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불어도 좋은 날 - 섬진강 평사리 백사장에 바람이 불어재꼈다. 섬진강은 바람과도 아울리는 강이다. 평사리 백사장에 메마른 갈대가 바람에 몸을 바짝 낮췄다)
나 한 마리의 회귀어(回歸魚) 되어!
섬진강을 향해 집을 나서면서 나도 모르게 기도가 나왔다.
섬진강처럼 맑고 순수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이는 섬진강으로 나아감에 대한 일종의 허락요청이었다.
신 앞에 나아가기를 요청하는 것처럼
그의 순수함, 그의 때 묻지 않음에 나아가기를 허락받고자 하는 것이었다.
나는 마치 구도자처럼,
아니 섬진강에 몸이 달아 오른 사람처럼,
야반도주라도 하듯 아내를 재촉하고 문을 박차고 나왔다.
무엇이 나를 이리도 끌어당기는가?
나를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나를 끌어당기는 원심력에 못이기는 듯 몸을 맡겼다.
섬진강으로 올라 갈수록 어두워지고 그만큼 고요해졌다.
다시 시원에 근접한다고 생각하니 지난 번 데미샘에서의 첫 경험이 자꾸 떠올랐다.
한 주간 내내 데미샘은 나의 곁을 떠나지 않았었다.
그 소리 없는 시원, 그 낮은 자리가 자꾸자꾸 떠올랐다.
(원신암마을은 데미샘아래 첫동네다. 마을앞을 흐르는 섬진강, 이것은 강이라기 보다는 탯줄 같았다. 그 탯줄과도 같은 강 옆에는 숨죽인 들판이 조용히 엎드려 있다)
한 밤을 소리 없이 지냈다.
팔공산 자락의 작은 펜션은 눈 속에 파묻혀 고요했다.
그리고 섬진강은 없는 듯 있었다.
새벽 문 여는 소리에 눈 속에 파묻혀 있던 강아지가 짖을 뿐
섬진강은 바로 내 곁에 누워있었으면서도 밤 새 기척도 없었다.
공기도, 어둠도, 소리도 얼어붙었다.
영하11도에 계곡은 모든 것이 정지된 듯 했다.
칠흑 같은 어둠이다.
가로등이 없었다면 완벽한 어둠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북두칠성을 필두로 오목하게 뚫린 산골 새벽하늘에
별들이 섬진강 백사장 모래알처럼 흩어져있었다.
별빛도 얼어붙어버린 듯, 깜빡거리지 않았다.
단지 차가운 빛만 쏘아 내렸다.
(오목하게 뚫린 산골의 새벽하늘, 별빛은 얼어붙어 고정되어 있었다.)
지난 번 왔던 길을 다시 더듬어 올랐다.
마치 회귀하는 한 마리 은어처럼 나도 모르게 발길은 시원을 향했다.
어떤 강한 힘에 끌려 올라가는 듯 했다.
새벽부터 장보러 떠나는 시골 버스를 기다리는 유동마을 사람들이
정류장에서 서성거리다 덜덜거리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엔진소리는 버스가 떠난 후에도 온 계곡을 한동안 울렸다.
드디어 미명 속에 섬진강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얼어있었다.
강이라기보다는 실개천이다.
아니 가느다란 탯줄이었다.
엄마와 아기의 생명줄처럼 구부러지고 꽉 메마른 모습이었다.
작고 보잘 것 없는 데미샘에서
강한 생명의 에너지가 그 속에 실려 내려오는 듯 했다.
엄마와 같은 데미샘,
원신안마을, 유동마을로 타고 내려오는 실개천 같은 섬진강은
마치 생명을 이어주는 탯줄 같았다.
그 가느다란 탯줄위에 눈이 덮였다.
얼음 숨구멍사이로 물소리가 ‘뽀로록’ 거렸다.
설날 무렵이 되면 저 숨구멍조차 막히고 섬진강은 숨이 멎을 것이다.
(숨구멍이다. 저 숨구멍이 다 막히면 설이 올 것이다. 다시 숨구멍어 뚫릴 땐 봄이다.)
대식구였던 우리 집은 하루걸러 한 번씩
겨울이 되어도 엄마와 형수는 수레에 한 짐 빨래를 싣고 개울로 나갔었다.
집에서는 물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꽁꽁 얼어붙은 시냇물,
돌 틈 사이로 숨구멍이 열려 있었고,
빨래방망이로 힘껏 내리쳐 숨구멍을 키워 그 속에 찬 손을 집어넣었다.
햇살 퍼지는 시냇가에서 두 아낙네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오고
등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올 즈음이 되어서야
한 짐 빨래를 싣고 돌아올 수 있었다.
온종일 빨래를 말려도 해가 짧아 해질녘 빨래 줄의 빨래는 동태처럼 변하였고
이윽고 따뜻한 아랫목으로 던져졌었다.
얼어 있는 섬진강의 숨구멍을 보니
겨울 시냇가에서 고부간에 내 뿜는 하얀 입김이 생각났다.
(섬진강과 평행하게 걸어가는 시골도로, 남해바다까지 이 길은 같이 연하여 걸어갈 것이다)
시원에서 발원된 수 십리 길 섬진강은 다행히도 도로를 따라 흐른다.
가다가 도로와 강물이 갈라지게 되는 지점에서는
나는 어김없이 도로를 버리고 강물을 택한다.
비록 그 길이 험하고 사람이 통행하기 어렵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나의 도리이고 그것이 나의 의무라 생각했다.
물을 떠난 고기가 존재할 수 없듯이
섬진강에 대한 나의 의지는 과감하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내가 감정에 메말랐기 때문인지 모른다.
섬진강에서 그것을 회복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정신적 황량함과 기근으로 나를 적셔줄 한 줄기 샘을 찾는 것처럼
섬진강은 나에게 치유의 샘이다.
동네, 엄마, 친구, 얼음을 타고 놀았던 시냇물,
총 놀이 하고 칼싸움 놀이 했던 뒷동산.....
이런 것들은 인생의 반을 살아재낀 나에게는
어쩌면 다시 돌아가야 할 모천이다.
저금통장을 몰래 들여다 보듯 나의 감쳐진 보물이다.
빌딩숲 속에 살아도 이처럼 돌아갈 모천이 있다면
그는 하나의 마르지 않은 샘을 가진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가느다란 탯줄처럼 얼어붙고 메마른 섬진강가에 서서
나는 나의 영원한 母川을 생각한다.
<하동에서 조문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