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맞은 섬진강 매화)
영원한 비주류, 마을! 강은 마을을 돌아가더라!
가끔씩 눈을 감으면 섬진강이 내 순속으로 쏘옥 들어온다.
요즘 한참 유행하는 3D입체 안경을 쓴 사람처럼,
초고화질 섬진강 입체영상이 온 머리를 휘감아 돈다.
지난주는 거의 매일 깊은 밤 시간에 섬진강 길을 산책했다.
하류지역에 만조까지 겹쳐져 강물은 창일(漲溢)했고
달빛은 강물에 비단결처럼 깔렸으나
오히려 그 에너지로 물결을 잠재워 적막했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상류의 실개천 같은 섬진강과 오버랩되었다.
상류의 강을 걸어보기 전에는 그것은 강이 아닐 줄 알았다.
겨우 흉내나 내는 강, 아니 이름만 강으로 붙여진, 강 같지 않은 강일 줄 알았다.
하지만 채 한나절도 걷지 못하고 내가 얄팍한 외형주의적 사고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온 힘을 다해 물줄기를 만들어 시원을 이루는 그 강의 힘과 인내를,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렸던 것이다.
이놈아! 니가 언제쯤 사람이 될래!
강이 나를 나무랬다.
반용마을을 지나 포동마을에 들어서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결국 무엇으로 사는가?
무엇이 이 험난한 세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을 지켜줄 것인가?
무지개를 쫒듯 달음질하는 사람들이 결국 머무를 곳은 어디인가?
어릴적 추억이 살아 뛰노는 동심,
연출되지 않고 의도되지 않으며 가공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동네,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러도 언제나 넓은 품으로 용서해 줄 것 만 같은
엄마의 포근한 품과도 같은 고향,
여차하면 내 언젠가 모든 걸 때려치우고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결국, 사람은 이것으로 사는 것 아닐까?
그러나 마을이 사라지고 있다.
수몰을 당해서가 아니라 세월의 쓰나미에 휩쓸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농촌마을의 경우 20가구 중 10가구 이상은 독거노인이다.
이분들은 보일러를 켤 줄 모른다.
작동 법을 몰라서가 아니다. 한 방울 기름이 아까워서다.
식사는 대부분 동네경로당에서 해결한다.
그러다 해질녘이 되면 하나둘씩 자기 그림자를 이끌고 차가운 방으로 향한다.
(사람냄새 나는 포동마을....마을을 침노하다)
큰물이 흘러 나루터가 되었다는 뜻에서
포동(浦洞)이라고 불려진 마을에 들어왔을 때에는 때마침 점심시간이었다.
우연히 들른 마을회관에는 묵은 김치찌개 냄새가 온 방안에 진동하고 있었다.
진안군청에서 발간한 마을자료집에는 포동마을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었다.
1940년대에는 50세대 300여명의 주민이 살았으나
지금은 25세대의 주민이 살고 있다.
마을인구는 총49명이며 이 중 남성이 23명, 여성이 26명이다.
주민 중 65세대상은 19명으로 마을인구의 40%를 차지하고 있으며
학생은 5명이다.
혼자 사는 세대가 10가구이며 빈집은 5채가 있다.
마을 내 여성 최고령자는 조순행으로 1921년생이고
남성 최고령자는 김종선씨와 배갑용씨로 1936년생이다.
포동마을은 나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곳이다.
2년 전 동료직원들과 지역일군들을 모시고 답사를 왔던 곳이다.
외관상 어느 마을과 다를 바 없는 이 포동마을에 특별한 힘이 느껴졌었다.
그래서 언젠가 다시 와 봐야겠다는 소망이 자리 잡고 있었던 터였다.
이번의 섬진강 답사에서 중간 귀착지로 일찌감치 포동마을이 낙점된 상태였다.
무엇이 포동마을을 마을답게 만들었는가?
그 얘기를 더 듣기 위해 아예 포동마을회관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했다.
결국은 마을을 지켜내야 한다는 주민들의 처절함이었다.
객지에 나가 있는 손자들에게 고향을 선물하기 위해
노인들의 아름다운 정성이 마을 곳곳에 묻어나고 있었다.
겨울이면 썰매장을 만들어 동심을 돌려주었다.
아이들 보다 어른들이 더 신나고 즐거워했다.
군청에서 준 2백여 만원의 돈으로 아기자기한 소품과 공원을 만들어
아이들이 올 수 있는 동인을 제공해 주었다.
서툴지만 뗏목타기와 여러 가지 체험거리도 만들어 주었다.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고향포동>,
동심이 살아 있는 추억의 포동이 되게 한 것이다.
(포동마을 사람들)
천국은 침노(侵擄)하는 자의 것이라고 했던가?
포동을 보고난 후 지금의 마을은
침노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숨길 수 없는 분노를 하나 가지고 있다.
이것만 생각하면 가슴이 떨린다.
농촌에 대한 차별과 멸시,
모든 것이 서울로만 통하는 비이상적 사고,
이 땅의 최고, 최대, 최초는 모조리 서울에만 있는 특이한 서울공화국,
서울에 살아야 사람취급 받고
대한민국 모든 드라마의 무대는 서울이고,
9시 뉴스의 99%는 서울발이며,
정치, 경제, 문화, 종교 그 어느 것 하나 서울을 빼고서는 말이 되지 않는
이 기형적 현실....
운명으로 받아들이려고 해도 쉽게 용납이 되지 않는다.
마치 서울알러지 병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말이다.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상황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상황이 너무 심각하다.
쓰나미라고 해도 이처럼 강력한 쓰나미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강력한 쓰나미 속에서도
마을다움, 고향다움을 지켜내기 위한 침노하는 포동사람들 속에서
내 가슴이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는다.
마을,
생명을 잉태하는 자궁
떠나고 보듬는 인생의 항구
만선이 되어도
빈선이 되어도
결국은 돌아와야만 할 영원한 품,
마을이 살아 있어야 한다.
그 모습이 어떠하든지 왜냐고 묻지 말아야 한다.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마을은 인생의 등대요 소망이다.
(홍매화 천국 하동공원)
100리를 걸어오는 동안에 강은 마을을 돌아 흘렀다.
강은 돌아 흘러 마을을 살리지만 세상은 마을을 관통하여 말려 버렸다.
강과 마을은 영원한 동지다.
강이 없는 사람, 사람이 없는 강은 부조화의 상징이다.
그래서 강은 사람이 필요하고 사람은 강을 필요로 한다.
아내와 단 둘이 큰 마을회관을 독차지 하고 한 밤을 지냈다.
간간이 개 짖는 소리 외에는 정적 뿐 이었다.
이른 아침, 새소리에 잠이 깨었다.
동네 할머니 한 분이 들어오셨다.
할머니를 앞세워 집에 가서 보니 사시는 모습이 가슴을 아리게 했다.
아들들이 객지에서 잘 산다고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
1년에 한 번 보기도 어려운데....
마을을 휑하니 둘러보았다.
할아버지 나무와 할머니 나무가 멀리서 마주보고 있었다.
할머니 나무는 오래전에 큰 병을 앓고 치료를 받아 겨우 회생중이다.
마치 이 땅의 마을들의 모습을 보는 듯하였다.
요즘 세상일들은 사람 머리 숫자로 결정되어 버린다.
정체성이고 지역성이고 필요가 없다.
오로지 사람 머리 숫자가 많으면 장땡이다.
그래서 농촌은 울고 있다.
머리 숫자도, 돈도... 그 무엇으로 서울과는 상대가 안 되기 때문이다.
마을을 살리기 위해 침노하는 포동마을 뒤로하고
나는 섬진강이 흐르는 물길을 따라 진안과 임실의 경계인 포동교를 넘어
임실군 관촌면을 향했다.
<하동에서 조문환 드림>