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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에서 온 편지 (29)
더페스티벌 기자    2011-08-08 10:53 죄회수  3437 추천수 1 덧글수 2 English Translation Simplified Chinese Translation Japanese Translation French Translation Russian Translation 인쇄  저장  주소복사

("저 외가집 놀러왔어요" 해질 녘, 외할머니와 동네어귀에서 놀다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의 모습에 행복이 묻어납니다)



특별재난지역이 되었습니다.


자랑스러운 일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이왕 재난을 입은 것이라면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이 되는 것이 더 근본적인 예방사업을 할 수 있고

국가의 재정지원을 받아 복구사업을 신속히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받기 위해 결코 작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지난 9년 동안 벌써 다섯 번째라고 하니

그동안 자연재해와 얼마만큼의 처절한 싸움을 벌여왔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얼마 전 어느 일간지에

“물폭탄이 자연의 공격이라면 배수는 인간의 응전이다”라는

설득력 있는 내용의 기고가 실렸습니다.


자연의 도전에 대한 인간의 응전을 통하여

문명은 발전해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지금부터가 어쩌면 시작이라는 생각이 가슴을 답답하게 합니다.

하지만, 또 다시 응전 그리고 응전...

그러나 자연에 대한 겸손한 자세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되겠지요?

 

이번 주 편지를 마무리 하는 이 순간에도 태풍 무이파가 도전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으라랏차! 무이파 정도쯤이야......

 

("내가 더 멀리 던졌지?" 평사리백사장의 동심입니다. 이런 추억 없으면 사람아니죠?)


동요가 현실이 되는 곳, 평사리 백사장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모래알로 떡 해 놓고

조약도로 소반 지어

언니 누나 모셔다가

맛있게도 냠냠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호미 들고 괭이 메고

뻗어가는 메를 캐어

엄마 아빠 모셔다가

맛있게도 냠냠


이런 추억 있으세요?


태양이 동산위로 떠오르자마자 시냇가로 나가 멱을 감는다.

새파래진 입술로 덜덜거리며 백사장으로 기어나와

따끈해진 모래에 자라처럼 땅굴을 파고 몸을 숨긴다.


태양에 빛나는 모래알,

차라리 눈을 감으면 하늘엔 별이 가득했었다.


이윽고 몸이 데워질 때면 노근한 몸 기지개 켜며

작은 돌맹이로 귀를 후벼 귓속의 물을 닦아 내고

바위에 엎드려 즐기는 나만의 자유!


물놀이에도, 일광욕에도 지루해질 무렵이면

검정고무신 뒤집어 기차도 만들고 배도 만들어

백사장은 온통 꿈의 나라가 되었다.


산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배가 고파 올 무렵,

뽕나무에 다람쥐처럼 올라가 오디로 허기진 배를 채우면

입술은 어느새 어릿광대 입술이 되어 있었다.


그 어떤 환상과 꿈이라도 현실이 되었던 곳,

어릴적 시냇가의 저의 작은 백사장입니다.


그러나 꿈의 백사장이 아직도 있습니다.


지리산이 마지막 치솟은 형제봉의 엄지발가락,

저 멀리 노고단이 손짓하며

백운산이 옆구리를 간질이는 곳


하동의 섬진강, 평사리 백사장입니다.


동요가 현실이 되고,

순수함이 극치를 이루며,

여행(旅行)이 여행(餘幸,여유와 행복)이 되는 곳,

청춘은 물론 동심까지 돌려주며

속도와의 경쟁이 아니라 차라리 느림의 극치를 이루는 곳,


이곳의 자유가 아닌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

이곳의 느림이 아닌 느림은 거짓이다!

이곳의 순수함은 절대음감처럼 순수의 바로미터다!


 

 

 

하동이 오늘날과 같은 환경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기적이라고 묘사하신

미래상상연구소 홍사종 대표는

하동의 평사리백사장을 맨발로 걸어보시고 다음과 같이 칼럼을 쓰셨습니다.



섬진강의 깨끗한 백사장을 맨발로 걷고 투명한 강물에 발을 담그면서

어떻게 이를 수 있을까 싶어 몇 번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강변에 벚꽃이 떨어져 내릴 때면 풍경은 삼매경이다.


“신발로 꽁꽁동여맨 도시인의 발에 자유를 허(許)하라!”


 (섬진강달빛차회는 매년 5월에 열립니다. 찻잔에 투영된 달빛을 보며..)

 

평사리 백사장만 생각하면 엄마야 누나야가 생각납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이번 여름방학 숙제는 “동요를 현실로 만들기”

어떠세요?


하동의 평사리백사장이 그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조씨고가의 조한승어른입니다. 이 시대에 우리가 바라는 어른입니다)


어른 궁핍시대에 만난 조한승 어른

조한승 어른을 뵐 때마다 어쩌면 저리도 멋지게 연세가 드셨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십 수번을 뵈었지만 늘 한결같으십니다.


친 자식 마냥 반갑게 맞아 주시고

커피다, 매실차다, 녹차다 그리고 가을에는 단감에...

있는 것 없는 것 다 내 놓으십니다.


겨울에는 아랫목에 깔아 놓으신 이불을 걷어 재치시면서

따뜻한 구들목으로 억지로 앉히시기도 합니다.


한 번은 제가 마신 커피가 마지막이어서

"어르신 담에 올 때는 제가 커피 한 봉지 사 올게요...."

해 놓고 가지 못해 늘 마음에 짐이 되기도 했었는데


수개월 뒤 찾아뵈면서 커피를 사다 드렸더니

"안 잊어삐고 가져왔나!"하시며 반가워하셨습니다.


할머니를 13년 전에 먼저 저세상으로 보내신 어르신은 지금껏 혼자서

식사며 빨래며 모든 것을 거뜬히 해결하시고 계십니다.


어르신이 사시는 집은 하동에서도 몇 채 안 남은 전통고가입니다.


조선개국공신인 조준대감의 직계손인 조재희 선조께서 낙향하여 지은 집으로

동학혁명과 한국전쟁 등 파란만장한 역사의 질곡속에서

사랑채와 행랑채, 초당과 사당은 소실되고

지금은 안채와 방지만 남아 있지만 그 위용을 충분히 짐작하고 남음이 있습니다.


조씨고가로 불리고 있는 이 고택이 고택답게 보이고 위용이 있어 보이는 것은

단지 집이 크고 오래되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속에 누가 살고 있느냐가 그 집의 가치까지 결정하는 듯 합니다.


아무리 웅장하고 위용을 가진 집일지라도

집을 지키고 사시는 분이 그 집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라면

집의 가치 또한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올해로 여든 여섯 되시는 조한승 어른은 집의 격에 맞는 어른입니다.


단정한 몸가짐이며 흐트러짐 없는 정리정돈,

모든 가재도구가 매우 단조롭고 검소하십니다.


조상들이 물려주신 땅이 수십만 평 있다고 하지만

삶의 모습에는 전혀 그런 모습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 조씨고가는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배경이 되었다고 합니다.


박경리선생께서 고택을 찾아오셔서 어른과 많은 대화를 하셨고

이 집을 모태로 집필하셨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보니 정말 그를 듯 했습니다.


지리산 형제봉을 등지고, 앞들은 만석군의 넓은 토지,

그리고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


마치 소설 토지속의 주인공이 된 듯 합니다.


이 나라 교육이 큰일이야

도덕성이 없어

사람들이 물욕이 없어야 하는데

.....

어른의 넋두리에는 시대를 한탄하시는 염려가 가득했습니다.


이제는 입에 입소문이 이어져 하루에도 십 수 명이 찾아오는 하동의 명소가 되어

방문객을 맞이하시는 것이 대부분의 일과가 되어버렸지만


조상과 가문에 대한 자부심,

시대를 읽는 선견지명과 지혜,

삶속에서 묻어나오는 진솔하고 검소한 삶의 자세,

그리고 사람을 늘 따스하게 맞이하시는 깊은 온화함이

옛 어르신의 선조 조준대감을 연상하게 하십니다.


하동에 오셔서 조준대감을 닮은 조한승 어른으로부터

명품녹차인 하동의 <왕의녹차> 한잔 대접받으시면

이미 당신은 이 땅의 대감입니다.


<하동에서 조문환 드림>

 

 

 

태그  조문환, 섬진강, 평사리백사장, 조한승, 왕의녹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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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11-08-13 14:08 수정삭제답글  신고
엄마야누나야강변살면큰일난다 다떠내려간다 요즘같으면..
별별별   2011-08-09 09:52 수정삭제답글  신고
평사리백사장, 섬진강달빛, 녹차밭.. 태풍이 건들지 않았으면.. 하동의 보배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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