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단오제의 개선 방안 모색
- 기고 : 최정철
2016 수원화성문화제 총감독
2017 전주대사습놀이 총감독
(1) 개요
▪ 단오 날을 전후해서 펼쳐지는 강릉의 향토 제례 의식
· 대관령 산신령과 남녀 수호신들에게 올리는 제사를 비롯해서 며칠간에 걸쳐 강릉 단오굿을 시행한다.
· 전통 음악과 관노가면극(官奴假面劇), 민속놀이 등 전승 연희 종목들이 시연된다.
▪ 특징
· 한민족 최고(最古) 역사를 간직한 민속이다.
·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제사가 중심 행사다.
- 대관령 산신 : 김유신 장군(595년~673년)
- 남 국사성황신 : 범일국사(810년~889년. 조계종 시조)
- 여 국사성황신 : 강릉 정씨 처녀
※ 강릉에 딸을 둔 정씨 성을 가진 자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꿈에 대관령국사 성황신(범일국사)이 나타나 자신의 딸과 혼례를 치르겠 다고 했으나 이를 거절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곱게 단장하고 마루에 앉아 있자 호랑이가 나타나 딸을 업고 사라졌다. 정씨가 국 사 성황당에 이르니 이미 딸은 서낭신과 혼례를 치르고 죽은 사람 이 되어 성황신 옆에 서 있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이 남녀국사 성황 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올렸다. 이것을 강릉단오제의 효시로 추정하 고 있다. 정씨의 딸이 호랑이게 업혀가서 성황신과 혼례를 치른 날 이 음력 4월 15일이므로, 지금도 이 날이 되면 두 신을 함께 모셔 제사지낸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유교와 무속의 공존(共存)
- 옛 기록에 의하면, “양반과 관속, 상민 등 수백 명이 참여해서 범일 국사와 관련된 여러 성황당에서 함께 제사 거행, 수만 명의 구경꾼이 집결했다.”
· 유일한 무언극(無言劇) 강릉관노가면극이 시연된다.
- 몸짓과 춤으로만 극을 진행하는 대사 없는 유일한 무언극
- 해학과 재미가 넘쳐나는 탁월한 극적 예술성 보유
· 공연예술의 진수를 보이는 강릉 단오굿이 시행된다.
- 세습무 참여
: 여무는 춤과 노래를, 남무는 무악 반주를 맡는다.
- 뛰어난 예술성으로 판소리, 농악, 민속춤, 민속음악 등 전통 연희의 기반이 되었다.
· 전국 최대 규모의 난장을 운영한다.
- 최대 500동까지 개설
- 난장 규모의 방대화 이유
: 태백산맥으로 가로막혀진 지리적 환경→강릉, 삼척, 동해 등의 영 동 지방과 영서 지방 간 교류에 어려움→함경도 지방과 경상도 지 방까지 연결되는 거래 장소로 강릉이 대표적인 곳이 되어 성장(5일 장으로 확대)
- 오늘날 난장의 주요 품목은 ‘이불’이다.
: 전국 숙박업소 사람들이 몰려들어 각종 이불 세트를 구입해 간다.
(2) 탄생
▪ 단오의 옛 명칭
· 수릿날(높은 날, 신의 날의 뜻)
▪ 문헌 기록
· 『삼국지』 위지 동이전
- “강릉은 부족국가인 “동예(東濊)’의 옛 땅으로, 천제(天祭)를 거행하 고, 남녀가 모여 술 마시며 함께 춤추는 ‘무천(舞天)’이라는 축제가 있 다.”
· 『고려사』 열전 왕순식 조
- “고려 초 태조 왕건을 도운 대관령 신령에게 왕순식이 제사지냈다.”
- 이 기록을 볼 때 고려시대부터 대관령은 영동지역 신앙의 중심지였 음을 알 수 있다.
· 허균의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 “1603년 단오를 맞이해서, 대관령 산신을 제사했다.”
· 조선시대의 강릉단오제는 관에서 주관하고 민중들이 참여한 읍치(邑治) 성황제 형태
- 마을 수령을 중심으로 관아 이속(吏屬)들이 조직, 무속신앙을 믿는 민중들이 함께 하던 관민 합동 축제의 원형이었다.
- 읍치 성황제 형태는 현재 유일하게 강릉단오제에만 흔적이 남아있다.
(3) 성장
▪ 일제강점기 1909년, 강릉시내에 있던 대성황사(大城隍祠, 대성황당) 철거
· 관민 공동 행사였던 강릉단오제 내용이 심각하게 훼손당했다.
· 일제강점기 동안 중앙시장 상인 중심으로 소규모로 명맥을 유지했다.
※ 현재 남대천 둔치에서 실행
· 유교식 제사와 무당의 굿으로 대관령 산신, 대관령국사 남녀 성황신을 모시는 제의와 관노가면극놀이, 굿이 전승되고 있다.
▪ 1967년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
▪ 1975년부터 민간단체인 강릉단오제위원회 주관, 범 국민적 축제로 정착
▪ 2005년 11월, 유네스코 지정의 ‘인류구전 및 무형 유산걸작’으로 등재
(4) 운영 체계
▪ 의식
· 신주(神酒) 빚기, 대관령 산신제, 대관령 남녀국사 성황제, 영신제(迎神 祭), 영신행차, 봉안제(奉安祭), 조전제(朝奠祭), 송신제(送神祭), 단오굿 등
▪ 민속놀이
· 오독떼기(강릉 지역 전승 민요), 관노가면극, 그네뛰기, 씨름, 농악 경연 대회, 창포 머리감기 등
▪ 난장
· 최대 500동 임시 점포 운영
- 기존의 1000여 개 상가 운집(170종 상품)
▪ 수익성
· 해마다 100만 명 방문
· 약 500억 원 경제효과 창출
(5) 제작 체계
▪ 일정 구분에 따른 의식과 놀이 시행
※ 신주 빚기를 시작으로 해서 음력 4월 1일을 초단오로 삼아 이후 며칠 간격으로 2단오~3단오~4단오~5단오~6단오~7단오~8단오로 구 분해서 각종 의식과 놀이를 시행한다.
① 신주(信酒, 일명 조라) 담그기
· 음력 3월 20일 칠사당(七事堂)에서 제사용 술 제조
- 신주근양(神酒謹釀)이라고 한다.
· 강릉 시민의 자발적 헌미(獻米)
· 옛날에는 호장(戶長, 마을 촌장 개념으로 우두머리 아전. 단오제에서는 부사보다 상위 지위를 부여받음), 부사府使), 수노(首奴, 우두머리 노비), 서낭맹(城隍盲, 우두머리 박수), 무녀가 목욕재계하고 술 단지를 봉해서 호 장청의 하방(下房)에 두었다. 근래에는 제물을 준비하는 도가(都家)에서 술 을 빚어 보관한다.
※ 강릉 주민들에게는 이러한 성스러운 참여 의식이 있기에 강릉단 오제가 국내 현존 최고(最古)의 단오제로서 장구히 그 맥을 이어올 수 있었을 것이다.
② 초단오(初端午)
· 음력 4월 1일이 되면 사시(巳時, 오전 9시~11시)에 큰성황당(큰서낭당)에 헌주(獻酒, 술을 올림)하고 굿을 치른다. 초헌은 호장, 아헌은 부사, 삼헌은 수노, 종헌은 서낭지기가 맡았다.
· 무당들이 〈산유가(山遊歌)〉를 부른다.
· 관노들은 〈태평가〉를 부른다.
· 미시(未時, 오후 1시~3시)에 끝난다.
③ 2단오
· 음력 4월 8일, 석가탄신일이 되면 초단오 때와 동일한 내용으로 큰성황 당에서 헌주하고 굿을 한다.
④ 3단오 전날
· 음력 4월 14일, 저녁에 남성황신을 모시러 대관령으로 행차한다.
· 옛날에는 행렬 선두에 16명의 악공(樂工)이 앞장섰고 그 뒤로 호장, 부 사, 수노, 도사령(관아의 우두머리 심부름꾼), 남녀무격 50명∼60명이 따랐 다. 모두 말을 탔으며 수백 명의 마을사람들이 뒤를 따라 장관을 이루었다 한다.
· 행렬이 대관령 구산에 도착하면 그 지역 사람들이 밤참을 준비해서 일행 을 대접한다.
· 산중턱 송정(松亭)에서 밤을 새우고 새벽에 닭이 울면 다시 행렬이 출발 해서 대관령국사 (남)성황당에 도착한다.
⑤ 3단오
· 음력 4월 15일, (남)성황당과 성황당 동쪽의 대관령산신당에서 제사지낸 다.
· 제사 후 근처의 칠성당과 우물에서는 용왕굿을 한다.
· 소지(燒紙)로 굿을 마친 후 전원 음복하고 갖고 간 물건들은 모두 버린 다.
· 성황당 근처에서 무녀가 굿을 하고 주변의 나무들 중 한 그루가 신들린 것처럼 흔들리면 신칼로 베어 신간목(神竿木)으로 삼는다.
· 신간목과 남성황신(범일국사) 신위를 앞세우고 하산해서 구산에 이르면 (이때쯤이면 저녁시간) 강릉 주민들이 횃불을 들고 마중 나온다.
· 행렬 일행은 여성황신(정씨 처녀)의 생가(정씨가)에 잠시 들른 다음 여성 황당에 가서 성황신 내외를 합사하는 영신제를 올린다.
※ 영신제에 이어 남녀 성황신을 합방시키는 봉안제를 거행한다.
※ 원래 영신제와 봉안제는 일제에 의해 철거된 대성황당에서 거행 된 것이다. 즉, 남녀국사 성황신을 대성황당에 모셔야 하는 것을 대성황당이 없어졌기에 부득불 여성황당에 두 성황신을 모시고 영 신제와 봉안제를 거행하고 있다.
- 먼저 유교식으로 치른 후 굿이 이어지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유교와 무속이 공존하는 형태다.
※ 동제에서도 이러한 형식을 취한다.
※ 원래 영신제는 음력 4월 15일에만 치르는 것인데 대성황사가 없 어진 이후 대성황사 제사 대신 이 영신제를 음력 5월 3일 한 번 더 치른다.
※ 영신제를 치른 후 다음날인 음력 4월 16일부터 5월 6일 제사가 끝날 때까지 21일 동안, 매일 새벽이 되면 호장, 부사, 수노, 서낭 지기, 무당은 국사 성황신에게 문안을 드렸고(조전제), 주민들은 직 접 큰성황당에 가서 치성을 드리거나 단골무당을 시켜 치성을 드리 고 소원을 빌었다. 상인들은 장사가 잘 되기를, 농가에서는 풍년이 들기를, 어부들은 풍어 이루기를 빌었다.
※ 오늘날의 조전제는 음력 5월 4일부터 7일까지, 남대천 단오장의 가설 성황당에서 매일 아침 9시에 거행하는 것으로 대체하고 있다. 각 기관장과 사회단체장들이 제관으로 참여하면서 무속을 제외하고 유교식으로만 치른다.
⑥ 4단오
· 음력 4월 27일, 무당들이 여성황당에서 굿을 치른다.
⑦ 5단오
· 음력 5월 1일, 화개(花蓋)를 만들고 관노들의 탈놀이와 단오굿이 본격적 으로 시행된다. 음력 5월 5일 단오날까지 굿당에서 매일 무당들의 굿과 관 노의 탈놀이가 계속된다.
※ 화개는 ‘괫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성황당에 모셔진 신간목의 대용품이다. 옛날에는 부사청(府司廳)에서 만들었다. 영신제 이후 신간목을 여성황당에 모시게 되면 대용품인 괫대가 단오제 기간 동 안 행해지는 각종 행사에 모셔진다. 화개 형태는, 대나무를 직경 6 척(1.8m) 정도로 마치 수레바퀴처럼 둥글게 휘도록 고정시켜서 긴 장대 위에 달아맨 후 대나무 원형 틀에다가 오색 천을 늘어뜨리게 만든다. 원래 화개는 높이가 30천(9m)정도였고 무게는 20kg정도나 되었다고 한다.
※ 화개가 수레바퀴 모양을 취한 것은 단오의 다른 명칭인 ‘수릿날’ 과 관계가 있어 보인다. ‘수리’는 ‘높은 신’을 뜻하는 우리말로, 점 차 ‘수레’로 음사되었기에 수레바퀴 형태를 취한 듯하다. 단오날 먹 는 떡 이름도 수리떡, 수레떡이라고 부르고 모양도 수레바퀴처럼 동그랗다.
⑧ 영신행차
· 음력 5월 3일, 남녀 성황신 신위와 신간목을 앞세운 행렬이 강릉 시내를 한 바퀴 돌아 남대천 단오장으로 행차한다.
· 행차가 단오장에 도착하는 것으로 단오행사는 절정에 이른다.
⑨ 6단오
· 음력 5월 4일, 단오굿과 관노가면극놀이를 행한다.
⑩ 7단오
· 음력 5월 5일(단오 날. 1년 중 양기가 가장 센 날)이 되면 대제(大祭)를 올린다. 대관령에서 남성황신(범일국사)을 모실 때처럼 행렬을 꾸민다.
· 옛날에는 화개를 앞세우고 큰성황당을 출발해서 약국성황(藥局城隍)~소성 황(素城隍)~시장~전세청(田稅廳)~대동청(大同廳)~사창청(司倉廳) 등을 순회하면서 굿을 치른 후 화개는 여성황당에, 신간목은 큰성황당에 봉 안했다.
· 단오 날에는 성황당 주변에 황토를 뿌리고 금줄을 쳐서 부정을 제거한 다.
· 단오굿과 관노가면극놀이가 계속 시행된다.
⑪ 8단오
· 음력 5월 6일, 큰성황당의 뒤뜰에서 소제(燒祭)를 행한다(송신제).
- 신간목과 화개를 비롯, 단오제를 위해 만든 모든 것을 불태운다.
· 남녀 성황신을 각각 여성황당과 대관령 (남)성황당으로 다시 모셔가는 봉 송(奉送)을 마치면 근 50일에 걸쳐 치르는 단오제가 끝나게 된다.
※ 단오 굿 진행 순서 소개는 생략
(6) 문제점
▪ 대성황당 상실
· 1909년 일제에 의해 강제 철거
· 대관령 산신과 남녀국사 성황신 중심의 축제로 전환
· 영신제 반복 거행(음력 4월 15일, 5월 3일)의 원인 제공
- 원래 대성황당에 모셔진 신들은 모두 12신으로, 현재 강릉단오제의 중심 역할을 맡고 있는 대관령 산신이나 남녀국사 성황신과는 또 다른 신격으로서 더 높은 자리에 있던 신이었다. 대성황당 제사는 큰 신을 봉안해서 제사를 받드는 조선시대 정통 형식인 관민이 함께 참여하는 읍치 성황제였다. 지역 공동체 의식을 단단하게 하는 의미의 제사였기 에 일제가 읍치 성황제로서의 의미를 없애려고 대성황당을 철거한 것 이다.
※ 대성황당이 없어지기 전에는 음력 4월 1일과 8일에 신주를 바치 고 굿을 행했다.
※ 대성황당 외 약국 성황당과 대창리 성황당도 없어졌다.
▪ 행사 공간의 이동
- 백영철, 『관동민속학』 제12집.
· 대성황당과 약국 성황당, 대창리 성황당이 없어진 후 단오제 운영 공간 이 변했다.
· 원래는 강릉의 진산인 대관령을 중심으로, 신간목을 모시고 굿을 했다는 북쪽의 약국 성황사, 육성황신(肉城隍神, 성황신 중에서 유일하게 고기를 바치는 성황신으로 옛 동예의 창해역사를 이른다)과 소성황신(김시습)을 모 신 동쪽의 대창리 성황당, 12신을 모신 남쪽의 대성황당, 김유신장군을 모 신 서쪽의 대관령 산신당 순으로 제사가 치러졌다.
· 지금은 북쪽의 정씨 처녀를 모시는 홍제동 여성황당, 솟대를 모시고 굿 을 벌이는 동쪽의 강문동 진또배기, 단오행사의 중심지가 되는 남쪽의 남 대천, 김유신 장군을 모시는 서쪽의 대관령 산신당과 범일국사를 모시는 학산 성황당으로 바뀌었다.
▪ 이동형 축제에서 고정형 축제로 성격 전환
· 원형
- 대성황당~약국 성황당~대창리 성황당~제민원 성황당 및 시장~관청 등 거리 순회
· 현재
- 남대천 둔치 중심의 행사로 전락
- 과거 일제의 감시와 통제 단속에 의해 중앙시장 상인들만의 행사로 명맥 유지
▪ 행사 일정의 오류
· 원형
- 음력 5월 1일~6일
· 현행
- 음력 5월 1일~8일
▪ ‘고정형 축제’ 성격에 의해 방만하게 운영되는 공연행사
· 70여 개 프로그램의 난무 현상
· 현대적, 서구적, 무개념적 구성
- 비보이 공연, 비행기 축하 비행, 종묘제례악 등
· 민속 프로그램 축소화
· 정체성 유실
- 국내외 공연단체 대거 유치
▪ 지나친 상업화
· 무절제한 난장 운영
▪ 집행조직 ‘강릉단오제위원회’의 문제
· 조직의 관료화 및 이익 집단화
· 폐쇄성 심각
- 강릉 시민 참여 배제
- 축제전문가, 역사학자, 종교학자, 신화학자, 사회과학자 등 전문가 그 룹 차단
· 특정 부류 사람들의 강릉단오제화 현상
· 행사 제작에의 무책임성
· 수익성 확보를 위한 난장의 대형화 추구
(7) 개선 방안
▪ 원형 복원과 한민족 고유 민속의 본질 회복
· 성황당 복원
- 대성황당, 약국 성황당, 대창리 성황당, 제민원 성황당
- 이동형 축제로 회귀
· 신위 재봉안
- 대성황당 12신, 대창리 성황당 2신
- 제례 복원
: 대성황사 12신위
※ 전국의 주요 산악신(山岳神)
① 송악산지신, ➁ 태백대왕신, ➂ 남산당제형태상지신, ➃ 감악산 대왕지신, ⑤ 김유신지신(대관령 산신)
※ 지신(地神) 의미의 여신(女神)
⑥ 성황당덕자모지신, ⑦ 초당리부인지신, ⑧ 연화부인지신, ➈ 서 산송계부인지신(추모의 친모 유화부인)
※ 인격신(人格神)
➉ 이사부지신, ⑪ 범일국사
※ 성황신(城隍神)
⑫ 신무당성황신(단오와 씨름 관련. 홍석모, 『동국세시기』)
: 대창리 성황사 2신위
※ 육성황신(肉城隍神)
① 창해역사(장량과 함께 진시황을 시해하려다 실패한 동예 출신 역사力士)
※ 소성황신(素城隍神)
➁ 김시습(조선의 생육신 중 1인)
- 임동권, 한국민속학논고 1971, 『강릉단오제』.
▪ 불필요한 공연물 제거
· ‘강릉 돋보이기’ 전략 강화
- 단오굿과 관노가면극놀이를 대표 프로그램으로 집중하는 것이 바람 직하다.
- 강릉에서만 볼 수 있는 ‘강릉의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 국내외 공연 단체들의 대량 유치를 자제해야 한다.
▪ 강릉 단오제 본연의 강렬한 주제 부각
· ‘범일국사의 애휼 평화 사상’
· ‘연화부인과 무월랑의 인연→불교 사상’
· ‘이사부 장군의 국토 수호 사상’과 ‘벽사(僻邪) 기원(탈)’
· ‘창해역사의 인간사랑 정신’
· 굿의 치유 기능을 통한 ‘신인합일(神人合 一) 사상’ 등
▪ 영신 행차 특화 전략 구사 검토
· 주민 참여의 행렬 경연 방식 도입
· 주민이 주인이 되는 진정한 지역 축제 면모 확립 가능
▪ 난장 정리
· 과거 5일장 형태 복귀로 전통성 강화
· 지나친 상업성 자제를 통해 강릉단오제 본질 훼손 현상 차단
▪ 집행 조직 개선
· 강릉 시민과 전문가 그룹 참여 폭 확대
· ‘강릉단오제위원회’의 문제의식 부족 시 새로운 조직 구성 필요
· ‘강릉단오제위원회’에 대한 예산 지원 중단 및 유네스코 지원 창구 관리
이상으로 대한민국 지역 축제 중 유네스코 문화 유산으로 등재된 강릉 단오제의 허실을 파헤쳐 보았다. 우리의 전통 문화를 계승하는 축제의 생명은 바로 원형 보존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새삼 되새겨야 할 것이다. 원형이 있어야 변형이 있는 법이다. 우리는 원형은 잊은 채 변형에만 파묻혀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