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일출을 보고 싶은 심정은 저 뿐이 아니었습니다. 일종의 동료의식을 느꼈습니다)
금오산에서 마지막 일출을 맞다!
처음, 새것, 만남이 주는 기쁨과 환희보다는
마지막, 헌것, 이별이 주는 애틋함과 서러움이 더 큰 무게로 다가오는 것은
저만의 일입니까?
입학보다는 졸업이,
탄생보다는 죽음이,
만나는 정거장 보다는 떠나보내는 항구가,
기다림의 깃발 보다는 이별의 손수건이 더 큰 자리를 차지하는 듯 합니다.
어쩌면 이런 것들이 더 詩적이고
예술적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초등학교 때 전근가시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면서
어린 마음에 “찡”했던 가슴,
초겨울의 마지막 잎 새,
그리고 외로이 하늘을 응시하는 까치밥 감ㆍ하ㆍ나 .....
이런 것들은 마지막이 주는 엉어리입니다.
매일 뜨는 태양이지만
왠지, 마지막 태양은 다르게 떠오를 것 같았습니다.
물과 바람에 씻기고 닳아 처음 떠오른 태양의 원색과 에너지가 아닌
원숙하고 장중한 태양으로 변모되어 오를 것 같았습니다.
아침 찬 바람을 가르고 금오산에 섰습니다.
그 실상에 비해 명성은 높지 않은 남해안의 지킴이,
일출 뿐 아니라 명품 일몰까지 한 자리에서 조망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최고의 일출과 일몰 감상지입니다.
(금오산에서 출발한 봉화는 곧바로 천왕봉에 도달해서 지리산을 태우는 듯 했습니다)
무엇보다 반도의 남단을 지키고 있는 지리산 천왕봉과 마주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남해안의 정 중앙에 위치하면서
흩뿌려 놓은 수많은 섬들을 발아래 두고 있다는 것이
금오산을 더욱 금오산 되게 하는 요소입니다.
감정이입이 되었는지 모르나
태양은 전조나 이글거림도 없이 이내 엄지손톱 같이 얼굴을 내 밀더니
곧바로 치 밀어 올라와 버렸습니다.
이내 바다가 들끓기 시작하고
마치 불놀이 속에 아이들이 춤추는 듯 섬들이 뛰놀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사천만, 노량해협이 온통 태양의 강열한 에너지에
빨려 올라가는 듯 했습니다.
마치 봉화대에 불이 전달되는 듯
금오산에 첫 점화된 불이 곧바로 지리산 천왕봉을 태웠습니다.
이 불이 백두대간을 타고 올라 백두산 천지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일출,
그곳에는 특별함도, 황홀함도 없이 매일 보던 어제의 그 태양이었고,
불과 10여 분만에 모든 ‘일출 세레모니’는 신속하게 마무리되어
일상속의 태양으로 떠올라버렸습니다.
첫 해맞이 이니 마지막 해돋이 이니 하면서 호들갑 떠는 이들에게
잠잠하고 조용하라
오늘도 어제처럼, 내일도 오늘처럼 한결같이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듯 했습니다.
태양은 어제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화려한 세레모니를 생략한 채 세월을 재촉할 것입니다.
새해에는 빠르게 달리는 세월 속에서 느리게, 느리게....
그리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하동에서 온 편지>가 50회로 인사드립니다.
혹독했던 한파로 온 땅이 얼어붙었을 때
<하동에서 온 편지>를 시작했었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시작은 했지만 감히 지속할 수 있을지 저 자신도 의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제 귓전에 들려오는 많은 분들의 응원소리가
작은 봉우리인 50회의 고지를 밟게 했습니다.
그 응원소리가 없었던 들 기껏해야 열 번 정도로 마쳤을 것입니다.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큰 절 올려드립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올해는 저의 생애에 잊을 수 없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귀한 분들을 정말 많이 만났습니다.
전화와 이메일, 그리고 직접 대면을 하면서 친구가 되었습니다.
이것보다 더 큰 선물은 저에게 없을 것입니다.
저의 인생의 멘토가 되실 분들도 만나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늘 교감 속에서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태어나고 자라고 일하고 있는 하동을
제 발로 직접 밟으면서 하동을 더 깊이 알아가고
하동과 호흡하게 된 것도 빼 놓을 수 없는 축복이었습니다.
이런 일을 통하여 저 자신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처음에 <하동에서 온 편지>는 다른 사람에게 쓴 편지였지만
결국은 저를 위해서 저에게 쓴 편지가 되었습니다.
새해에는 섬진강을 찾아보려합니다.
데미샘에서 남해바다까지 500리입니다.
한 걸음도 빼 놓지 않고 저의 두 발로 걸으면서
섬진강이 주는 말을 가슴으로 들어보려 합니다.
새해에 <섬진강 에세이>로 찾아뵙겠습니다.
새해에 사랑과 행복이 넘치시는 삶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빕니다.
<하동에서 조문환 드림>
(하동편지와 함께 했던 사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