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노르웨이 여행 중 지친 몸을 라면으로 달래고 싶다면 지나가는 사람에게 단 한마디 “미스터리(Mr. Lee)" 라고 외치면 된다. 노르웨이 사람들에게 ‘미스터리’는 라면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철호씨 덕분이다. 그는 자기 이름을 딴 라면 브랜드 ‘Mr. Lee’를 만들어 까다롭기로 유명한 노르웨이 시장을 석권했다.
이철호는 1954년 한국인 최초로 노르웨이에 정착했다. 그는 요리사 명성을 한국인 특유의 성실과 근면으로 쌓았다. 그런데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일이 생긴다. 1971년 스웨덴 정부 주선으로 한국에 출장해서 맛본 한 그릇의 라면 때문이었다. 어떤 요리보다 감동적인 라면을 맛본 순간 그는 노르웨이 사람들에게 이 맛을 보여주고 싶어진다. 그는 즉시 라면 사업에 뛰어들어 1974년 노르웨이 시장에 라면을 수입했다.
기대와 달리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고민에 휩싸인 그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요리사 본연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음식으로서의 라면"을 꼼꼼히 되짚었다. 해답은 수프에 있었다. 맵고 짠 것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라면 수프는 노르웨이 사람들의 입맛에는 전혀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기름진 것을 좋아하는 노르웨이 사람들에 맞추어 수프의 매운맛을 빼고 새롭게 개발했다.
새로 출시한 라면은 ‘대박’이었다. 수프 하나를 바꾸었을 뿐인데 노르웨이인에게 감동을 주는 ‘소울푸드(Soul Food)’로 변신했다. ‘Mr. Lee’는 파죽지세로 노르웨이 시장의 80%를 차지하게 된다. 세계시장을 주도한다는 일본의 ‘라멘’도 감히 노르웨이 시장은 넘볼 수 없게 되었다.
그의 수프의 변신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있을까. 답은 ‘현지화’이다. 세계시장에 진출하여 글로벌 브랜드 및 현지 브랜드와 경쟁할 때는 반드시 현지화라는 벽을 넘어야 한다. 제품과 기업을 지역현실과 풍토에 맞추지 않으면 반드시 패배한다는 점에서 기업현지화는 1990년대 이후 글로벌 기업의 과제가 되었다.
이철호는 라면 수프로 한국에서는 2000년대 들어서야 고민하기 시작한 현지화 전략을 십 수 년 이상 앞서 실천한 셈이다. ‘한식의 세계화’는 바이킹을 감동시킨 이철호의 현지화 전략에서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