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속으로 떠나는 핑크빛 숲길 여행
(산청군 수철리 ~ 함양군 동강리)
“바다는 상처를 몸으로 삼켜버리고 강은 스스로 씻어버리나
산은 그 가슴에 자국을 남긴다”
그만큼 산은 진솔하다. 꾸미지 않는다.
그만큼 바다는 탁월한 연기력을 가졌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어쩌면 바다는 그 아픈 상처를 가슴 깊은 곳에 숨겨놓았으리라.
거기에 비하면 강은 스스로의 치유력이 뛰어나다.
상처 입은 즉시 원상 회복력을 가지고 있어서 쉽게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상처 입은 자가 강으로 가면 탁월한 효험을 볼 수 있다.
바다에 가면 편안해 지고 강에 가면 그와 친구가 된다.
하지만 산에 가면 나 또한 그와 함께 아파야 하고 싸매져야 하리라.
그게 산이다.
숨기지 못하고 엉엉거리고 끙끙거리는 것이 산이다.
상처를 입어 본 사람이라야 상처 입은 자를 치유할 수 있다.
아파본 사람이라야 아픈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다.
그럼으로 상처입어보지 못한 사람은 산으로 가지 말아야 하리라.
그 곳에는 헤집어 놓은 가슴들이 널브러져 있을 테니까…….
“혹여 세상에서 상처 입은 가슴을 치유하러 산으로 가시려거든
같이 부둥켜안고 밤새도록 울다가 올지어다.
울다가 울다가 지치면 어느새 새벽이 되리니
그 때에야 온전한 치유된 나를 발견하리라”
둘이서 밤새도록 부둥켜안고 울다 울다 맞이한 숲이 고동재다.
폭우 쏟아진 후 하늘에서 발하는 눈부신 광채와도 같이
모든 것이 새로워지고 어둠이 물러간 후 새소리 영롱한 아침이며,
막혔던 가슴이 뚫리는 순간처럼 맞이한 곳이다.
오월 상순의 숲은 어디로 간들 에너지가 창일하지 않은 곳이 있으랴만,
고동재 숲길은 꿈결에 만난 환상의 장소다.
하늘에서 내려온 빛은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진 원색이다.
이제 막 바다에서 건져 올려 퍼덕거리는 자연산 물고기이며
심심계곡 금광 채석장의 가공되지 않은 원석과도 같다.
이것이 오월 상순 고동재 숲으로 하늘에서 쏟아 놓은 빛의 모습이다.
그것이 연녹색 잎에 투과되고 투과되지 않은 빛은 다시 반사되어
잎에서 튕겨져 나와 숲으로 쏟아져 내렸다.
그 주체할 수 없는 빛들이 나무사이로, 숲 사이로 흩어지고 굴러내려
마치 마법의 숲처럼 숲은 온통 빛의 잔치가 벌어졌다.
그 빛이 은방울꽃을 건드리자 온 숲속은 방울소리로 진동했다.
일순간 숲은 판타지 입체영상 속으로 빠져 들었다.
좁은 숲길에 내려앉은 진달래 군락지,
그 흩뿌려진 연분홍 진달래 꽃잎들이 핑크길 양탄자가 되어
나를 판타지 속의 주인공으로 분장시켜 놓았다.
나는 애니메이션 영화에서처럼 좁은 숲길 속으로 빨려들어 가고
마치 양탄자를 탄 어린왕자처럼 환상 속으로 날아다녔다.
핑크로드는 오르막으로 치닫다가도 갑자기 내리막길로 쏟아져 내리고
오른쪽으로 급선회를 하다가 왼쪽으로 급강하 하면서 꽃잎들을 오솔길에
흩날려 버렸다.
어느 듯 핑크길 숲길이 끝나고 백색의 하얀 진달래 꽃잎들이 숲길을 수놓았다.
연이어 침엽수림 숲길로 접어들었다.
이 침엽수림은 수만 평이 넘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숲은 마치 창일한 바다처럼 일렁거렸다.
하늘을 찌를 듯 한 침엽수림 숲길,
그 나무아래 두 팔을 벌려 하늘을 향해 환호하는 외침이 들린다.
저 멀리서 두 손 잡고 춤추며 달려오는 연인들의 환상이 보인다.
이들은 이 핑크빛 숲으로 허니문을 떠나온 사람들이리라!
내가 탄 양탄자는 하강곡선을 그리며 숲속으로 내려앉는다.
저 언저리에는 태양빛에 반사되어 튕겨오는 한 줄기의 빛이 있다.
상사폭포에서 생겨난 빛이다.
크지 않은 폭포지만 이 상사폭포는
숲속에서 생겨나 숲속으로 떨어지는 특이한 폭포다.
그 폭포아래 뛰노는 젊은이들,
마치 축복이 내리는 폭포수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에게 축복이 있으라.
이들에게 치유가 있으라.
이들에게 생명이 있으라.
나의 판타지 여행은 여기까지였다. 꿈결과 같은 숲속여행이었다.
저 멀리 고독한 탑이 솟아 있다.
그 가슴에는 상처난 자국이 있다.
이 땅에 동족끼리 상처를 입힌 산청사건 추모공원이다.
이 상처는 치유될 수 있을까?
판타지는 순간이다.
영원히 지속된다면 그것은 판타지가 아니다.
또 다시 꿈에서 깨어나 험하고 고독의 길을 걸어야 한다.
뙤약볕을 걸어야 하고 바람과 맞서야 하며 무서리도 머리에 여야 한다.
판타지란 그런 것이다.
저 멀리 동강마을이 손짓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