하다고

윗분들이 정해주신 대로 도장을 쿡! 찍어 주셨습니다.



그러고 나서도 “그놈들, 왜 그리 밖에 못하노!”라고

말씀한 번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마치 큰 덕이나 보신 것처럼 말입니다.


이십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동안 하동은

그 흔한 국회의원 한번 내지 못한 정치적 오지로 불려왔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선거에서 하동사람이 드디어 선량이 되었습니다.

“아! 우리도 이제 국회의원을 가지게 되는구나!”


군민들은 가슴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옛말이 헛된 말이 아님을

실감하고 또 실감합니다.


존경하는 남해군수님!


요번에 남해군에서 또 한 가지 일을 벌이시고 계시더군요!

일명 제2 남해대교 명칭을 공모하신다구요?


현재 하동노량과 남해노량을 버티고 서 있는 다리는 남해대교지요.


초등학교 때 그 남해대교 구경을 가기 위해서

걸어서 걸어서, 구불구불, 수백모랭이 비포장도로를

외할머니 손잡고 따라갔던 일이 너무도 생생합니다.


그 날 따라 오기로 했던 버스가 어찌 그리 무심하게도 오지 않던지,

결국은 남해대교를 거의 다 가서야 버스를 탈 수 있었습니다.

참 멀고도 험했던 남해대교 구경 길이었습니다.


제 눈앞에 떡 버티고 서 있는 남해대교, 그 웅장함과 신비로움,

도도하게 흐르는 노량해협


아직도 그 때의 감흥은 잊을 수 없습니다.


이제 거의 40년 만에 또 다른 다리를 놓는다고 합니다.

남해군에서는 이 다리를 제2 남해대교라고 부르고 싶어 한다지요?


이제 와서야 지난 날 국회의원을 갖지 못한 서운함은 저리가고

“형제가 더 무섭다, 가진 사람이 더 한다”는 말이 불현듯 떠오릅니다.



군수님! 


남해대교가 부족하여 또 제2 남해대교를 가지려고 하십니까?

그 두 가지 이름을 모두 다 가진들 무엇이 더 달라지겠습니까?


우리 하동에서는 곧 세워질 다리 명칭을 두고

남해대교가 있으니 이번에는 ‘하동대교’로 하자는 의견도 한때 거셌습니다.


그러나 협소한 지역명칭을 쓰는 것 보다는

후대에 더 기억이 될 이름으로 하자는 것으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남해노량과 하동노량의 양 지역의 명칭을 닮고,

이순신장군의 호국의 얼이 살아 넘쳐 도도히 흐르는

노량해협의 이름을 본 따 ‘노량대교’로 부르자고

<의좋은 형제>에게 제안 드린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웬 말입니까?


“웅비하는 남해군을 빛내면서 국제해양관광도시를 지향하는

남해군의 역동성이 담긴 명칭을 공모”하신다고 발표하셨더군요.


군수님, 이제 좀 안심이 되십니까?

이제 좀 체면이 서십니까?


존경하는 군수님!


세계가 하나의 동네라고 불리는 글로벌 빌리지 시대에

작은 땅덩어리, 이 조선반도,


모두가 얼싸 안고 서로가 서로를 부축하고 뒤엉켜 살아야 할 즈음에

다리 이름 하나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심이

그리 넉넉하게 보이지 않습디다.


부디 이 땅을 지켜보고 계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민족혼이

우리 세대에 와서 흐려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본심으로 돌아와서, 평정된 마음으로 노량해협을 바라보십시다.

그리고 도도하게 흐르는 노량해에게 새로 놓일 다리의 이름을 물어봅시다.


그래도 제2 남해대교가 좋다고 한다면 그렇게 하십시다.

그것이 역사에게, 의좋은 형제에게 누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음식준비로 한창 분주한 누웬후이짱, 앞으로 하동을 지켜나갈 이땅의 억척같은 "아줌마"로 살아갈 것입니다)




헬로 할아버지 & 누웬후이짱


제가 난생처음 만난 외국인은 신작로에 길고 하얀 수염을 휘날리며

자전거를 타고 다니셨던 헬로 할아버지였습니다.


이 분은 저의 동네 바로 옆에 있는 나환자촌 ‘영신원’의 병원장이셨는데

할아버지는 읍내에서 시오리 거리에 있는 영신원까지 매일 자전거로

출퇴근 하셨습니다.

당시 신작로의 뽀얀 먼지사이로 길고 흰 수염을 휘날리고 달리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정말 신기했습니다.


우리는 그 할아버지를 헬로 할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성장해서 보니 그 할아버지는 독일에서 오셨는데

당시 우리는 미국에서 오신 분으로 생각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저 멀리 신작로 먼지사이로 흰 수염을 휘날리고 나타나시면

동네꼬마들은 “헬로 할아버지다” 소리를 지르며

할아버지가 오시는 신작로로 쫒아가 “헬로”하면

할아버지도 헬로! 하고 인사를 하셨습니다.

 

제가 처음 만난 파란 눈의 외국인 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우리 때문인지 항상 주머니에는 껌과 사탕을 넣고 다니셨는데

우리를 만날 때 마다 사탕을 주시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셨습니다.


겉모습은 이방인 이었으나 속마음은 우리네 할아버지와 너무나 닮은

헬로 할아버지!


제가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 할아버지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가 없었습니다.


   


누웬후이짱, 릉티모루엔, 팜티빈민, 강구초미, 오슈카유꼬, 제니 ....


발음하기도 어려운 이름들이네요.

정유미, 김라야처럼 개명절차를 마쳐 완전 한국인이 된 사람도 있구요.



이분들이 누구시냐고요?

하동읍내시장에서 한구자리 ‘채울’이라는 다문화가족이 운영하는 특성화가게 식구들입니다.


이곳 채울에서는 하동의 전통음식인 대통밥, 산채비빕밥은 물론,

베트남국수, 소바 등등 각 나라 요리들도 맛볼 수 있는

말 그대로 글로벌식당이지요.



장대비 같은 장맛비를 맞고 들어선 장날의 ‘채울’은 활기로 넘쳐났습니다.


어느 식당보다 젊은 주방, 화려한 의상,

다양한 생김생김, 어눌한 한국말,

때로는 익살스런 행동으로 한번씩 한바탕 폭소가 터져 나오기도 합니다.



손님들도 이들의 음식도 음식이지만

독특한 분위기 맛을 더 즐기고 있는 듯 했습니다.


‘채울’은 금년 1월에 하동시장 한가운데 한옥으로 지어졌습니다.

요새 바람몰이를 하는 사회회적기업으로 출범했는데,

갈수록 늘어나는 다문화가족들의 보금자리를 위한 목적으로 탄생했습니다.


일본이 친정인 강구초미씨는 하동의 대표 사물놀이패인 ‘들뫼’의 멤버로

이미 하동전통문화속에 푹 빠져 있고,



필리핀이 친정인 라야는 이날 하동시장에서 열릴 노래자랑에

‘채울’대표로 출전하게 된다고 하면서

특유의 유연한 몸짓으로 익살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채울’이 대박이 나고, 하동시장을 시끌벅적하게 만들며

무엇보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외로움을 함께 어울려 달래는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길 기대합니다.



다문화 공간 ‘채울’ 문화의 용광로가 되라!




<하동에서 조문환 드림>







 

태그  하동, 조문환, 다문화, 충무공, 남해군, 죽추, 청학동, 섬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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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thclub   2011-07-21 14:36 수정삭제답글  신고
우리 어르신네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왜 자꾸 나의 눈시울이 적셔질까요?
HappyMom   2011-07-06 12:20 수정삭제답글  신고
제2남해대교보다 하동대교 또는 하남대교가 어떨까요?
정종숙의 달구지..오랜만에 곰씹어보는 가사.. 의성어 의태어의 반복이군요.. 삐그덕삐그덕 덜거덕덜거덕 흔들흔들 삐끔삐끔 꾸불꾸불..
마중물   2011-07-05 18:52 수정삭제답글  신고
누웬후이짱, 릉티모루엔, 팜티빈민, 강구초미, 오슈카유꼬, 제니 .... 발음하기도 어렵고 외우기도 어렵고.. 남해와 하동은 관광자원의 보고인데..남해가 하동보다 더 알려진 이유가 남해대교 이름 덕이었다는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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