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X통신 제84호 2012년 2월 10일 금요일
<사진=음향감독 김벌래 ⓒ연합뉴스>
기분좋은QX는 여러 해 동안‘프로보다 뛰어난 아마추어’에 주목해 왔습니다. ‘프로보다 뛰어난 아마추어’는 정규 과정을 밟지 않은 아마추어로서 새로운 분야를 자력으로 개척하여 프로의 경지를 뛰어넘은 사람을 이릅니다. QX통신은 10회에 걸쳐 ‘프로보다 뛰어난 아마추어’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프로보다 뛰어난 아마추어 5] 김벌래
‘김벌래’라는 이름을 아시는지. 특이한 이름을 가진 김벌래는 본명이 김평호이다. 1941년생이니 고희를 넘긴 나이다. 대한민국 최초이자 최고의 음향 전문가로 현재는 홍익대학교 광고홍보학부 겸임교수이다. 1960년대부터 40여 년 동안 연극․방송․광고․공연․이벤트 등 여러 분야에서 음향효과를 주도해 왔다. 만화영화 ‘로봇 태권브이’의 음향 작업을 했고, 86아시안게임․88서울올림픽․2002한일월드컵․대통령 취임식 등 대형 행사의 음향 연출과 제작을 담당했다.
김벌래는 이렇게 화려한 이력을 가졌지만 최종 학력이 ‘고졸’이다. 그는 국립체신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체신공무원으로 근무하던 도중 끼를 주체할 수 없어 연극판을 기웃거렸다. 음향효과 분야에 뛰어 든 것은 1962년 동아방송국에 입사하면서 부터였다. 남들이 잘 안 가는 척박한 길이었다. 선배도 없었고 아무런 지식도 없었다. 모든 것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했다.
2008년 출간된 김벌래의 책 제목 <불광불급(不狂不及)>은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그의 인생관을 반영한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은 약여불광(若汝不狂) 종불급지(終不及之)의 줄임말이다. 어떤 것에 미치지 않으면 끝내 그 목표에 이르지 못한다는 뜻이다. 김벌래는 소리에 미쳐서 살았기에 2만 여 편의 소리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김벌래는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간 ‘개척자’라고 소개하는 것보다, 없던 것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 연구하고 공부한 ‘창조적인 학습자’라고 소개하는 게 낫다. 그의 그러한 힘이 기성 제도권에 없는 창의적인 지식을 만들었다. 무학자가 독학을 즐기다가 ‘음향효과학’의 창시가 된 것이다. 김벌래의 성공의 본질은 지치지 않는 아마추어 정신에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김벌래는 평생 달고 사는 괴물 15843호가 있다고 말한다. 158㎝의 키와 43㎏의 체중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에게 외모와 학력은 콤플렉스였다. 연출가 이해랑은 김벌래의 왜소한 모습과 부지런한 습성을 보고 ‘벌레’라는 예명을 지어주었다. 그 벌레는 한없는 꿈틀거림을 통해 화려한 나비로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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