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서 1번과 2번 타자는 미국용어로 ‘테이블세터(Table Setter)’라고 한다. 맨 처음 진루해서 후속타자의 밥상을 차려놓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삶의 현장에 테이블세터처럼 밥상을 차려나가는 사람이 있다. 공동체적인 삶과 대안교육을 추구하는 "변산공동체"의 윤구병이 그 1번 타자이다.
서울대 철학과와 대학원을 마친 그는 월간 <뿌리깊은 나무> 초대 편집장을 지냈다. 1981년부터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1995년 홀연히 전북 부안군 변산에 내려가서 농사꾼이 된다. 한국사회의 모순은 결국 생명공동체를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는 20여 가구 50명 남짓한 식구들이 논밭을 경작하는 변산공동체를 세운다. 그들은 사람·자연·생명의 공동체를 이룬다. 변산공동체는 생산한 유기농 채소와 먹거리를 서울 서교동에 있는 식당 ‘문턱 없는 밥집’에 보낸다.
‘문턱 없는 밥집’은 유기농산물을 가난한 도시 서민과 연결시켜야 한다는 윤구병의 뜻에 따라 만들었다. 자신이 가진 만큼 돈을 내고 밥을 먹는 밥집이다. 그는 공동체의 문을 열어 상처받은 도시의 영혼까지 보듬을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한다.
그는 ‘변산공동체학교’도 세웠다. 이 대안학교는 아마겟돈 같은 한국사회의 교육현실 속에 순수하고 아름답다. 학교에는 교실도 선생님도 없다. 공동체 자체가 학교이고 자연과 마을 어른이 선생님이다. 학생들은 자유롭게 뛰어놀면서 깨우치며 삶의 지혜를 배운다. 윤구병은 학생들이 스스로 제 앞가림을 하고 어울려 사는 힘을 기르게 하는 것이 교육목표라고 말한다.
윤구병이 20년 전에 실천한 친환경농업·대안교육·생명공동체·생태비즈니스·사회적기업 등은 모두 최근에 일어난 트렌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