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에 역전 시계탑에서 만나자.”
“3시 20분까지 ○○가게 앞 신호등에서 만나자. 저번처럼 괜히 신호등 건너서 엇갈리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휴대폰이 없던 시절 누군가를 만나자면 약속시간과 만날 장소를 정했습니다. 그래도 몇 분, 몇 십 분을 기다리는 것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정확하게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사람을 별다른 방도 없이 기다려야하는 일은 불편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기다림이 만남의 기쁨을 배가시키곤 했습니다.
“2번 출구 지날 때 내가 문자할게. 강남역 내릴 때 전화해.”
“근방에 있을게. 일단 끝나면 전화 줘.”
요즘에는 약속 장소와 시간을 미리 계획하지 않습니다. 휴대전화로 미리 시간과 장소를 확정할 수 있어도 많은 경우에 "거기 도착할 때" 다시 연락하기로 합의합니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거기서 만나기보다 네가 이쪽으로 오는 게 더 낫겠다.", "여기 길이 많이 막혀 늦는다."고 상황에 따라 약속 시간과 장소를 바꾸기도 합니다.
예전의 만남은 약속에 따라 군말 없이 이행하는 것이라면 오늘의 만남은 약속시간이 유동적이고 조절 가능한 것으로 변했습니다. 묵묵히 고정된 시간과 장소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 시간이 다가올수록 통화와 문자 전송의 빈도가 증가하는 변화한 만남입니다.
휴대폰은 시간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사전에 생산되고 조직된 미래라는 개념은 부드럽게 이동하는 시간의식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시간은 끊임없이 미래를 향해 흘러갑니다. 미래는 확정된 순간들로 구성된 것으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상황에 따라 협상 가능성이 있는 대략적인 시간으로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