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예술축제의 최고봉으로 자리매김해 온 춘천마임축제의 유진규 예술감독이 전격 사임하여 파장이 예상된다.
춘천마임축제 김진태 이사장은 유 감독의 사의 판단을 존중하여 사직서를 수리하고 내주중에 이사회를 열어 후속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지난 1989년 예술의 볼모지 춘천에서 마임축제라는 나무를 심어 25년 동안 사실상 가꿔 왔고, 세계3대 마임축제로 등극하기까지 꽃을 피워 낸 유진규 감독이 퇴진함에 따라 마임축제의 향후 진로에 암운이 드리워졌다.
유 감독은 "이제는 변화를 보일 때다. 올해 축제에서 선을 보인 ‘바람난 유랑극단’ 등의 프로그램은 크게 성공한 것으로 판단되지만, 마임축제의 상징적 프로그램인 "미친금요일"과 "도깨비난장"은 올 해 성황을 이루지 못해 책임감이 앞선다"고 말했다.
그러나 올들어 미친금요일 행사 장소 논란과 축제예산 지원금 문제로 춘천시와 축제사무국 간의 빚어진 갈등이 축제결과보고 과정의 책임소재 논란까지 번지며 유 감독의 사임을 부채질했다는 여론이 많다.
유 감독은 "후진 양성과 축제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내가 물러나는 것이 최선을 선택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며 "지난 25년 동안 함께 축제를 만들어준 모든 이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고 짧게 말한 뒤 7월 10일 중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중국으로 힐링 여행을 떠나는 유 감독은 장기 여행으로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여 마임이스트로서 새롭게 탄생한다는 생각이다.
축제계 인사들은 비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예술인이 마음껏 예술활동을 펼칠 수 있는 토양이 아직 준비된 게 아닌 우리의 현실을 우려하고, 축제행정과 예술활동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내지 못하는 현실을 개탄해 하고 있다.
춘천마임축제는 7월19일 오후 5시에 이사회를 열어 올 해 축제의 예산실행결과 등 전반적 평가와 함께 유 감독 사임 후의 축제 운영 전반에 관해 논의할 계획이다.
다음은 유진규 감독이 축제계 인사들에게 보낸 글이다.
춘천마임축제를 떠나며
25년을 지켰던 자리에서 내려옵니다.
해가 뜨면 해가 집니다.
봄, 여름, 가을 지나면 겨울이 옵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습니다.
뒤돌아보면
우리 모두 그동안 잘 놀았죠?
앞을 보면
다시 벼랑 끝입니다.
고맙습니다.
여러분들이 있었기에 춘천마임축제가 있을 수 있었고제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올해 축제의 마지막 날 새벽에 불 난장을 보며 쓴 글로
인사에 대신합니다.
날마다 좋은날 되소서.
2013년 7월 8일
유진규 올림
타오르는 불을 보면서
25년 역사의 끝이 불타오릅니다.
불꽃의 화려함에 확 끌려 들어가던 우리는
뜨겁게 타오르는 불의 번짐에 뒤로 물러섭니다.
누구도 가까이 오는 것을 막고
손댈 수 없는 과거가 불타오릅니다.
25년이 지나갑니다.
수많은 순간들 수많은 얼굴들 지나갑니다.
다 태워버리고 싶어 치를 떨면서 떨쳐내지만
아귀같이 매달린 욕망들 떨어지지 않습니다.
제발 타달라고 애원합니다.
거대한 욕망의 덩어리가 쓰러집니다.
폭삭 가라앉습니다.
나도 쓰러집니다.
모든 것이 부서지면서 쓰러집니다.
날름거리는 비명소리 속에 새빨간 몸뚱이가 꿈틀거립니다.
눈물이 납니다.
이제는 끝이다.
우리는 온몸을 내던졌다.
영원한 잿더미로 사라질지
불사조처럼 다시 살아나올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지금은 온몸을 다 태운 텅 빈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