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갯돌의 유명한 작품 <홍어장수 문순득 표류기>가 문순득 표류국가 상생프로젝트의 하나로 일본 오키나와 문화교류를 한다.
신안 우이도 홍어장사 문순득이 풍랑을 만나 표류해 오키나와, 필리핀, 마카오, 중국을 거쳐 장장 3년 2개월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는 드라마 같은 여정 중 문순득이 처음으로 표류했던 유구국琉球國(현재 일본 오키나와) 사람들을 극단갯돌과 사)세계마당아트진흥회가 초청한 것이다.
이번에 방문한 오키나와 교류단은 총11명으로 “소노다청년회 에이사”단원들이다. “소노다청년회 에이사”는 오키나와현 오키나와시 소노다에 위치하고 있으며, 류큐의 고대전통을 이어받은 에이사 무용을 보존하고 계승하고 있으며 현재 100여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의 방한은 “문순득 표류국가 상생 프로젝트”로서 오는 9월 19일부터 23일까지 일정으로 목포와 신안에서 펼친다. 20일에는 오후5시 목포문예회관에서 오키나와 고대유구국에서 전해오는 전통에이사 북춤과 마당극 홍어장수 문순득 표류기 공연으로 교류한다. 다음날 21일 은 갯돌과 함께 신안 우이도 문순득 생가를 방문해 문순득의 삶과 유서깊은 신안의 자연을 둘러볼 계획이다. 22일은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과 공동으로 동아시아 예술연대 활성화 방안에 대한 국제세미나를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세미나실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세미나에는 “문순득 표류연구”의 저자 최성환 목포대 교수가 “문순득의 삶과 류큐 표류기”에 대해 주제발표를 하고 토론자에는 토모치 오키나와 국제대교수, 사키마준 기노완시 사키마미술관, 타마모토 소노다청년회에이사 단원과 이윤선 목포대 교수, 손재오 연출가, 문관수 갯돌대표 등이 참여해 류큐의 역사적 환경과 동아시아 예술연대를 위한 제언으로 열띤 토론을 벌인다.
세계마당아트진흥회와 극단갯돌은 문순득이 표류한 국가의 민간예술단체와의 지속적인 교류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세계마당아트진흥회 박석규 이사장은 “1801년부터 문순득 일행이 태풍을 만나 3년 2개월 동안 오키나와, 필리핀, 마카오, 중국을 표류했던 국가와의 예술연대를 통해 극단갯돌이 중심이 되어 연합공연을 제작하는 것”이라고 밝히면서 “단순한 연합공연이 아닌 문순득을 보살펴준 국가를 이해하고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는 상생관계를 더욱 돈독히 다져나가 동아시아 최고의 명품브랜드를 문순득을 통해 개발하겠다”는 제작의지를 밝혔다.
또한 2010년도부터 문순득을 제작한 극단갯돌 문관수 대표는 동아시아 문순득 브랜드공연에 대해 “문순득 표류국가들이 신안 섬에 체류(residency)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들을 마련하고 문순득표류기 공연을 연합으로 창작하는 것이다. 이 작품이 완성되면 우리는 ‘문순득 표류국 공연단’이라는 이름으로 오키나와, 필리핀, 마카오, 중국 등지를 순회공연 할 것이다. 뿐만아니라 미국, 영국 등과 같은 서구에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문순득공연브랜드에 주목하게 될 것이다”라면서 아시아가 바다를 통한 세계의 중심이면서 평화의 시작점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문순득세계화의 꿈을 전했다.
※ 참고 자료
문순득에 대해
문순득(文淳得; 1777~1847)은 조선 순조 때 신안 우이도에 살던 사람으로 흑산도에서 홍어를 사서 나주 영산포에 파는 홍어 장사였다. 1801년 12월 그는 작은 아버지를 포함 일행 6명과 홍어를 사러 흑산도 근해로 출항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1802년 1월에 유구국(오키나와)에 도착했다. 유구국 수도 나하에서 머물면서 융숭한 대접을 받고 토속어를 배우고 친교를 맺으며 지냈다. 1802년 10월 중국으로 떠나는 조공선에 동승하여 출발했으나 다시 표류해서 11월 여송국(필리핀) 루손섬에 표착했다. 여송국에 머물면서도 그 나라 말을 배우고 소통했다.
1803년 8월 마카오 상선을 타고 마카오에 도착 12월부터 육로로 귀국 길에 올라 난장, 베이징을 거쳐 1804년 12월에 한양에 도착했다. 1805년 1월에 다시 우이도로 돌아오니 고향 섬을 떠난 지 3년 2개월만이었다.
문순득의 표류와 두 나라에서의 체류생활과 귀국 여정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흑산도에 귀양왔다 우이도에 체재한 실학자 정약전에 의해 <표해시말>이란 책으로 저술되었다. 표해시말은 관리가 아니라 일반 서민의 눈으로 당시 동남아 여러나라의 문물과 언어, 선박 제조기술 등을 기술한 최초의 책으로 당시 동아시아 문화교류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 실학사상 형성에 큰 기여를 한 책이다.
문순득은 제주도에 표류해 의사소통이 안돼 9년째 제주도에 머물던 여송국(필리핀)인과 표류시 여송국어로 대화하여 여송국인임을 알아내고 중국을 통해 송환해 주기도 했다. 조정에서는 문순득의 공을 치하하고 가선대부(嘉善大夫) 종2품 공명첨을 하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