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9월, 언론인이자 경제학자인 고 정운영 교수의 영결식장에 노래가 울려 퍼진다. 소리꾼 장사익의 노래였다. 그는 앙가슴에 맺힌 한을 녹이는 듯이 절절한 음색으로 ‘봄날은 간다’를 불렀다. 장사익의 소리는 울부짖지만 애절하다.
그는 31세이던 1980년에 뒤늦게 국악에 입문했다. 1993년 전주대사습놀이 공주농악 부문에서 장원, 1994년 전주대사습놀이 금산농악 부문에서 장원을 하면서 실력을 인정받는다. 이후 국악과 서양음악을 융합한 ‘장사익의 소리’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그 결실로 1995년에 1집 ‘하늘가는 길’을 발표한다. 그는 45세가 넘어 만든 1집 수록곡 ‘찔레꽃’이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본격적인 소리꾼으로 활동한다.
장사익은 중·장년기를 거치면서 성장했다. 서른이 넘어서야 인생 좌표를 정했고, 그때부터 마흔이 될 때까지 십년이라는 시간을 인생의 바탕을 만드는 데 썼다. 그는 소리를 제대로 공부한 뒤 경연에 서면서 세간에 모습을 보였다. 그가 세간의 인정을 받은 것은 이후 장사익만의 소리를 만들어냈을 때다.
장사익의 수리 색채는 세공한 보석이라기보다 원석에 가깝다. 다소 거칠지만 기본에 충실하다. 그는 국악계 제도권의 방식으로 음악을 하지 않고 자신만의 색채에 힘을 실어 음악을 하는 사람이다. 사실 명인이나 장인의 길은 안정적으로 정해진 길 보다는 불안하고 어두운 뒷길이기 십상이다.
장사익의 예술은 국악에서 출발하여 자기 특유의 독특한 음악세계로 진화했다. 그는 ‘프로암’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프로암(pro-am)’은 골프에서 정식 경기 전에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이 동반하는 라운딩을 일컫는 말이다. 이 단어는 2000년대에 아마추어들이 프로의 기준을 추구하고 프로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트렌드를 지칭하는데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