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쉬고 싶어요!)
섬진강, 호수에 잠기다!
내 관념의 시원이었던 데미샘 길을 처음 나섰던 것은
지난 해 성탄절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서설, 그것도 첫눈이 내려 축복이라도 해 주는 듯 온통 세상은 백색천지였다.
그 후 4개월간 나는 미친 듯 섬진강을 탐하였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황금을 캐는 일도 아닌데,
그렇다고 누가 동행해 주는 것도 아닌데...
주말이면 북쪽으로 도망치듯, 달아나듯 섬진강으로 향했다.
갈 때마다 섬진강은 다른 모습이었다.
때로는 재잘거림으로,
때로는 칭얼거림으로,
때로는 묵묵부답으로
그리고 때로는 철없는 나를 향하여 “에라이 요놈, 정신 차려라!”
나의 모습이 섬진강에 투영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콱 막혔던 나의 상상력에 샘솟는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내 영혼의 메신저가 되어 준 것이다.
아니 섬진강의 낮고 진솔함에 내가 무릎을 꿇었다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상류 쪽 섬진강의 겨울은 유독 길어보였다.
찬바람, 앙상한 나뭇가지들, 차가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는 참새들....
영원히 봄은 오지 않을 듯 했다.
탯줄과도 같이 마르고 가느다란 강줄기에 늘 하얗게 눈이 덮어 있었다.
하류의 섬진강이 천방지축 놀아대는 아이들 같다면
상류의 강은 인생을 고뇌하는 청년으로 있었다.
세상에 대하여, 미래에 대하여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하여 ......
이상을 꿈꾸는 청년학도와 같아 보였다.
(선거교에서의 응시)
그동안 내가 섬진강의 호흡소리를 듣고,
섬진강의 땀 냄새를 맡으며 걸어 온 길은 근 이백리 길이다.
바다로 향하는 그 길에 간혹 섬진강도 쉬어가는 길목이 있었다.
그 첫 귀착지가 내동산을 병풍처럼 안고 있는 반송마을이었다.
내 기억에는 섬진강을 닮은 최초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마령사람들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질펀한 느린 말씨, 시간이 멈춰선 듯한 옛 거리들,
그리고 계남정미소,
정미소는 우리네 근대적 삶을 단면으로,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자기공명촬영장치와도 같다.
섬진강은 이곳에서도 잠시 머무를 수 있었으리!
내 언젠가 수선루에서 보름달을 보고 말리라!
수선루를 휘감아 돌아가는 섬진강은 강이 아니라 달맞이 호수 같아보였다.
저 호수에 달이라도 내려앉는다면....
아! 저 아름다움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진안의 끝자락 포동은 사람을 끌어안는 마을이었다.
섬진강도 포동에서는 안기지 않을 수 없지 않았을까?
포동사람들의 그 순수함에 섬진강인들 그냥갈 수 없어보였다.
역이 있었던 관촌은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넓은 광장과 공원,
멀리서 강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사선대,
강폭이 넓어져 겉모습은 쉬어갈 수 있을 듯할지 모르나,
섬진강은 그냥 스쳐만 갔다.
섬진강을 끌어안는 가슴이 없었던 것일까?
그러나 신평은 아교처럼, 사람을 확 잡아끄는 가슴이 있어보였다.
섬진강은 이곳에서도 잠시 머무를 수 있었다.
(저 마실가요!)
오늘 또 섬진강은 어떤 모습으로 나를 맞이해 줄 것인가?
오늘 나의 여정은 학암리 새터에서 부터다.
학이 많이 살아 학암리였을 것이고 그 자리가 새터가 아니었겠는가?
이날은 학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지난 번 그 폭풍 속에서 학들은 무리를 지어 차라리 즐기고 있었는데,
바람이 잔잔한 오늘은 학은 간데없고
마을을 거니는 촌로들만 찬바람을 등지고 양지쪽을 찾아 돌아다닌다.
마을 가장자리에는 오래전에 폐허가 된 건물들이 나뒹굴어져 있다.
봄기운은 강변에 완연하지만 그 폐허 건물 앞에서는 멈춰서 버린 듯,
오래전에 말라져 버리고 숨이 멎어버려 상냥한 봄바람 앞에서도 묵묵부답이다.
선거교에 올랐다.
섬진강을 따라 걷는 동안 수많은 다리를 지났으나
선거교에서는 사뭇 다른 감흥이 느껴졌다.
충만하고 장중함, 그리고 이 편안함! 어디서 이 느낌이 몰려오는 것일까?
다리 아래 물길을 보니 물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멈춰서 있었다.
신평과 학암리를 거쳐 쉼 없이 달려온 강물이 차곡차곡 쌓이듯
선거교 밑에서 멈춰서 있었다.
(이제 흐르고 싶어요)
그렇구나! 여기서 비로소 섬진강이 쉼을 얻게 되는구나!
그러고 보니 여기가 옥정호의 시작이 아닌가?
나의 섬진강 여정 첫 날부터 내 머리에는 늘 옥정호가 그려져 있었다.
나도 언젠가 봄이 되면 저 옥정호 푸른 물결 위를 떠다니고 있겠지!
이는 봄에 대한 나의 간절한 희구, 갈망이 아니었겠는가?
지도에서 본 옥정호는 호수가 아니라 차라리 용틀임 이었다!
시원을 떠난 섬진강이 드디어 하늘을 향해 용솟음치는 모습으로 보였다.
선거교위에 홀로 있는 나는 그 용의 꼬리 부분에 매달려 있는 형상이다.
용이 강하고 날렵한 추임새로 꼬리라도 치는 듯 해 보였고
그 꼬리침에 물결이 일어나 금방이라도 물보라가 쳐 내 옷을 적실 것만 같았다.
한참을 응시하다 개미가 줄을 지어 집을 찾아가듯 나는 좁디좁은 오솔길을 따라갔다.
용의 뒷발톱과 같은 곳에 위치한 월면마을,
이는 마을이 아니라 차라리 홀로 옥정호를 지키는 외로운 등대 같았다.
옥정호를 떠날 수 없다는 체념과 달관의 경지에 이른 월면의 모습이다.
월면으로 향하는 고개길,
수십 고개를 돌고 돌아 산 위에서 내려 보이는 옥정호는
한 점 바람 없이 잔잔한 바다 같기도, 엄마의 포근한 품 같기도 했다.
붉은 색 황토가 허리춤 사이로 보이고,
그 사이에 파릇파릇 움이 돋는 봄....
푸른색 물결이 태양에 반사되어 마치 파란 하늘에 새털구름 같이 춤추는 듯하였다.
옥정호에서는 허리춤 사이로 하얀 살 내 보이며 물동이 이고 가는 엄마가 보였다.
(월면가는 길.... 그 잘록한 허리에서 물동이 이고가시는 엄마를 생각하다!)
섬진강을 걷는 다는 것은 삶의 쉼표를 찍는 것,
내가 섬진강으로 나아감은 섬진강에 내 짐을 내려놓기 위함이다.
먼 길 떠났던 섬진강이 어머니 옥정호에 감싸 안겨 쉼을 얻었다.
섬진강, 호수에 안기다!
과연 이 땅에 진정한 안식은 있는가?
있다면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옥정호에 안긴 섬진강을 바라보며 내 삶의 안식을 생각해 본다.
<하동에서 조문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