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꽃으로 산다는 것은...
섬진강은 매화에서 벚꽃으로, 벚꽃에서 배꽃으로 바통을 넘겼다.
불과 보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섬진강의 주인은 세 번이나 바뀌었다.
내일의 주인공은 또 누구일까?
진달래? 철쭉?
매화와 벚꽃은 바람이 데려가 버렸다.
하루아침에 뚝딱 피는가 싶더니 하루아침의 바람이 낚아 채 가버렸다.
게 눈 감추듯 한 번의 눈 깜빡임 순간이었다.
배꽃은 언제 피었는지 모르게 피었다가
나무에 달린 채 퇴색되어 이슬처럼 사라져 버린다.
동백꽃은 떨어지는 순간까지 화려함의 극치를 이룬다.
떨어진 채 바람에 나뒹구는 동백꽃은 한동안 그 빛을 잃지 않는 인내를 지녔다.
담벼락 넘어 ‘쿵’ 하는 소리가 났다면 이는 분명 목련이 내는 소리다.
그 삶의 무게만큼이나 떨어지는 소리도 무겁다.
벚꽃의 일생은 매화에 비하면 반 토막도 되지 못한다.
그 짧은 생애를 위해 온갖 고초를 겪었나 생각하니 가슴이 짠하다.
벚꽃 다음에 피는 꽃은 배꽃이다.
벚꽃에 비하면 배꽃은 삶이 아니다.
그 피는 모습은 닮았지만 그의 순간은 찰나다.
배나무 아래 살아도 자칫 하면 그 피고 지는 순간을 놓칠 정도다.
오죽했으면 내가 작년에 그의 이름을 홍길동꽃이라고 지었겠는가?
역시 이 녀석도 사람들 가슴만 건드려 놓고서는 도망가 버렸다.
(향연)
봄은 바람둥이다.
사람들 가슴에 설렘만 남겨놓고 오자마다 바람처럼 달아나 버린다.
그래서 누군가가 4월을 잔인하다고 했을까?
죽을힘을 다해 피워 놓은 꽃을 하루아침의 봄바람으로 앗아가 버리니
잔인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으랴!
올해는 매화를 피워내기 힘들 정도로 봄은 더디게 오더니
언제 오는지도 모르게 도둑처럼 왔다가 도둑처럼 도망가 버릴 태세다.
매화, 벚꽃, 배꽃 한 자루씩 담아서 야반도주라도 하듯이...
다시 또 오기만 해봐라 내 그냥 두지 않을 테다!!!!!
봄비가 내린 4월의 월요일 아침,
밤새 내린 비로 동백꽃이 청사 마당에 흩뿌려져 아라비아산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하다.
검붉은 꽃송이 하나를 집어 올리니 우주의 육중한 무게가 꽃송이 하나에서 느껴졌다.
그 꽃송이를 가져와 동료들에게 한 잎씩 떼어주면서
이 꽃잎 하나에 우주가 담겨져 있어요. 자, 우주를 받으세요!라고 하니
“아 정말 그래 보이네요. 우주가 보여요!”라고 하는 사람
“별걸 가지고 다 의미를 부여하시네...” 가지가지였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분명 붉은 꽃잎 하나에 우주가 담겨져 있었다.
그 속에는 우주의 생성원리,
그동안 우주가 걸어온 길,
해와 달과 별의 운행,
이 땅을 살아간 인류의 웃음과 환희, 눈물과 애환
그리고 출근길 나의 작은 발자국 소리와 오늘 아침에 내린 안개비까지......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 보였다.
꽃은 언제 피어야 할지, 언제 떨어져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다.
그 떨어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세상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하루 더 피어있기 위해 발버둥치지도 않는다.
마지막 순간까지 온갖 힘을 쏟아
떨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그러나 꽃으로 산다는 것은 화려함이나 영광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작은 꽃이라고,
못생긴 꽃이라고,
꽃 같지 않은 꽃이라고,
밤에만 피는 야행성 꽃이라고,
들판에 피어 아무도 관심주지 않는 꽃이라고,
떨어질 때 모습이 아름답지 못하며 추하다고,
향기가 없다고,
가시가 있다고,
때로는 왕따로 손가락질로,
.....
꽃이라고 해서 영광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꽃은 영광이 없다고 해서 피어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손가락질 당할 것이라고 해서 그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는다.
오로지 그의 본질, 그의 본분, 창조주의 섭리에 따라 그의 역할을 다할 뿐이다.
나 스스로에게 한 송이 꽃으로 살고 있는지 되물어 볼 일이다.
피어날 때 온갖 괴로움을 당했는가?
죽을힘을 다해 살고 있는가?
지는 모습까지도 아름다울 수 있는가?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모습 속에서도 우주의 DNA가 살아있을지 궁금하다.
꽃으로, 한 송이 꽃으로, 우주를 담은 꽃으로 살아가고 싶다.
내가 한 송이 꽃으로 살다 떨어졌을 때
누군가의 손에 들려져 진한 향기로 전파되었으면 한다.
(생명)
봄비에 떨어져 있는 꽃 한송이를 손에 담아보라.
우주가 느껴지면 그대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이 봄에 주체할 수 없는 꽃의 향연을 들었는가?
그렇다면 그대는 행복한 사람이다.
하염없이 흩날리는 꽃비를 맞아 보았는가?
그렇다면 그대는 자연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을 맛보았다.
계절의 변화는 안단테가 아니라 프레스토와 포르테,
곡선이 아니라 직선으로 달려가고
나는 아직도 섬진강이 안겨 쉬고 있는 옥정호를 맴돌고 있다.
<하동에서 조문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